삶에도 레벨이 있는 것 같다. 영화 보는 법만 봐도 다르다.
초보인생인 나는 일단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복잡하지 않아서 좋다. 결코 시시하지 않다. 애니메이션 안에도 깊은 교훈이 많다. 남편은 애니메이션을 싫어하지만 연애 시절엔 나의 환심을 사려고 함께 봐주곤 했다. 결혼 후에는 얄짤없이 안본다.
나는 감각은 빠르나 눈치가 느린편이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희한하다. 뭔가 잘 감지하는데 잘 모른다. 미리 결말을 생각하고 영화를 보는 편이 아니라서 대부분의 영화는 결말이 너무 기대되고 특히 반전이 있으면 너무 재밌다. 항상 예상치 못한 사람이 범인으로 등장했을 때는 정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어머어머 쟤가 악당인가봐.’라고 남편에게 속삭이면 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영화가 끝나면 ‘그걸 그제야 알았냐고. 영화볼 때 말 좀 시키지 마.’라고 핀잔을 준다. 그런데 잔인한 장면은 기가 막히게 예감하고 고개를 돌린다. 피를 보면 온몸에 전류가 흐르듯 자극이 와서 견딜 수가 없다. 남편은 무심한 듯 보여도 그런 순간엔 늘 내 눈을 가려준다.
남들이 웃는 장면에서는 잘 안 웃고,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눈물이 터지곤 한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영화관에 가는 게 사치가 되어 지난 3~4년간 본 영화는 탑건이 유일하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며 열 번도 넘게 울었다. 그 얘기를 들은 친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탑건에 그럴 포인트가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냥 아이를 낳으니 눈물샘이 고장난 것 같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첫 장면이다. 톰 크루즈가 시험 비행이 취소되자 규정을 어기고 직접 출격해 마하 10을 돌파한다.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났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속도를 더 올리자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 ‘인간의 탐욕은 저렇지…’ 하며 눈물은 싹 사라지고 땀이 났다. 감동과 긴장이 이렇게 극과 극으로 오가니 뇌리에 영화 속 장면이 생생히 박혀있다.
요즘은 삶의 레벨이 좀 오른 것 같다.
예전만큼 감정에 휘둘리진 않는다. 잔인한 장면도 이제는 볼 수 있을 것 같고,극적인 쾌감이나 흥분보다는 ‘그러취.. 그러취..’ 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 같다. 의심도 많아졌다. 매의 눈으로 범인을 먼저 찾아내고 단서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엔 영화 속에 그저 빠져들었다면, 이제는 한 걸음 떨어져 여유 있게 볼 수 있는 느낌이다. 삶도 영화도, 몰입과 깨어 있음을 반복하는 상태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단계에 올라선 것(?) 같다고 자만해본다.
조만간 레벨업을 검증하러 영화관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냥 책이나 읽자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