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방구석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나는 오늘도 콘서트를 즐긴다. 시끄러운 스피커, 멋진 무대 조명, 관객들의 함성과 박수, 그리고 연기 자욱한 스테이지까지! 이 모든 게 다 갖추어져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런 종류의 공연은 아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치열한 티켓팅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관객은 딱 한 명, 악기는 겨우 기타 한 대, 조촐한 15W 기타 앰프, 그리고 헤드폰 하나가 전부인 공연이다. 이것은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방구석 콘서트니까.
집에 아무도 없을 때면 나는 기타를 손에 쥐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때부터 나만의 방구석 공연이 자연스레 시작된다. 일단 방 안의 조도를 적당히 낮추고 간이 의자에 앉은 후에 부르고 싶은 노래들을 천천히 떠올려본다.
공연 전 셋리스트를 짜는 뮤지션은 아니지만 일단 그런 것 같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게 중요하다. 숨죽여 기다리는 관객들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애써 관객들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게 나름의 포인트다.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나 이문세의 '빗속에서'처럼 7080 느낌의 애잔한 노래들이 끌린다. 기분이 꿀꿀한 날에는 AC/DC의 'Black in Black'이나 Artic Monkeys의 'R U Mine'처럼 록 스피릿이 물씬 나는 곡들이 스트레스 해소엔 그만이다.
힙한 인디밴드가 되고 싶은 날에는 혁오의 '가죽자켓' 같은 선곡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셋리스트를 정하는 순간마다 나는 꽤나 진지하다. 이미 머릿속에는 수십 명의 관객들이 객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 전에 기타 앰프에 헤드폰을 연결하고 볼륨을 한껏 올리면 왠지 모를 현장감이 느껴지고 마음이 웅장해진다. 물론, 커다란 무대 위가 아닌 좁디좁은 방구석에서 나 혼자 신난 것이지만. 나는 한껏 부풀어 오른 마음으로 서정적인 통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거나, 디스토션이 잔뜩 걸린 거친 일렉기타 사운드로 헤드뱅잉을 하거나, 때로는 흥에 겨워 방바닥에서 소심한 점프를 한다.
공연의 퀄리티는 언제나 그렇듯 난리 법석이다. 기타 연주를 틀리거나 노래 도중에 음이탈이 생기는 등 민망한 모습들이 연이어 발생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의 나는 프로 뮤지션이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속인다. 나의 멋진 공연에 사람들이 양손을 들고 엄지를 추켜 세우며 몇몇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고 믿고 싶지만 현실은 방 안에서 나 혼자 흐르는 콧물을 쓱 닦을 뿐. 그때 방문 너머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만해!
아내가 집에 온 것이다. 나는 준비해둔 앙코르 곡들을 고이 마음속에 접어 놓은 뒤에 기타를 방 한편에 고이 모셔놓는다. 언젠가 아내 옆에서 은근슬쩍 방구석 콘서트를 몇 번 시도해보기도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녀는 평소에도 음악 듣는 걸 즐기지 않는 데다가 나의 기타 레퍼토리를 지겹도록 들었으니까. 심지어 같이 사는 강아지에게도 몇 번 도전을 했지만 녀석은 기타 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자리를 피하곤 했다. 타인과 동물을 배려하는 것이 방구석 콘서트의 에티켓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혼자 노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어이없을 만큼 이상하다고 생각할게 분명하다. 낯부끄럽게 뭐 하는 짓이냐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벌어지는 혼자만의 오버액션 콘서트가 좋다.
이 공연의 유일한 관객은 나라는 사람 한 명뿐이지만, 그 사람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매번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듣기 싫어할 나의 목소리와 기타 소리를 나란 사람만큼은 기꺼이 들어줄 수 있으니까.
사회적 거리가 필수인 시대다. 만남이 줄어들고 방 안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어쩌면 사람들로부터 멀어지는 시기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 스스로와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기타를 잘 치건 못 치건, 노래를 잘하건 못하건, 한 번쯤 나 혼자만의 콘서트를 가끔씩 열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소음 관리는 필수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은 반드시 피할 것. 나처럼 기타 소리를 헤드폰으로 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옷이나 이불을 잔뜩 쌓아두고 노래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소음 차단에 도움이 된다.
조용하게,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시끄럽게, 마음껏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어느새 잊고 살던 관객 한 명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는, 수만 명의 관객보다도 더 소중한, 평생 내 곁에 함께 있어 줄, 바로 나라는 관객을.
이 멋진 관객을 만나기엔 역시 방구석만 한 곳이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모두에게는 '방구석'이라는 '믿는 구석'이 하나쯤 있는 셈이다.
우리는 기타를 샀거나, 가지고 있지만 치지 않거나, 구매하고 싶거나, 아니면 언젠가 장만하게 될 사람들이니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기타리스트인지도 모릅니다. 10년 넘게 방구석 기타리스트로 살면서, 기타가 있어서 알게 된 새로움과 기타가 없었다면 몰랐을 유쾌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photo by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