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Jun 26. 2020

우리는 왜 MBTI에 빠져드는 걸까?

상담심리사가 바라본 MBTI 열풍 

"우리 이번 주말엔 뭐할까?"


 수요일쯤 되면 나는 어김없이 남편에게 이렇게 묻는다. 아무 일정도 적히지 않은 스케줄 수첩을 보면 무언가를 계획해 채워 넣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답답하다는 듯 이렇게 되묻는다.


"아니 그때 봐서 되는 대로 놀면 되는 거지. 뭘 벌써 생각해?" 


 우리 부부에게 자주 일어나는 이런 상황을 요즘 식으로 설명하면, 나는 MBTI의 지표 중 외부세계에 대한 태도나 적응에 관한 지표가 J(판단형)이고 남편은 P(인식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즉, 나는 무엇이든 체계적으로 계획을 하고 움직이는 걸 선호하고, 남편은 즉흥적이며 융통성 있는 대처를 선호하기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성격 유형 검사인 MBTI가 대유행이다. 라면을 먹는 데도, 스마트폰을 사는 데도, 팀플레이를 하는 데도 다른 패턴이 있다며 서로의 유형을 체크해 본다. 유튜브에는 상황별 MBTI 성격 유형과 유명인의 MBTI를 테스트한 영상들이 넘쳐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MBTI는 무엇? 
 

 MBTI 검사는 저명한 정신분석가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적 유형론'에 근거해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개발한 심리 유형 검사다. 융은 인간의 행동은 예측하기 힘들어 보이지만 실은 매우 질서 정연하다며 심리적 경향성 간의 역동적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융은 이 경향성을 주의 초점(내부로 향하면 내향 I, 외부로 향하면 외향 E), 정보 인식(실질적인 오감에 의존하면 감각 S, 통찰이나 의미, 영감에 의존하면 직관 N), 판단 기능(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기준을 중시하면 사고 T, 타인에게 미칠 영향이나 감정들을 고려하면 감정 F)의 세 가지 기준으로 설명했다.


 여기에 마이어스와 브릭스는 융이 가볍게 언급하고 지나간 생활양식에 대한 지표 즉, 계획과 체계적인 일상을 중요하게 여기는지(판단 J)와 융통성 있고 즉흥적인 처리를 선호하는지(인식 P)를 추가해 총 16개의 성격 유형을 완성했다. 


 이 검사의 핵심은 '선천적인 선호'를 파악하는 것일 뿐, 심리유형에 '좋고 나쁨'은 없다는 것이다. '존재의 개별화', 즉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것'을 중시했던 융의 사상에 근거한 만큼 '나 자신과 타인의 성향을 알고 이를 활용하도록 돕는 것'이 이 검사의 목적이다.


우리는 왜 MBTI에 빠질까?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MBTI 성격유형검사를 하고 있는 유재석,  이효리, 비 


 그렇다면 사람들은 도대체 왜 지금 MBTI에 빠져드는 걸까?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불확실성'이다. 다가올 미래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안의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낯선 상황들로 가득 차 있다. 이전보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빠른 현대사회는 불확실성이 더욱 커졌다. 게다가 초연결 시대로 돌입하면서 인간관계의 폭 역시 넓어졌다. 서로 잘 알던 사람들 위주로 돌아가던 이전과는 달리 낯선 사람과 소통해야 할 일은 늘어나고, 가족이나 친구, 이웃 등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할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인간관계를 연구한 찰스 버거는 이런 관계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이 의사소통에 대한 동기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너무나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사회는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파악할 시간마저 빼앗고 있다.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인지적으로 '예측 가능'하다고 믿으려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상대방을 어떤 틀에 끼워 맞춰 판단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새로운 만남을 가질 때 그 사람의 정보를 미리 알아내고 머릿속에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 애쓴다.


 넓게 보면, 우리가 만나본 적이 없는 인종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 역시 '다른 것'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이런 이미지들이 편견으로 굳어져 차별적 태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고 있는 MBTI는 타인과 우리 자신에 대한 그림을 명확하게 그리도록 도와준다. 특히, '사업가형' '세상 소금형' '게으른 완벽주의자' 등 성격의 경향성을 재밌고 분명한 말로 설명하는 최근의 MBTI 해석들은 타인을 보다 예측 가능한 존재로 만들어 준다. 또한, 나 자신에 대해서도 명확한 해석을 내려준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을 회피하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 준다.


편리함에 숨어 있는 모순


 나 자신과 타인을 '~유형'이라고 규정하고 바라보면 반응을 예측할 수 있다. 유형에 따라 대처방법 등을 미리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MBTI는 편리함과 안도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상대방과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쉽다. 


 MBTI가 보여주는 16개의 성격 유형은 일종의 '경향성'이다. 유형이 같은 사람이더라도 각자가 그 특성을 가지고 있는 정도는 다 다르고, 그 정도의 조합에 따라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를 간과하고 유형을 맹신하다 보면 타인의 행동을 유형의 양극단에 있는 특성에 끼어 맞춰 해석하는 오류를 낳게 된다.


 나 자신의 행동 역시 '유형'에만 맞추어 이해하려 하다 보면, 스스로를 틀에 끼워 맞춰 자기 자신의 새로운 경험이나 느낌 등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오히려 놓쳐버릴 수 있다. 나와 타인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사용된 검사가 오히려 제대로 된 이해를 방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타고 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선천적인 경향성 외에도 매일매일의 경험을 통해 성장해가고 보다 다양한 측면을 가진 '한 개인'이 되어간다. 때문에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경험의 총체가 나 자신'이라고 했다.


이런 경험의 총체로서의 개인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칫 자신과 타인을 '예단'하는 오류를 저지르게 된다. 인간관계 연구가 찰스 버거 역시 인간관계에서 불확실성을 줄여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상대방을 차근차근 알아가는 것이지 결코 '어떤 유형'에 끼워 맞추라고 하지 않았다. 


             

유튜브에 올라온 MBTI 콘텐츠들 


MBTI의 건전한 활용


 그렇다면 MBTI는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MBTI는 자기 자신의 타고난 성격적 성향을 알고 이를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타인과 어울리는 것이 힘든 나의 모습에 불만을 가지고 있더라도 MBTI 결과가 내향형으로 나왔다면, 굳이 외향형으로 바꾸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내향형인 자신의 성향을 받아들이고 내향형의 장점을 활용해 살아가는 것이 훨씬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 된다. 융은 자신의 타고난 선호 방향대로 살아갈 때 안정감을 느끼고 자연스레 반대방향도 개발해 보다 통합적인 사람으로 성숙해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잘 이해되지 않는 친밀한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활용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여자 친구 한 사람만을 만나고 조용히 지내기를 선호하는 내향형 남자 친구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를 선호하는 여자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기 쉽다.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나자고 하는 여자 친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럴 때 여자 친구의 MBTI유형이 외향형임을 안다면, 여자 친구의 그런 행동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외향적'인 성격에서 나온 것임을 알게 되고,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갈 수 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우리 부부는 완전히 다른 MBTI 유형을 가지고 있다. 나는 ENFJ고 남편은 ISTP다. 처음엔 서로의 행동들이 힘들기도 했지만, 15년 넘게 함께 지내다 보니 우린 서로 다르기 때문에 더 조화로운 일상을 만들어가고 있다.


 외향형(E)인 내가 사람들과 모임을 조직하고 주선하는 데 내향형(I) 남편이 동참함으로써 그의 인간관계가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N) 내가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 남편은 세세한 정보를 제공하고(S), 상대방의 감정에 휘둘려 실수하기 좋은 나(F)를 남편의 논리적 판단력(T)이 보완한다. 여행 갈 땐 내가 계획을 세우고(J) 꼼꼼히 짐을 챙기지만,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에는 남편이 매우 유연하게 대처한다(P).


 이렇듯, MBTI는 유형에 끼워 맞춰 나와 타인을 판단하는 것으로 사용될 땐 오히려 스스로와 타인을 존중하지 못하게 하는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신과 상대방의 행동을 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로 활용한다면 삶에 윤활유가 되어줄 것이다. 강조하건대, MBTI는 그 무엇보다 고유한 자신의 개성을 존중하고 발휘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융의 심리학으로부터 유래했다. '나 자신과 타인의 개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만이 이 검사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마침내 찾은 '저녁 있는 삶'  화목하지만 숨이 막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