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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이서 Nov 06. 2019

당신이 누군가와 관계를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머릿속에서 '반드시'라는 말을 지우세요

작년에 한 친구가 우리 동네에 가게를 개업했다. 친구는 개업하기 전에 동네 가게 두 곳의 시장조사를 내게 부탁했다. 나는 한 곳을 다녀온 이후에 갑자기 바빠졌고 다른 곳 분석하지 못하고 남겨두었다. 시장조사라고 말하고 염탐이라고 읽는 그 일은 시간이 많이 들고 귀찮은 일이었지만 이미 해주겠다고 말했기 때문에 나는 친구에게 나머지는 못하겠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때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그녀는 여러 이야기를 빙 둘러가며 하더니 이윽고 용건을 꺼냈다.


"너 왜 안 해줘? 귀찮으면 귀찮다고 말해. 안 해도 되니까."


친구의 태도는 공격적이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이번 주 안으로 하겠다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녀는 그제야 만족한 듯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통화 마지막에 얼핏 고맙다고도 한 것 같았지만 건성으로 들렸다. 짧은 전화의 용건은 나를 재촉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그 일을 거절하지 못했다. 친구의 퉁명스러운 말투에서 행간의 의미를 읽었기 때문이다.


"너 왜 안 해줘? 귀찮으면 귀찮다고 말해. 안 해도 되니까."

(= 네가 해준다고 해놓고 귀찮다고 해? 정말 이기적이다. 해주겠다고 말한 이상 넌 꼭 해줘야 돼.)


누군가에게 강요가 아니라 부탁으로 들리는 말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부탁의 말은 일정량 이상의 공손함이 내포되어 있어야 한다. 친구가 저렇게 따지는 듯이 말하는 대신 나에게 이렇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요즘 내가 바빠서 시장 조사를 할 시간이 없네. 너도 바쁠 텐데 나를 위해서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마워. 그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나도 잘 알아."


이런 식으로 공감과 감사의 표현을 했다면 나도 힘들긴 하지만 기분 상하지 않고 시장조사를 잘 끝냈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기분만 상한 채로 며칠 뒤 상사에게 보고서 제출하듯이 친구에게 시장조사 관련 문서를 건넸다. 그리고 이 친구의 부탁을 다시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녀는 내가 자기의 부탁을 마땅히  들어줘야 하고 깔끔하게 마무리까지 해야 된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게 왜 당연한가.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내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다. 친구의 가게는 내 가게가 아니고 친구의 이익도 내 이익이 아니다. 물론 내게 예의를 차렸다면 의미가 달라졌겠지만 말이다.


이런 식의 대화는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졌다. 최근에 엄마가 내게 한 말이다.


"우리 딸 요새 되게 바쁘네. 슈퍼 스타야. 엄마랑 얼굴 볼 새가 없네."


나는 이 말을 듣고 바로 기분이 상했다. 그녀가 내 행동을 비꼬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 싸웠다. 딸이 열심히 살면 응원해주고 칭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 엄마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를 내게 강요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면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한다는 식의 논리는 엄마의 생각일 뿐이고 내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그 정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는 '비폭력대화'라는 책에서 배운 대로 다시 엄마의 말을 분석해보았다.


"우리 딸 요새 되게 바쁘네. 슈퍼 스타야. 엄마랑 얼굴 볼 새가 없네."

(= 네가 나를 위해서 시간을 내주지 않아서 속상해. 가끔은 가족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어떠니.)


이렇게 순화된 방식으로 엄마의 말을 이해하니 기분이 훨씬 덜 나빴다. 그저 비판이나 비난으로 들리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예전에 만났던 남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저런 식으로 공격했던 말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내가 했던 말이 내 친구나 엄마의 말과 다를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전 남자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전화를 안 해? 그건 누구 사귈 때 기본 예의 아니야? 넌 예의가 없는 것 같아."

(= 나는 너랑 대화하고 싶어. 나는 사람을 만날 때 대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리고 나는 그 대화를 통해서 너에게 공감을 받고 싶어.)


이런 애매모호하고 미성숙한 대화들을 복기할수록 얼굴이 화끈거리고 부끄러웠다. 막말로 그 사람이 내게 빚진 것도 아니고 빚쟁이가 따지듯이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가 내 기분을 상하게 할 때마다 그를 심하게 압박했고 그런 일방적인 대화 방식은 그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날 때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은 그 사람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따지는 듯이 말하는 습관은 관계에 좋지 않다. 서로 가까워지고 관계가 보다 친밀해지면 안 맞는 부분이 생기고 요구를 할 일들이 생긴다. 상대방에게 요구를 할 때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나의 말은 부탁인가 강요인가?

상대방이 내 부탁을 거절하더라도 충분히 그에게 공감하고 물러설 수 있는가?


내가 상대방에게 공감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나의 요구는 강요가 아닌 부탁의 언어가 된다. 나는 이제 내게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준비가 되어있다.


난 당신에게 화낼 권리를 준 적 없는데요?


그리고 부탁을 할 때는 내 머릿속에서 '반드시'라는 부사를 지우고 상대를 대할 것이다. 그리고 웃으며 속으로 말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반드시) 내 부탁을 들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 대화'를 참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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