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일 가수 신승훈의 데뷔 30주년 기념일을 축하하며
코로나 19 사태가 터지기 전인 지난해 12월. 유난히 지쳤던 날이었다. 집까지 운전해서 가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만큼 '번아웃'된 느낌이었다. 일하는 동안 '매너모드'로 해두었던 휴대폰을 켰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대학시절 가수 신승훈의 콘서트에서 만나 우정을 쌓아온 친구였다.
'2020년 데뷔 30주년. 4월 서울 콘서트 시작으로 전국투어 하심!'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콘서트 소식이었다. 나는 친구가 알려준 티켓 예매 오픈 날짜를 휴대폰에 입력하고는 콧노래를 부르며 시동을 걸었다. 몇 분 전까지 지쳐 있던 내가 아니었다. 퇴근길 러시아워도 전혀 짜증이 나지 않았다.
콘서트 개최 소식만으로도 나의 번아웃을 한 방에 날려주는 가수 신승훈. 그토록 설레게 했던 그의 30주년 전국투어는 결국 코로나 19로 모두 무산되고 말았다. 하지만 올해는 그가 새 노래를 발표하고, 간간이 방송에도 출연했기에, 코로나 우울을 경험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늘 설렜던 해였다.
이 설레는 마음이 무려 30년이다. 1990년 발표한 그의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듣고 팬이 됐으니 만으로 30년 덕후 생활 중이다. 40대 초반인 내 인생의 4분의 3을 그와 함께 살아온 셈이다. 도대체 내게 '신승훈'이라는 가수가 어떤 존재이길래, 나는 30년을 덕후로 살고 있는 것일까. 11월 1일 그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나의 30년 '덕후 심리'를 해제해본다(생각해보니 내가 그의 팬이 되었을 무렵엔 '덕후'라는 말은 있지도 않았었다).
투사 :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0년. 조금 추운 날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돌아왔지만 집은 텅 비어 있었다. 사춘기 소녀였던 나는 외롭고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에 울컥했다. 이런 기분을 조금이라도 누그러트리기 위해 라디오를 틀었다. 라디오는 그날따라 유난히 '치지직' 소리만 요란하게 냈다. 눈살을 찌푸리며 채널을 돌리고 있는데 갑자기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아, 다시 웃고 싶어 졌지~' 이 부분이었다. 나는 채널을 고정시켰다. 그 목소리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바로 신승훈의 데뷔곡 '미소 속에 비친 그대'였다. 나는 이 목소리를 비밀스럽게 간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어디서건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도, 식당에서도, 학교 점심시간에도 내 귀를 사로잡았던 그 노래가 울려 퍼졌다. 몇 달 후엔 텔레비전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친구들도 하나둘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신승훈 팬'이라는 동질감에 나는 친구들과 더 끈끈한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왜 그 유독 그의 음성에 끌렸던 걸까. 심리학을 전공한 지금 돌아보건대 그건 일종의 투사였던 것 같다. 중학생이었던 난 학교에선 성적도 좋고 교우관계도 좋은 밝은 아이였다. 하지만 집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당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았고, 집안엔 슬픔이 가득했다. 학교에서의 밝은 나와 집에서의 슬픈 나. 나는 분열된 채 살고 있었다.
그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는 학교에서의 밝은 나를 연상시켰지만, 녹아나는 슬픈 정서는 집에서의 나와 닮아 있었다. '울고 싶지 않아, 다시 웃고 싶어 졌지' 특히 이 부분은 내 마음을 콕 찍어 대변하는 듯했다. 나는 나의 두 가지 면을 그의 노래에 투사했다. 분열된 두 면이 그의 목소리에서 어우러졌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통합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그렇게 '질풍노도'의 마음을 달래고 통합하며 사춘기를 통과했다.
동일시 :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
그는 승승장구했다. 1992년 2집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았고, 1993년 발매한 3집 앨범 <널 사랑하니까> 역시 성공을 거두며 그는 두 해 연속 골든디스크 대상을 수상했다. 1994년 발매된 4집 앨범 <그 후로 오랫동안>은 지금까지의 모든 앨범보다 더 사랑받았다. 그런 그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기대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의 성공에 나를 '동일시'하며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말고 워크맨으로 그의 4집 테이프를 듣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이토록 나의 자랑스런 가수가 되었듯, 나도 그에게 자랑스런 팬이 되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그에게 자랑스런 팬이 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열심히 공부해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고, 원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자'였다. 그가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듯, 나도 그러고 싶었다. 그러자 참으로 신기한 일들이 일어났다. 수능시험문제에 감이 살아났고, 나의 성적은 수직 상승했다. 결국 난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은 내가 팬으로서 열성을 다했던 시기였다. 성인이 된 나는 콘서트는 물론, 공개방송에도 종종 참여해 그를 힘껏 응원했다. 그 사이 그는 5집 <너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내가 있을 뿐>으로 248만 장이라는 앨범 판매 기록을 세웠다. IMF 직후였던 98년엔 6집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발표했다.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그는 밀리언셀러 기록을 이어갔고 나는 수록곡 '고개 숙인 너에게'를 반복해 들으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달래곤 했다.
한편, 나는 어린 시절부터 기자라는 꿈을 품고 있었다. 대학 4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언론고시'를 준비하게 됐을 때 나는 나의 꿈에 그를 포함시켰다. '기자가 되면 그를 인터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시험 준비를 하는 동안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가 7집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을 발매하고 정말로 '전설'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을 때, 나는 기자가 됐다.
위로 : 'Dream of my life'
기자로서의 일은 더없이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도 마음이 텅 비어 가는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 무렵 나는 잠시 '성덕'을 하기도 했다. 내가 열렬한 그의 팬임을 안 선배가 그와의 인터뷰 자리에 나를 데려갔던 것이다. 그 순간은 지금까지 내 삶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당시 삶의 의미나 목적, 가치 같은 걸 정립하지 못한 채 기자라는 허울에 의존해 살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공허해질 수밖에. 그때 만난 노래가 2006년 발표한 10집 수록곡 'dream of my life'였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듯한 이 노래를 들으며 나는 삶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리고 '허울'이 아닌 '진심'을 추구하기 위해 기자직을 그만두고,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렇게 나는 30대가 되었고, 결혼을 했고, 엄마가 됐다. 하지만 심리학 공부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내기도 전에 나는 인생의 쓰나미를 겪었다. 결혼과 출산, 육아의 경험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뼛속까지 느끼게 했다. 시가 중심 가부장제 속에서 나는 나를 잃어갔다. 동시에 나는 엄마를 잃었다. 엄마의 암 투병과 죽음은 내 뿌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난 그때 그도 잃었다. 내가 나를 잃었던 시기 나는 그의 노래조차 들을 수 없었다.
다시, 만남 : 'My Melody'
몇 해가 지난 2012년 어느 가을날. 편의점에서 유치원에 간 아이의 하원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라디오를 켜봐요~' 그의 목소리였다. 순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내가 모르는 그의 노래가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찾아보니 2008년에 발표한 노래였다. '라디오를 켜봐요'라는 가사처럼, 잊고 있었던 내 마음의 라디오가 다시 켜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2013년 새 앨범 < Great wave >를 발표했다.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의 곡들이었지만 그만의 색은 그대로 묻어났다. 결혼하고 엄마가 된 나 역시 달라진 자리에서도 '나다움'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춘기 시절 그와 동일시하며 나의 꿈을 가꾸어왔듯 다시금 나는 그의 성숙한 자리에 나의 자리를 매치시켰다. 이 앨범의 수록곡 'My melody'라는 노래처럼 '나의 멜로디'를 찾아 나섰고, 나는 다시 '내가 누구인지' 알아갔다.
지금 나는 '나 다움'을 회복해 살아가고 있다. 때로는 여러 역할들 사이에서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 올라오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는다. 특히 출퇴근 길에 함께 하는 그의 노래들은 보다 진정성 있게 일에 임하도록 이끈다. 그의 콘서트에도 다시 간다. 콘서트장에서 그를 만나는 시간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역할들을 벗어던지고 가장 순수한 나와 만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매번 나는 콘서트장에서 사춘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길을 투영해본다. 그리고 다시금 '나답게'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청춘 기록>엔 팬인 정하가 스타인 혜준에게 자신의 덕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야기를 들은 혜준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이야기 듣는 느낌이야." 그러자 정하가 받아친다. "니가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환상이니까."
어쩌면 나의 덕질도 내 감정이 투사된 '환상'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년간 그의 팬으로 살면서 그는 나의 '현실' 속에 언제나 함께 있었다. 이제 그는 내게 환상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나의 가수. 그의 데뷔 30주년 기념일을 맞아 조금 상기된 나를 보며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관통하는 노래와 가수가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인 것 같아. 나도 처음부터 가수를 잘 선택했으면 당신 같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부럽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함께 할 그가 있기에 나는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발표한 곡인 '내가 나에게'의 가사처럼 '세상에 떠밀려 오르막길 오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그를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리라 다짐하면서, 그에게 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11월 1일 데뷔 30주년 기념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