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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어머니 4

권투는 한 사람하고만 싸우지 이건 뭡니까!

링위에서 시합은 시작되었으나, 권투의 룰을 몰랐으니 백전백패였을것이다.

아니 룰보다도 공정하지 못한 시합이었다. 적어도 한사람 하고만 싸웠던 게 아니었음을 글을 쓰다 보니 알겠다.

그당시 결혼 생활을 생각해보면 끝나는 타이밍도 모르는 시합에 강제로 동원된 느낌이다.

바라볼 곳이라고는 남편 밖에 없었으나 그 당시 남편은 멋진 아주버님이 되고 싶었고 결혼으로 전 보다 훨씬 의젓해진 장남이 되고 싶은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었으니 나에게는 그저 머나먼 남의 편, 남보다 못 한 사람이었다.


친정이 좀 괜찮았다면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친정으로도,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딸이 넷, 아들 하나, 좋든 나쁘든 남의 집 살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내 방을 가져 본 적은 없었으니 시어머니가 색이 바랜것 같다고 하셨어도 파스텔톤 이불에 아이보리 색 장인가구 셋트가 공주님 방처럼 꾸며져 있었고 창마다 분홍색 커튼을 두르고 있는 새 집 냄새 풀풀 나던 아파트에서 여동생과 방을 써야 되는 천정 낮은 우리집 친정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다. 


1라운드 땡

어느날은 토요일에 시동생이 내려 온다는 호출로 시댁에 갔더니 새 차를 사서 동서와 함께 타고 내려 온 시동생네를 위한 부름이었다. 우리는 아직 차가 없었고 남편은 또 멋진 우애를 쌓기 위해 기름값 3만원을 주고(돈은 충분히 이해한다.) 뜬금없이 먼지도 없어 뵈던 동서의 흰 색 굽 높은 힐을 닦아 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제수씨 구두를 닦아 줘야겠다고, 혼자 청승맞게 현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던 모습에 나는 지금으로 말하면 깻잎 논쟁 같은 분노를 진심으로 느끼고야 말았으니 이 기분 나쁨을 뭐라고 표현해야 되나,시댁에 오는 일로도 마음이 버거운데 남편은 제수씨 구두 닦아주는게 왜 자기 부인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인줄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한 나만 이 결혼 힘듭니다. 우울합니다 상태였고 그는 해맑았다.


남의 집이면 '안녕히 계세요'하고 문열고 다시 나가기라도 하지 이건 시댁이라 그럴 수도 없고 서울에 산다고 차 막히니 일찍 가야 된다고 아침 일찍 나서는 동서네를 배웅하고 우리도 가야지 하면 다시 반복되는 어머니의 가스라이팅은 무한반복이었다.

"점심 먹고 가라, 저녁  먹고 가라, 땡땡이는 5년동안 통근도 했다" 소리를 순차적으로 듣고 나서 사람으로 왔다가 새 주둥이를 달고 우리 집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아니 새만 되었겠냐고.  아마 호흡곤란도 함께 왔을 것이다. (호흡곤란은 다음 편에 쓰겠다. 실제로 경험했으니)


그래도 남편은 결혼하고 이 년 정도 그런 상태이다가 곧바로 철이 들어서 서서히 내가 원하는 남편이 되어 주었고  이번 이야기에 구두 이야기는 좀 빼주라 라고 말하기도 했다. 

 


2라운드 땡 시작됐습니다.

1라운드 상대가 남편이었다면 2라운드는 시어머니다. 우리는 두루마기로 둘 다 속이 상했다.

결혼할 때 남편한테 해 준 한복 셋트에 두루마기가 빠졌다고 시어머니는 서운하다고 말씀하셨다.

시어머니 : "나는 니 매형 두루마기까지 해 줬고 니 동생도 받았는데 너는 두루마기도 못 받았냐" 입을 비쭉거리면 말씀하셨다.

 남편, 나 : ...

명절에 한복을 입지도 않았는데 어머니는 추석에도 그 말씀, 설에도 그 말씀, 우리 엄마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었을 '내 아들에게 두루마기도 해 주지 않으셨어요" 소리를 나한테 하셨다.

생각날 때마다 하셨던 두루마기 이야기는 나에게 꽤 상처가 되었다.

그 소리를 하는 대신 '사둔 닮아 딸 낳으면 어쩐대유" 소리로 강펀치를 날리신건가! 싶기도 합니다만-.-


두루마기는 찻잔속의 태풍같아서 추석 지내고 나면 어머니의 두루마기 타령으로 마음이 상해서 싸우게 되고, 설에도 다시 생각나서 말씀하시는 두루마기 타령이 나를 괴롭혀서 언젠가 내가 내 돈으로 맞춰 입혀서 '보세요, 이제 되셨어요'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때 어머니는 지금 내 나이셨고 시골 동네지만 치맛바람정도는 일으킬 수 있는 영향력이 있는 분이셨다. 시골에서 그만하면 자수성가 하신 정도의 살림을 일구셨고 아들 셋이 무엇보다 부모를 아는 착한 것들이었으며 아버님 때문에 속 썩은 적은 있어도 자식들 때문에 속상한 일은 없었던 도도한 분이셨으니 며느리 하나 정도야 당신 마음대로 모양을 만들고도 싶으셨겠다 싶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게 나였다.


하지만 나도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을테지만 그때 나는 어머니에게 말대답을 하기에는 어렸었네요. 우리 엄마에게는 별 소리를 다하고 투탁거리다 시집을 왔지만 새엄마같은 시어머니는 넘사벽이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하면 되는 거겠지 생각했던 시집살이는 결혼 김장에서 터졌습니다.


결혼 전에는 정말로 마늘 하나 안 까보고 결혼했습니다. 김장하면 먹기나 했지 밑준비는 시키지도 않았던 우리 엄마의 지론은 '결혼하면 실컷하니 내 딸들은 이런거 안 시킨다'는 분이셨습니다. 우리 엄마가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그랬습니다. 그러니 엄마의 김장은 학교갔다 돌아오면 끝나 있었고 치우는 일조차 거든 기억이 없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시댁 김장은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침 일찍 시댁으로 일손을 도우러 갔는데 이미 동네 아주머니들이 김치를 버무리고 계셨습니다.

"김장 다 끝나는데 지금 오냐" 목소리는 낮았고 부드럽지 않으셨습니다.

동네 아줌마들이 다 보고 있으니 시어머니로서 당당함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으셨을겁니다. 주눅이 들어 김장일손을 돕고 있는데 김장 중간에 동서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어머니 고춧가루 값 좀 보냈어요. 5만원요" 어머니는 일손도우러 온 나에게는 타박을 하셨으면서 5만원 고춧가루 값을 보냈다는 동서의 전화에는 함박웃음을 지으시며 동네 아줌마들에게 자랑을 하셨습니다.

"둘째가 고춧값 보냈디야. 5만원이나"

한번도 나에게는 그렇게 웃은 적이 없던 어머니가 동서의 고춧값 이야기에 활짝 웃으며 자랑을 하고 계시다니

아아, 슬프구나. 일손 돕는 건 당연한 일이고 전날 손시려운데 쪽파까지 까 놓고 갖다가 다음 날 오전 일찍 온 것도 늦었다고 사람들 앞에서 혼내셔놓고 오지 않은 동서의 돈 5만원에는 저렇게 웃으실 일인가.

돈은 나도 드리고 갈건데 말이지.


1라운드 남편, 2라운드 시어머니, 3라운드 상대는 동서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김장 잘못 됐어도 한참 잘못 됐습니다. 이 연사 당당히 외칩니다. 하질 못하고 김장에 대한 수고비를 고춧가루 값으로 조금 보태세요 라고 표현할 줄 아는 동서의 잔머리가 신박했으니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 있는 '고춧가루 값'이라는 단어가 제게는 맵기만 하네요.


김장은 우리 엄마가 해서 준다고 했는데 나는 왜 내가 먹을 김치도 아닌데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싶었지만 어머니의 장남, 내 남편과 당신의 착실한 아들들이 어머니 김치가 가장 맛있다 하니 신이 나서 담가 주시고 싶으셨을 어머니에게 김장은 축제였고 나에게는 생각만해도 답답해지는 시댁 행사였습니다.

말이 그렇지 배추 오백포기라니요. 누가 그랬습니다. 시댁이 김치 공장하냐고.


첫 해에 그렇게 매운 맛 김장을 경험하고 두 번 째 해에 다시 반복되었던 김장지옥은 더 힘들었습니다.

큰 애 낳고 돌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시댁에 가서 전 날 자고 도와드리려 갔는데 새벽에 일어나서절인 배추를 씻어야 된다고 어머니가 나를 깨우셨습니다. 당신 아들은 출근해야 되니 니가 해야 된다는 말씀에 남편은 까칠했던 큰 애를 보고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나 우리 셋은 밖에 있던 수돗가에서 배추를 씻고 또 씻었습니다.


김장의 절차를 완전히 몰랐던 지라 소금에 절인 배추를 씻는 건 줄도 몰랐었는데 5백포기 가까운 배추를 끊임없이 찬바람 속에서 씻고 있자니 반은 미친 여자가 되어서 어서 이 추위를 벗어나고 싶다, 아니 시댁을 탈출하고 싶다 그런 마음이었을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차피 해야 할 일이었으면 좋은 마음으로 할 걸, 두 분은 한마음이었으지 모르나 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서였는지 셋이 함께 씻어 가면서 차곡차곡 쌓아오렸던 절인 배추는 피사의 사탑처럼 점점 기울더니 꼭대기에서는 와르르 무너져버렸습니다.

"다시 씻자" 

눈물로 씻었는지 수돗물로 씻었는지 모를 결혼한 지 두 번 째 해의 김장은 아마 제 눈물로 간이 됐을 겁니다.

-호흡곤란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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