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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공무원 May 15. 2016

엄마와 함께한 유럽자유여행

시작.

인터넷에서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고 조언을 구하는 글을 보면 항상 결론은 같다.

무조건 패키지!

먹는거에 여행일정에 이것저것 챙기고 맞추다보면 힘은 힘대로 들고 감정은 감정대로 상해서 돌아온다고....

엄마와 유럽여행을 계획했을 때 나도 이런 조언을 무시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먼저 찾아본건 패키지여행이었다.

10일동안 4~5개의 나라를 빽빽하게 보여주는 그런 패키지들.

패키지여행의 그런 스케줄만 보아도 숨이 턱턱막히고 벌써 힘이 들었다.

엄마보다도 더 저질체력이었던 나를 위해 조금은 더 여유로운 자유여행으로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다.


1. 여행지 고르기

크로아티아에 가고 싶었다. 자그레브나 두브로브니크같은 낯설고 이국적인 도시이름만으로도 설레였고 TV에서 보았던 눈부신 풍경도 보고싶었다. 무엇보다 유럽배낭여행을 할때 못가본 나라였다.

엄마는 스위스에 가고 싶었다. 친구가 스위스에 다녀오고 나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단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풍경은 어떤 풍경일지 궁금하다고 했다.

우리는 스위스와 이탈리아로 가기로했다. 이번 여행의 물주였던 엄마의 의견이 전적으로 반영되었고(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권력이지) 이동의 편의성을 생각해서 가까운 나라 1곳이 더 추가되었다.


2. 비행기&숙소 고르기

무조건 제일 싼 비행기. 무조건 제일 싼 숙소를 이용하던 나의 배낭여행과 이번 여행을 달랐다.

엄마와 함께하기때문에.

직항이면 좋겠지만 직항은 너무 비쌌다.

경유지도 고민이었다.

악명이 높은 러시아항공은 가격이 좀 더 쌌지만 제외했다.

유럽계 항공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숙소도 문제였다. 나는 항상 도미토리에서 잤었다. 그런데 50이 넘은 엄마를 2층침대에서 누군지도 모를 외국인 남자들과 함께 자라고 할 수는 없었다.(실제로 나는 20명이 넘는 혼성도미토리에서도 많이 잤었다. 왜냐고? 제일 싸서!) 그래서 2인실을 알아봤는데 도미토리는 한없이 저렴하던 한인민박들도 2인실 가격은 제법 비쌌다. 그리고 숙소를 고르는 기준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건 바로 거리! 어깨가 아픈 엄마를 대신해 모든 짐을 내가 들어야 했으므로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 먼 곳은 모두 제외되었다. 그렇게 가격과 거리를 고려해서 호텔과 한인민박을 적당히 섞어서 예약했다. 하이라이트로 선택된 스위스 리기산 중턱에 있던 온천호텔은 엄마가 두고두고 얘기할 만큼 만족스러웠다.


3. 먹고 마시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먹고 마시기.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 엄마는 한식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것!

조식으로 빵과 치즈가 나와도 즐겁게 드셨다. 오히려 내가 중간에 라면 먹고싶다고 했을정도.

스위스에서 호수를 보며 엄마랑 커피한잔을 마시고 유람선에서 맥주한잔을 하고

먹는 거에는 정말 트러블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다만 길거리음식과 간식을 엄청 좋아하는 나와는 달리 식사이외의 군것질을 잘 안하는 엄마 덕분에(?) 처음으로 여행에서 살찌지 않고 돌아올 수 있었다는 웃픈사연이...


4. 여행일정과 체력안배

엄마는 강했다. 한국에서도 가끔 같이 산이라도 가보면 엄마는 쉽게 가고 나는 헉헉거린다. 이정도는 산도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그래서 여행지에서도 나보다 엄마가 적극적으로 어딘가 가고싶어하셨다. 이른 새벽 산에올라 일출을 보는 것은 전적으로 엄마 생각이었다. 나는 일출을 보기위해 아침부터 등산을 할 생각은 없었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종탑과 두오모에도 엄마는 올라가고 싶어했다. 오히려 나는 그걸 말렸고.

스위스가 다 산이지만 대부분 정상까지 케이블카든 산악열차든 연결이 되어있어서 생각보다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엄마도 나도. 아니 어쩌면 저질체력이 내가 계획한 스케줄대로 움직여서 그럴 수도 있지만.



끝.

좋았다. 엄마와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진지한 이야기를 할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런데 24시간 붙어지내다 보니 진지한 속마음들을 얘기할 수 있었다. 내가 3살때 돌아가신 외할머니 얘기를 들을 때는 울컥하기도 했었다. 기억도 잘나지않는 외할머니지만 엄마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또 가고싶다. 엄마가 아직 나보다 빨리 걸어갈 수 있을때 한번 더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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