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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Jul 08. 2024

우리는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05] tvN <졸업>이 보여주는 양육의 핵심

 나는 고등학생 아들을 둔 상담심리사다. 일상 또는 상담실에서 참 많은 부모와 자녀들을 만나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의 삶을 '기획'하고 '책임'지는 게 성실한 부모라는 통념이 굳어져 가는 것 같아 늘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 동시에 나 또한 엄마로서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조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점검하며 지내고 있다.


 이런 내게 지난 주말 종영한 tvN 드라마 <졸업>은 혜진(정려원)과 준호(위하준)의 로맨스보다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더 마음에 와닿는 드라마였다. 특히,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자 하는 인물들이 내뱉은 대사들은 요즘 시대의 양육에 좋은 지침이 될 것 같았다. 이 말들 속에 담긴 심리와 의미를 살펴본다.


믿고 지켜봐 주기


▲ 준호는 아이들이 스스로 텍스트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문학수업을 시작한다. ⓒ tvN


 "엄마. 나 한 달에 적금은 얼마나 들까? 결혼은 언제 할까? 결혼하면 어디에 살면 좋을까? 아이는 몇 명이나 낳을까? 딸이면 좋겠어? 아들이면 좋겠어? 차 한 대 살까 하는데 새 차로 할까 중고로 할까, 보험은 어디에 들까?"


11회 엄마 정화(윤복인)에게 준호가 내뱉은 말이다. 내신 8등급이었지만, 혜진을 만나 성적 향상을 이뤄 명문대에 진학하고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취업까지 한 준호는 부모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준호는 학원 강사가 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혜진과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독립선언을 한다.


 정화는 이런 준호에게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와 "왜 본가와 비밀번호를 다르게 했냐"고 타박한다. 그리고는 아버지가 대형 인강업체에 줄을 대놓았다며 면접을 보라고 한다. 이에 준호는 "내가 스스로 하는 걸 지켜봐 달라"고 하지만 정화는 "아버지 체면도 생각하라"며 반박한다. 위의 대사는 이런 상황에서 준호가 화가 난 마음으로 한 말이다. 이 말속엔 독립된 한 사람으로 살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 있었다. 정화는 이 말에 몹시도 서운해하지만, 한편으론 준호 말이 맞다는 느낌이 들어서 움찔한다.


 나는 현실의 꽤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도 이런 말을 마음에 품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의 모든 시간을 관리하고,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내용들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역할로 굳어진 지 오래다. 심지어 암기과목을 부모가 대신 공부해 식사 시간이나 차량 이동 중에 외우도록 돕는 것이 아이들이 주요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비법으로 소개되기도 할 정도니 말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난다면 정말로 준호가 질문한 모든 것들 또한 부모가 대신해줘야 하지 않을까. 더 우려되는 건, 너무 어릴 때부터 '관리받는 삶'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경우, 주체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점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준호처럼 항변할 마음의 힘만은 잃지 않았으면 한다. 부모 역시 아이를 독립된 존재로 바라볼 수 있는 심리적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일치성 있는 태도를 보여주기 


▲ 준호와 혜진은 함께 하면서 각자의 삶에 투사되었던 욕망으로부터 '졸업'한다. ⓒ tvN


 엄마와 크게 다툰 직후, 준호는 자신이 그동안 공들여 만든 교재를 모두 버려 버린다. 그리고 혜진과 부딪히면서까지 이렇게 주장한다.


"흔해 빠진 방식으로는 아이들이 찜찜함을 없애줄 수 없어요. (...) 읽는 방법을 가르칠 거예요. 텍스트랑 일대일로 맞장뜰 수 있는 근육을 키울 수밖에 없어요. 이런저런 문제풀이 스킬 없이 본질로 가야 해요." (11회)


 준호가 이렇게까지 강하게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치성'을 원하는 강한 심리적 욕구 때문이었을 것이다. 심리학에서 '일치성'은 마음속 느낌과 생각, 그리고 행동과 말이 일치되는 것을 말한다. 감정과 생각, 행동이 일치할 때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고 느낀다.


 아마도 준호는 '모든 것을 떠 먹여주는' 부모의 양육에 질려있었고, 이를 거부하는 자신이 아이들을 '떠먹여 주는' 방식으로 가르치면 안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주는 그런 강사가 되고 싶었을 테다. 즉, 독립적으로 살아가길 원하는 자신의 마음과 강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를 일치시킨 것이다.


 청미(소주연)도 이런 인물 중 하나다. 준호의 입사동기인 청미는 매사에 열정을 다하고 세심하게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청미를 답답하게 여기는 채윤(안현호)이 "좀 대충 해도 된다"고 조언하자, 청미는 이렇게 답한다.


 "노력을 폄하하진 마세요. 그런 태도로 어떻게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칠 수 있어요. 무슨 권리로 아이들한테 미래를 걸라고 할 수 있어요?" (13회)


 이는 청미 역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와 언행에 진심을 담는 '일치성'을 추구하는 인물임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시우(차강윤)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현실적인 제안을 거절한 혜진 역시 일치성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04).


 나는 이런 '일치성' 있는 태도가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들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말의 내용보다도 태도에서도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가 잘 살아가길 바란다면 아이의 삶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획득하길 바라는 태도를 직접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태도는 배우고, 삶의 내용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채워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럴 때 아이 역시 '일치성'을 지니고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의 삶을 책임지지 않기


▲ 혜진은 달라진 자신의 수업방식을 설명하면서 "1등급을 약속할 수 없다"고 말한다. ⓒ tvN


 "약속 못하죠.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지만 결과까지는 약속 못 드린다는 뜻이에요. 공부는 제가 아니라 애들이 하는 거니까."


 준호와의 스캔들이 터지고 위기에 몰려있던 혜진은 14회 자신을 찾아온 학부모들을 만나 달라진 자신의 수업방식을 설명한다. 이에 한 학부모는 "1등급을 약속할 수 있냐"고 묻는다. 그러자 혜진은 위처럼 답한다. 학부모들은 '책임지지 못한다'는 말에 분노하지만, 나는 혜진의 '책임지지 않는 태도'야말로 부모들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많은 부모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아이의 삶=부모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물론 부모로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돌봐줄 '책임'은 져야 한다. 하지만, 아이의 삶은 오롯이 아이의 것이다. 학교도, 전공도, 직업도 아이 스스로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이를 선택하며,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아이들이다.


함께 고민해주고, 조언해 줄 수는 있지만, 최종 선택은 아이의 몫이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아이의 몫이다. 아이를 지켜봐 주고 지지해 주며, 힘들 때 함께 견뎌주면서 어른으로서 부모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인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의 삶을 책임지느라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고 아이와 갈등을 겪는다. 상담실에서 나는 이런 부모들을 너무도 많이 만나왔다. 나는 우리가 아이들을 혜진처럼 대했으면 좋겠다. 옳다고 여기는 걸 가르쳐주지만, 그것을 해내는 건 아이들임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이제야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왜 '졸업'이었는지 알 것 같다. 드라마는 준호가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고, 혜진이 '돈'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길을 향해 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졸업'의 의미는 아마도 두 주인공이 투사된 욕망으로부터 '졸업'한다는 의미였을 테다.


 동시에 분명히 보여줬다.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부모 세대의 욕망으로부터 '졸업'하는 것임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른들이 먼저 어떤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이었고, 어떤 것이 주입된 욕망이었는지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드라마 속 괜찮은 어른들이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일치성을 실천했듯 말이다.


16회 혜진의 제자였던 하율(김나연)은 이렇게 말한다.


"진짜 감사했다고, 저더러 뭐든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는 애라고 해주셨던 거. 꼭 기억하겠다고."


 우리 아이들 모두도 그렇다.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이제는 믿어주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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