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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Apr 22. 2024

<눈물의 여왕> 인물들이 진심을 만날 수 있었던 이유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01] tvN <눈물의 여왕> 해인의 가족들 

 내가 드라마를 즐겨보는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보다 호흡이 긴 드라마는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 관계의 변화를 꽤 세밀하게 묘사한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실제 삶에도 도움이 되는 부분들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최근 화제리에 방영되고 있는 tvN <눈물의 여왕>도 그런 드라마 중 하나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주인공 해인(김지원)-현우(김수현) 커플뿐 아니라 이들의 주변 인물들까지-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크게 변화한다. 해인의 가족들인 어머니 선화(나영희)와 동생 수철(곽동연) 그리고 그의 아내 다혜(이주빈)가 특히 그러한데 이들의 변화로 해인의 가족들은 친밀해지고 있다. 반면, 원하던 것을 모두 갖게 된 슬희(이미숙)-은성(박성훈) 모자는 목표를 이룬 후 오히려 더 관계가 악화되고, 결국엔 서로가 적이 된다.


 왜 모든 것을 잃은 해인 가족은 단란해지고,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 슬희와 은성 모자는 더 멀어진 걸까. 나는 큰 사건을 겪으면서 각자의 매몰된 마음에서 빠져나왔는지의 여부가 두 가족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 생각한다. 이 마음들에 대해 살펴본다.


   

▲ <눈물의 여왕> 해인의 가족들은 심리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 tvN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난 선화


 해인의 가족들은 상실의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 해인이 어렸을 때 해인과 함께 바다에 갔던 해인의 오빠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아마도 이 커다란 슬픔은 가족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이에 큰 영향을 받은 인물이 바로 해인의 엄마인 선화다. 선화는 죽은 아들에 대한 슬픔을 살아남은 해인에 대한 미움으로 치환한다. 혼자서 살아 돌아온 해인을 "너는 뭐든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라며 돌보지 않는다. 그리고 막내아들 수철에게는 장남에 대한 애정까지 보태 과한 돌봄을 제공한다. 즉, 아이를 잃은 슬픔에 매몰된 채 그 감정들을 다른 자녀에게 투사하며 살아온 것이다. 그 결과 해인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뭐든 혼자 해결하며 외로워하고, 수철은 뭐든 다 해주는 어머니에게 의존해 무력감을 학습한다.


 이렇게 닫혀버린 선화의 마음에 돌을 던진 건 해인의 시한부 선고다. 11회 해인의 병에 대해 알게 된 선화는 해인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도 선뜻 해인을 보러 가지 못한다. 그리곤 병원 비상계단에 앉아 이렇게 말하며 오열한다.


"참 한심하지. 내 마음이 힘들고 지옥이라고 그걸 내 새끼한테 풀다니. 그 어린 게 손을 내밀 때마다 안 잡아줬어."


 이는 마침내 선화가 매몰되어 있던 슬픔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대사였다. 그러자 선화는 자신이 해인을 몹시 사랑해 왔음을 깨닫는다. 또한, 해인에게 살가운 말을 건네고 건강에 좋은 식단을 준비해보려 하는 등 행동으로도 이 마음을 실천한다. 덕분에 해인의 가족은 12회 해인의 말처럼 "부모 형제도 알아보고 친해져"간다.


 무력감에서 빠져나온 수철과 욕망에서 벗어난 다혜


 이렇게 선화가 매몰되었던 슬픔에서 빠져나와 자녀들을 다른 방식으로 대하자 수철 역시 달라진다. 착하고 여린 마음을 가진 수철은 상처 입은 엄마의 '과잉보호'속에 자란다. 동시에 뭐든 똑 부러지게 잘 해내는 해인과 늘 비교하면서 '자신은 못났다'는 생각을 내면화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무력감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수철은 무력감에 갇혀 지낸다. 때문에 회사에 일이 생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늘 겁을 먹으며 우왕좌왕할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 선화가 변화하는 시점부터 수철도 달라진다. 수철은 이 무렵, 복싱을 배우기 시작하는데 아마도 이는 스스로의 힘을 키워 진정으로 독립된 어른이 되고픈 오래된 마음의 실천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12회 아내 다혜가 아들과 함께 돌아왔을 때, 수철은 가족들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아들이고 내 아내"라며 자신의 목소리를 명확히 낼 수 있게 된다. 무력감에 갇혀 지내던 수철이 '나는 무능하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와 스스로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수철의 아내 다혜는 욕망에 매몰되어 있던 상태에서 벗어난다. 다혜는 스스로 말하듯 "착하고 멍청한 재벌 아들 등쳐서 한탕하고 싶은" 욕망에 수철과 위장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 욕망을 실천하기 위해 은성, 슬희와 합심해 수철과 해인 가족을 골탕 먹이고 미국으로 떠난다. 하지만, 홀로 지내면서 다혜는 자신의 진심을 만난다. 자신이 진심으로 바랐던 건 돈이 아니라 수철처럼 자신을 아껴주는 마음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수철에 미안해하며 돌아와 진심으로 사과한다. 욕망에 휩싸였던 마음에서 빠져나와 스스로를 바라보게 되었고, 용기 있게 행동해 스스로를 구한 셈이다.


   

▲ 한 때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다혜는 혼자 지내면서 자신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고 매몰에서 벗어난다. ⓒ tvN


여전히 욕망에 매몰된 은성과 슬희


 반면, 슬희와 은성 모자는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이 큰 슬희는 아들 은성조차 버리며, 전략적으로 재벌인 퀸즈가에 접근한다. 홍만대(김갑수) 회장의 눈에 들어 그의 수발을 들면서 모든 부와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전략을 세운다. 25년간의 노력 끝에 슬희는 결국 꿈을 이루고 퀸즈그룹을 손에 넣는다.


 은성은 이런 슬희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라다 미국으로 입양된다. 하지만 미국의 양부모에게도 학대를 당하며 힘들게 살아남는다. 그러면서 그는 대학 때 만났던 해인을 얻고자 한다. 그는 해인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해인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녀를 곤경에 빠트리고 구해주는 일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보다는 '소유'하려 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이를 통해 퀸즈가의 부와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었을 테다.


 슬희와 은성은 퀸즈가를 손에 넣겠다는 공통된 욕망을 실현할 때까지는 서로 협업한다. 하지만, 이후 더 큰 부를 누리려 하는 슬희와 해인을 소유하려 하는 은성은 충돌한다. 슬희는 은성에게 "이게 나의 방식이고 네가 퀸즈 회장이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한 수단으로 자식을 대하는 것을 '사랑'이라 포장하는 슬희의 모습과 은성이 해인을 사랑한다면서 소유하려는 모습은 어딘지 닮아 보였다.


 이렇게 슬희와 은성은 욕망 외의 다른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다. 목표를 이룬 후에도 더 매몰되어 갈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 형성되었을 법한 그리움과 애틋함 등 다른 감정들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함께 자멸의 길로 가고 만다. 이는 한때 이들과 뜻을 같이 했으나 욕망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스스로를 구한 다혜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 슬희는 부와 권력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의 아들조차 수단으로 삼는다. ⓒ tvN


 결국 중요한 건 내 마음과의 적당한 거리 아닐까. 많은 이들이 드라마 속 선화처럼 과거의 상처와 슬픔에 매몰되거나, 혹은 수철처럼 자라면서 내면화한 자기 자신에 대한 관념에 매몰된 채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슬희, 은성, 다혜처럼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기도 한다.


 이렇게 무엇인가에 매몰된 마음은 타인은 물론, 나 자신의 다른 감정과 생각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게 막는다. 마음에 갇혀 살아갈 때 우리는 스스로는 물론 주변에 해를 입히게 된다. 하지만, 매몰에서 빠져나와 나 자신과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되면, 나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게 되고 타인 역시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눈물의 여왕>의 인물들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함께 있더라도 공간을 두라. 하늘의 바람이 그대들 사이에서 춤출 수 있도록'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에 실린 사랑에 대한 시의 일부다. 나는 이 공간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야 나의 상처, 내면화한 관념, 그리고 욕망에 매몰되지 않고 나 자신의 마음을 바로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게 가능할 때 스스로는 물론, 타인과의 관계 역시 평온해질 것이다. 그토록 불편했던 해인의 가족들이 역경 속에서도 서로 편안해진 것처럼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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