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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학교에서의 사물놀이 15년

서태지의 태평소부터 케이팝 데몬 헌터스 까지

by Seunghwan Connor Jeon

부산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를 졸업한 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연주하는 것도 좋아한다. 20여 년 전 중국에서 당한 교통사고로 입술 아래의 신경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현재도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부모님 두 분 다 예술에 소질이 있으셨고 어머니는 피아노 교습소를 여러 해 동안 운영하셨다. 음악을 좋아하고 곧 잘하기도 하는 나였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는 국악을 접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8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니던 당시 한국의 교육은 국악에 대해서 그렇게 강조하는 편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오히려 서울에서 교직을 시작하면서 내가 어렸을 때 배웠던 것에 비해 국악을 비롯하여 교육과정 전반에 걸쳐 한국 고유의 문화에 대한 내용이 많아졌다고 생각이 되었다.


2025년, 한국에서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한 꽹과리를 잡고 미국의 학교에서 사물놀이를 가르친 지 15년 차에 접어들게 되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교사로 근무를 시작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사물놀이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우리 학교의 학생들에게도 이를 가르치게 되었다. 개교 당시에는 우리 학교에는 한국학생들이 꽤 있어서 사물놀이 클럽은 이들이 교실 외에서 한국문화와 전통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개교 이후 15년이 지난 지금 지역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제는 전교생 대부분이 남미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나는 여전히 사물놀이 팀을 담당하고 있다.


이 사물놀이 때문에 여기저기 참 많이도 다녔다. 각종 교사 콘퍼런스나 교육청 행사에 초대를 받아 연주하기도 했고 매년 L.A. 코리아타운 올림픽대로에서 열리는 한국인 퍼레이드에도 3년 연속으로 참여해 공연을 해오고 있다. 학교 내에서도 1년에 최소 2회 연주를 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물놀이를 배우는 학생들의 가족과 친구를 초대하여 연주하는 쇼케이스이다. 이 행사에서 부모들과 친구들은 사물놀이와 아리랑, 한국의 문화에 대해서 간단하게 배우고 자신들의 자녀가 배우는 사물놀이의 악기를 직접 연주를 해 보기도 한다. 관중의 입장에서 사물놀이를 보는 것과 무대 위에 올라서 실제로 악기를 만져보고 연주하는 것은 이들에게 또 다른 차원의 경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해 오디션이 있는 날이면 정원인 20명 보다 3-4배 정도의 학생들이 지원할 정도로 사물놀이는 인기가 많지만 이를 통해 선발되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정작 사물놀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여한다. 학교 행사에서 몇 번 스치듯 본 것이 사물놀이에 대한 경험의 대부분일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한국의 리듬을 배우는 것은 어린 학생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연습을 시작하고 한 두어 달이 지나면 오디션을 통과한 학생 중에서 몇 명은 슬금슬금 연습에 빠지기 시작한다. 너무 어렵거나 흥미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생전 접한 적이 없는 인사굿, 굿거리, 이채, 삼채, 양산도, 별달거리 등의 리듬을 머리로, 또 몸으로 익혀야 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리듬의 종류도 적지 않은 데다가 매해 있는 공연을 위해 짧은 기간 동안 완성을 해야 해서 더 부담이 가기도 할 것이다.


92학번, 서태지 음악의 시작을 함께한 나는 그의 음악에서 KPOP과 한국의 전통악기가 이렇게 훌륭하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감흥을 받았다. 요즘 가수들에 큰 흥미가 없던 나는 최근에 KPOP과 관련한 Lesson Plan을 교육청의 다른 교사들과 협업하면서 한국문화의 고유한 멋이 최근 유명세를 얻고 있는 세계적인 KPOP 아티스트들에 의해서 예전에 비해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이들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얻어 작년에는 처음으로 우리 학교 사물놀이 팀에 전자드럼을 합류시켜 연주를 하기도 하였다.


최근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한국의 문화와 이야기들이 영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것”에 대한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차원의 자부심과 흥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새 학기가 되면 우리 반 학생들과 이 영화에 대한 내용으로 수업도 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도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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