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ffic jam

엄마가 글을 쓰면 벌어지는 일

by 스미다

지난 몇 주간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고 합격 한 후 주변의 모든 것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변화가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데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또한 브런치가 내게 준 깨달음 이랄까. 이 글은 몇 주간 나와 함께한 단편적 생각들의 모음집이다.



#욕실

남자의 바람은 눈에 띄게 화려해진 속옷으로 알 수 있다 했는가, 그렇다면 아줌마의 바람은 핑크 곰팡이와 얼룩덜룩한 수전으로 알 수 있다. 글쓰기를 마주한 요 며칠 집안 꼴이 이삿짐 들어오는 날 못지않다. 화장실 바닥 줄눈에는 누르스름하고 검은 때가 사이좋게 배열되기 시작했고, 변기 암모니아 역시 몇 년 삭힌 홍어처럼 코를 찌르고 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물을 수 없는 거울은 글쓰기의 앞날같이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갖다 바쳤던 걸까. 잠시 소홀한 이틈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존재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화장실에 입이 절로 벌어진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달리 욕실의 하트 시그널을 애써 무시하고 문을 친히 닫는다.



#의심 (야, 너두?)

의심의 눈초리가 뾰족이 장착됐다. 카페 안, 노트북에 끄적이는 사람을 보거나 길가다가 책 읽는 사람만 봐도 브런치 작가인가 싶다. 모든 사람에게 의심의 레이저를 보내며 그들의 삶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 글에 대한 의심의 캠프파이어 역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삼십여 년을 글쓰기와는 담을 쌓고 지냈던 사람이다. (국어, 작문, 사회문화, 지리 모두 글과 관련 있단 이유로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음에도 이과로 진로를 정했다.)이제서야 글을 쓰려니 음식 쓰레기 생산자가 아닌 글자 쓰레기 생산자가 되는 것 같다.

굳이 브런치는 왜 하겠다고 신청해서 밤마다 잠 못 들고 등이 굽어져라, 노트북만 두드리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연년생 육아, 심지어 지금은 엄마 손 많이 가는 초1과 예비 초등 아이들 키우기도 벅찬데 기어이 일을 벌리고야 말았다.


의심하면 안 되지만 내 글에 대한 의뭉스러움이 거둬질 리 만무했고 브런치가 픽한 다른 작가의 글을 자꾸만 염탐하게 되었다. 내 실력은 아무리 찍어 발라도 잡티 하나 가려지지 않는 민낯 그 자체인데 브런치에 보이는 글들은 풀 메이크업 장전한 드레시한 글이었다. 자존감이 끝없이 이어지는 지하 주차장 그 어딘가에 틀어박힐려 하는데 머릿속에 쓰앵님의 대사가 떠올랐다.


"전적으로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오늘도 되뇐다.

"전적으로 나를 믿어야만 쓸 수 있다."




#디지털기기 중독자

글과 관련된 단어를 읊어본다면 노트, 펜, 책, 도서관, 영감, 그리고 노트북 정도였다. 보통의 아날로그적 단어들이 생각났고 디지털 기기는 노트북 하나 추가하면 될 터였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글쓰기를 하면서 책 못지 않게 손에서 놓을 수 없는것은 단언컨대 핸드폰이었다. 한순간 떠올랐다 터트려지는 비눗방울 같은 글감을 적지 못하면 다신 생각할 수 조차 없었다. 생각나는 대로 핸드폰 메모장에 적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사람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되었고 심지어 화장실도 동행하게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생님의 확언에 반신반의했다. 간단히 말해 쓰지 않으면 바로 놓게 되는 게 글쓰기 아닐까. 만나기는 어려워도 헤어지는 건 세상 쿨하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화장실도 함께 하는 사이라니. 이건 흡사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 여럿과 한 칸에 들어가 차례대로 용변을 보는 것과 비슷했다. 핸드폰과 화장실. 이미 글쓰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이 되어버렸다.





#아이 공부

도서관과 온라인 서점의 육아 교육 분야는 참새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방앗간과도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며 놓친 신간은 없는지, 발달 단계에 맞는 도서는 무엇인지 검색에 검색을 더했다. 그랬던 내가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자 글쓰기와 관련된 키워드를 입력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유려한 글을 쓸 수 있다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멋진 문장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하루에도 수십번 고민을 하고 출간 작가들의 생생한 조언을 얻으려 한다. 내 코가 석 자이다 보니 아이 공부는 뒷전이다.


"엄마 강의 들어야 해."

"엄마 글쓰기 숙제 해야 돼."

"엄마 책 읽어야 해."

누가 들으면 늦깎이 대학원생이라도 된 줄 알겠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아이 공부 봐 줄 시간에 내 과제 제출하기도 벅찼다. 쓰다 보니 더 잘 쓰고 싶었다. 담담하게 읊조리는 글을 쓰고 싶었고, 참을 수 없이 웃음이 새어 나오는 글을 쓰고 싶었다. 내 발등에 불 떨어지자, 아이 공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미안하다, 얘들아. 일단 엄마부터 살고 보자."

아, 오히려 덜어진 관심에 쾌재를 부르고 있을 아이들이려나.


글쓰기의 세계에 입문함과 동시에 내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뉴욕의 교통체증 못지 않은 traffic jam이 생겼고 엄마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원만히 해결해 줄 회전교차로가 간절해졌다.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