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어를 몇 년째 배우고 있다. 스웨덴은 이주민을 위한 스웨덴어 교육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영주권이 나온 후로는 공부하는 시간만큼의 보조금도 받고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그 나라의 사람들과 단순히 의사소통을 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언어에는 그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 습관, 생각을 하는 로직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늘 언어 속에 감춰진 그들의 생각의 체계를 알게 되면 흥미로움을 느낀다. 그리고 점차 그들과 현지어로 띄엄띄엄이라도 소통을 할 수 있어서 고맙게 생각한다. 다만, 어린 나이가 아니라 쉽게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란 어렵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일주일에 2번 정도 스웨덴어를 배우러 학교에 직접 가는데, 우리 반은 처음에는 약 15명이 넘게 시작했는데 중간에 포기하거나 이사를 가거나 해서 이제는 딱 6명이 남았다. 이 과정은 올해 말에 끝나기 때문에 이제는 막바지 수업 몇 시간과 통과 시험 2번이 남았을 뿐이다.
우리 반 6명 중 3명이 시리아에서 온 난민 출신이다. 다들 바쁜 와중에 열심히 스웨덴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고, 막바지 과정까지 남은 만큼 스웨덴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다만 가끔씩 나는 이들을 보면서 놀란다. 대부분이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르거나 서툴다. 예를 들어, 파워포인트나 워드 같은 문서작성 프로그램에 전혀 익숙하지 않다.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아, 스웨덴어를 제외하고 수학과 같은 중등교육도 병행하고 있는 이들도 많다. 우리 반에서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은 나와 선생님 이렇게 2명이 전부다. 나는 가끔 이들이 컴퓨터를 다루다 문제가 생기면 도와주곤 하는데, 어느 날 한 친구는 워드로 숙제를 다 썼는데 이게 다 어딘가로 사라졌다고 오만 불만을 쏟아 놓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파일 저장은 했어?"
그리고 그 친구는 "저장을 해야 되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물론 온라인으로 작성을 했다면 자동으로 저장이 되지만 오프라인 워드로 작성을 했다면 파일 저장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이처럼 단순한 컴퓨터 다루는 일도 스웨덴은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엄청난 사회적 부담이 이민자들로부터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조금 씁쓸한 생각이지만, 난민을 이주시켜 정착시키는 일은 정말 오랜 시간과 재정이 필요한 일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단순한 교육이야 가르치면 될 일이다. 이보다 더 놀라운 일은 변하지 않는 혹은 변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인식의 차이다.
어느 날, 쉬는 시간의 일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커피 자판기가 있는데, 나와 시리아의 20대 초반 여성이 같이 내려가고 있었다.
내가 자리를 먼저 양보하자 그녀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레이디 퍼스트야?"
그래서 내가 답했다.
"아니, 레이디 퍼스트가 아니라 어린 사람 먼저야."
우리는 웃으면서 각자 커피를 뽑아서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레이디 퍼스트'라는 매너가 왜 문제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지 않는다. 여성이라고 먼저 가고 남성이라고 뒤에 가는 것은 전형적인 남성우월주의의 표현으로 여성을 단순히 보호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 먼저 가는 길을 양보하고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행위는 그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양보하거나 친절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그런 매너에는 성별에 대한 고려는 없다.
그렇기에 여성에게 보이는 일반적인 매너는 스웨덴에서는 상당히 이상한 일로 취급받게 되기 때문에 이런 매너에는 상당히 조심해야 한다. 만약 스웨덴 여성에게 레이디 퍼스트를 외치며 자리를 양보했다간 상당히 이상한 눈총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긴 나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많은 우리 반 여성들은 말했다.
"그래도 레이디 퍼스트지..."
한 번은 젠더 평등에 대한 이야기가 수업 중에 나왔다. 스웨덴도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노력을 들여 여성과 남성이 성별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뭐 그런 내용의 글을 같이 읽으면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이가 조금 있는 시리아 남성이 수업 시간 중간에 손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사회적으로 하등한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이 고등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지 않은가요?"
내가 놀란 점은 이렇다. 물론 그 나이가 많은 남성은 그렇게 살아왔기에 이런 생각을 개인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만보 양보해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어떻게 대중 앞에서 그것도 스웨덴 사람들 앞에서 당당히 할 수 있냐는 것이다. 나는 그 점이 더 놀라웠다.
물론 스웨덴 선생님은 무척이나 당황하고 화가 난 듯 보였다. 그가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다그치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다른 수업시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동성애자들은 에이즈를 퍼트리는 근원이기에 사회적으로 금해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심각한 인식의 차이를 느꼈다.
이 남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 남성은 시리아에서 고등학교 교장까지 지낸 나름의 지식인 계급이라는 점이다. 교육도 상당히 받았고 매너도 상당히 좋은 편이며, 성실한 평범한 사람이다. 다만, 이 남성이 가진 가치관은 스웨덴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용남이 될 수 없다.
언어나 컴퓨터야 몇 년이 걸리더라도 가르치면 되는 일이지만, 이러한 가치관의 차이는 어떻게 교정이 불가한 일인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종교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의 차이는 나중에 이들이 정치적 이익단체를 결성해 규모를 키워가면서 더 심해질 성질의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나는 본다.
나는 가끔 다른 이민자들을 만나면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이는 무슬림을 포함, 아시아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스웨덴이 가진 문화나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 별로 관심이 없다. 왜 스웨덴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무작정 이상하다고 치부해버리곤 한다. 나는 이민자들이 자신의 국가적 정체성을 지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스웨덴에 대해 더 이해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이 없다는 점은 상당히 잘못되었다.
이민자는 이민자로서 그 사회가 이루어낸 체계를 따를 의무가 있다.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여기서 살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스웨덴 사회에 흡수되지 않는 이민자들에 대한 스웨덴의 걱정이 커져가고 있다.
한 노년의 여성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렇게 스웨덴이 과거로 퇴보할 수는 없지 않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