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행>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판문점에서 극적으로 만나던 순간, 뉴스를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는 멀지 않은 시기에 어쩌면 북한을 여행하고 있을지 모르는 ‘힙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옥류관에서 평양냉면을 먹고, 김일성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고, 소고기 대신 생선패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먹으며, 대동강 맥주를 마시고 있을 나. 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린 후 따봉을 쓸어 모으고 있을 나. 이 상상은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한편으로 대단히 협소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북한에 대한 나의 지식수준이란 고작 그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냉면, 맥주, 생선 버거.
그러나 뤼디거 프랑크의 <북한 여행>을 읽고 나면, 실제로 북한 여행이 가능한 시기가 온다고 하더라도 위에 언급한 장면들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나이브한 상상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앞뒤 혹은 중간중간 복잡하고 번거로운 절차들이 산재해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의 의욕 자체를 상실할지도 모른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 북한에 대한 탐사 리포트나 르포라고 생각했던 <북한 여행>은 알고 봤더니 정말 말 그대로 북한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었다. 매우 두껍고, 세세하며, 사회 정치적 맥락을 담은 가이드북.
동독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유학을 한 뒤 30년간 북한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저자 뤼디거 프랑크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북한 여행>이란 책을 냈고, 유럽에서 발간된 이 책은 올초 국내에도 번역되었다. 일반적인 가이드북이나 여행서적이 그러하듯이 <북한 여행> 또한 입국부터 출국, 숙소, 음식, 관광 포인트, 기념품과 기념사진 스팟, 각종 유의사항에 이르기까지 여행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북한의 정치 사회적 맥락과 함께 녹여 매우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
나는 우선 북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과 책까지 출판될 정도로 북한을 여행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다는데 꽤 놀랐다. 알고 봤더니 한국(남한)과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북한을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리고 남들과 좀 다른 것을 추구하는 힙스터 역시 지구 어디에나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전 세계를 상대로 홀로 투쟁을 벌이는 독재국가를 구경하고 온 것은 남들에게 주목을 받고 자랑을 하기에 충분한 경험일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에게는 늘 ‘독재국가 체제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돈을 쓰고 왔다며 비판하는 목소리가 따라오는 것 또한 상상 가능한 수순이다. 그들 또한 나름의 할 말이 있다. “물론 우리가 관광을 가서 돈을 쓰는 것이 체제 유지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으나 한편으로는 고립된 북한 주민에게 세계를 노출시키는 동시에 그들을 조금씩 자본주의에 물들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여간 뤼디거 프랑크의 설명에 의하면, 북한을 여행하는 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근래 북한 자체적으로도 외화벌이를 위해 꽤나 적극적인 유치 노력을 기울이는 통에 여행 자체는 어렵지 않게 시도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이 상상초월로 복잡하다. 반드시 북한 전문 여행사를 통해 컨택해야 하고, 여행 기간 내내 북한이 배치한 관광 안내원과 함께 정해진 스케줄과 동선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자유여행은 불가능하다.
비용도 생각 이상으로 많이 든다. 북한은 세계적으로도 빈곤한 국가 중 한 곳이며, 물가도 싸므로 여행 비용 또한 매우 저렴해야 함에도, 아예 외화를 목적으로 유치된 관광 프로그램은 당연히 별개의 기준으로 운영된다. 일주일 남짓의 일정 동안 숙식을 비롯하여 안내원 팁 등으로 몇백만 원 이상 쓸 것을 각오해야 한다. 물론 어차피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나서 쓰는 비용도 비슷하겠으나 서비스의 수준이 세계적으로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므로, 가성비에 대해서는 좀 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입국절차 또한 만만치 않다.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매우 자세히 검사하고, 특히 전자기기와 usb 등의 저장장치에 엄격하여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중국에서부터 비행기 또는 기차를 타고 몇 박 며칠이 걸려 힘들게 북한 국경까지 접근한 뒤 다시 6-7시간의 입국 수속을 거쳐야 한다니 상상만으로도 매우 피곤하다. (물론 한국의 경우 국경까지는 훨씬 시간이 적게 걸리겠으나.) 출국 수속 역시 마찬가지다. 여행 중 찍은 사진을 일일이 검사받아야 하며, 운이 나쁘면 힘들게 찍은 사진들을 전부 삭제당할 수도 있다.
여행 중에도 무엇 하나 자유롭게 할 수 없다. 김일성 일가의 동상을 보면 매번 절을 하도록 강요당하는 동시에, 아무 사진이나 마음대로 찍어서는 안 되며, 김정은 일가 혹은 북한 체제에 대한 언급을 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여행 중 돌발행동 또는 금지된 행동을 하여 문제가 된 관광객들이 없지 않았고 이들 대다수는 감옥에 갇혔다가 각 나라의 국가 원수 또는 거물 정치인의 요청에 의해 거의 죽기 직전에야 풀려났다. (몇 년 전 미국인 한 명은 결국 죽었다.)
이렇게 적으니 마치 탈레반의 나라처럼 느껴지고 대체 뭣 때문에 그 고생을 하며 북한을 굳이 여행해야 하는지 의문을 품을 사람이 많겠지만, 한편으로는 또 그렇게까지 끔찍한 것만은 아니다. 그랬다면 저자 역시 북한에 그렇게 반복해서 가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서양인들은 실제 북한에 가본 뒤 상상과 다른 모습에 깜짝 놀란다고 한다. 생각 이상으로 자유로운 부분이 있고 북한 주민들이 실제 욕구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고도 한다. 또한 음식을 비롯하여 숙박 그리고 북한 주민과의 만남 또한 그 자체가 매우 독특한 경험이기 때문에 그러 인해 간간이 얻게 되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다고도 한다.
물론 이것은 유럽인의 시선으로 쓰인 것이다. 작년에 탈북 후 동아일보에서 일하고 있는 주성하 기자의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게 준 내부자 관점에서의 북한이었다면, 이 책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북한이라고 할 수 있다.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가 통일을 잠재적 결론으로 놓고 그에 대비하여 북한에 대해 알아야 하는 예비지식을 알려주는 느낌인데 반하여, <북한 여행>은 말 그대로 외국인이 외국인을 상대로 북한을 여행하기 전에 알아야 하는 말 그대로 ‘실용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가깝다.
그의 시선으로 묘사된 북한은, 나에게는 마치 50-70년대 독재정권 시절의 남한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많았다. 먹고살기가 힘들고 어렵지만 여전히 국가의 지도자에 존경심을 가지고 있고, 아직 사회 정치적인 의식이 완전히 박혀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는 아닌 어떤 단계. 뤼디거 프랑크에 의하면 북한 주민 ‘대다수’(아닌 이들도 있다)는 당의 시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김정은 일가에 존경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어떻게 독재국가에서 여전히 그 지도자를 좋아할 수 있을까 싶지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절의 많은 이들, 여전히 박근혜를 석방하라고 외치는 많은 노인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저자인 뤼디거 프랑크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관심을 갖게 된 뒤 북한에서 유학까지 하고 북한 전문 여행사를 차려 일하고 있을 정도로 북한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의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체제를 옹호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비판하거나 경멸하는 것도 아닌 말 그대로의 호기심과 애호. 그러한 그의 시선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그로 인하여 책에 기술된 내용이 더욱 사실적이고 중립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므로.
‘외국인이 바라본 한국’이라는 측면에서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공통적으로 적용될만한 내용도 많아 그 또한 매우 재미있었다. 한국 특유의 서열문화, 당쟁의 역사, 일본에 대한 감정 등등. 저자가 매우 독특한 유머 감각을 지니고 있는데, 굉장히 우스운 이야기를 아주 정색하고 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주변인들이 너무 웃기다며 깔깔대는 와중에도 혼자 정색하고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는 그런 사람.
대부분의 가이드북처럼 중간중간 정치적으로 중요한 건물들의 역사적 배경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더군다나 그 건물들을 살아생전 보게 될 가능성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으나, 그 대목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북한 사람들과의 대화, 그들의 풍습, 식사자리에서의 경험, 그에 대한 저자의 소소한 묘사 등. 사실 자극의 수준으로 따지면 <평양자본주의백과전서> 쪽이 훨씬 높지만(북한 상류층의 생활, 마약, 성 풍습 등등), 북한에 대한 어떤 전체적인 인사이트 측면에서는 <북한 여행> 쪽이 오히려 조금 더 높지 않나 싶을 정도로 아주 잘 읽은 책이었다.
⭐️⭐️⭐️⭐️⭐️
미래가 어떻든 우리는 북한과 그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거기에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감각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어쩌면 예측할 수도 있으니까. 무엇은 보라고 안내하고 무엇은 보여주지 않는가도 북한에 대한 지식에 속한다. 보여주지 않는 것이 특히 많은 것을 알려준다. -p.15
전통적으로 서열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한국에서, 이론적으로는 평등한 사회주의 이념에도 불구하고 동무의 또 다른 개념이 있는데, 이는 ‘존경하는 동무’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는 ‘동지’라는 말이다. 분명하게 고위층 한국인이고 그의 성이 최라면, 그에게 정중하게 말을 걸려고 한다면 ‘최 동지’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p.102
맥주에 관한 한 북한은 경쟁에서 남한을 가볍게 물리치고 있다. 남한의 가벼운 상표 하이트와 오비라거는 감칠맛이 도는 대동강맥주에 미치지 못한다. -p.165
언제나 양옆에 앉은 사람들의 잔이 어느 정도나 차 있는지 계속 주시해야 한다. 옆 사람이 내 잔을 채워주려고 하면 곧바로 잔을 오른손으로 들어올리고, 얼마나 공손하거나 굴종적이고 싶은지에 따라 왼손도 오른팔 팔꿈치에 가져다 댄다. 최고 존경심은 두 손으로 잔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오버하지 마시라. 상대방이 놀림을 당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
마실 때는 나이가 적은 사람 또는 직급이 아래인 사람이 몸을 약간 옆으로 돌린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사람에게 마시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높은 사람은 보통 신경도 안 쓰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몸짓은 중요하다. 또한 북한에서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은 담배에 불을 붙이기 전에 허락을 구한다. 물론 양해해주지 않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잔을 부딪힐 때도 사회적으로 지위가 낮은 사람은 자신의 잔이 상대방의 잔보다 아래로 가도록 부딪힌다. -p.166
북한의 특별한 술로는 인삼주가 있다. 선물용으로 인기가 좋다. 대개 맑거나 황금색으로 도수는 35도이며 땅의 맛이 난다. -p.166
북한 지하철의 특이점은 노인과 임산부를 위한 특별좌석 말고도 ‘영웅’을 위한 좌석이 있다는 사실이다. 노동이나 군복무에서 특별임무에 투입되었다가 신체적 상해를 입은 북한 사람들이 영웅 지위를 얻는다. -p.189
평양 남쪽 남포에서 생산하고 독자적인 인터넷사이트까지 운영하는 이 회사의 제품 중 가장 널리 퍼져 있는 것은 ‘휘파람’이다. 벌써 세 번째 모델 계열까지 출시했다. (...)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뻐꾸기’다. 이런 터무니없는 모델 명칭은 유럽 시장에서는 거의 구매욕을 자극하지 않을 것 같지만 자동차 자체는 아주 볼만하다. 사륜구동 SUV 차량인데, 멀리서 보면 메르세데스 GLS의 축소형처럼 보인다. -p.191
불과 몇 년 전부터 북한 거리에서 택시들이 돌아다닌다. (...) 분명 서로 경쟁하는 여러 개의 택시회사가 존재한다는 것이 특별하다. -p.194-195
한국의 대표 술인 소주 진열대에는 서로 다른 싱표의 소주 열 두어 종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가장 싼 것은 2500원, 비싼 것은 1만 5000원까지 한다. 우유는 파인애플 맛과 딸기 맛이 있다. 맥주는 캔이나 병으로 구할 수 있다. -p.227
앞에 거론한 몇 가지의 가격은 우리에게는 푼돈일 수도 있지만 북한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큰돈이다. 돈을 가방 잘 버는 중노동자가 행운까지 따라줘야 한 달에 200~300 유로를 번다. 경공업 노동자는 70~100유로, 그보다 적을 때가 많다. -p.227
평양은 그 존재만으로 이미 중요한 체제 유지 기능을 달성한다. 이곳까지 온 사람들의 충성심을 보장하고, 이리로 오는 중인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면서, 많은 북한 사람의 꿈과 야망을 국내로 향하게 만든다. 북한의 수많은 유능하고 젊은 사람들이 파리, 뉴욕, 도쿄, 서울 등을 꿈꾸지 않고 평양에서 살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그들은 알고 있다. 체제가 정해놓은 규칙을 수행하는 사람에게만 그런 화음 티켓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p.239
번성하는 아파트 암시장 - 아파트는 예나 지금이나 국가 소유니까, 비록 부동산을 직접 거래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인 세입자에게 엄청난 금액의
달러화를 지불하고 거주권을 얻을 수 있다. 공식적으로는 그냥 아파트 바꾸기다. p.264
여행 프로그램에 역사박물관 방문이 들어 있다면 당신은 미리 단원들과 상의를 해서 가이드에게 특정한 전시실이나 시대를 보여달라고 부탁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19세기 중반부터 보기를 권한다. 조선왕조(1392~1910)시대 궁중의 권력투쟁의 역사는 매우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 오늘날 살아 있는 한국 정치의 전통에 대해 악의 없는 방식으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p.268
온갖 상대화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북한 예술은 체제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p.279
이 자리에서 다시 북한여행을 예약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부러 그들을 모욕하는 것도 불필요한 일이다. -p.291
몇 가지 선물은 상당히 기묘하다. 예를 들어 니키라과에서 온 1미터 정도의 작은 박제 악어는 뒷다리로 서서 잔들이 놓인 쟁반을 들고 있다. 여성 안내원이 얼굴도 찌푸리지 않고서, 심지어 이렇게 위험한 맹수도 위대하신 수령님에게 봉사한다고 설명한다. -p.336
한국은 당시나 오늘날이나 매우 중앙에 집중된 국가이다. 정확히 보면 새 국가이념인 유교는 이후 500년간 이런 중앙집중 경향을 더욱 강화했다. 미국 외교관이자 역사가인 그레고리 헨더슨이 그의 책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아주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한국 정치에서는 중앙으로의 진출이 전부다. 다른 대안이란 없다. 수도에 있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 어떤 직위도 얻지 못하고 조정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없으며, 인지되지도 않는다. -p.359
강원도의 도청소재지인 원산시는 (...) 동해에 직접 닿아있다. 남북 가리지 않고 한국인들에게 경솔한 짓을 하고 싶지 않다면 이 바다를 절대로 일본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p.377
유럽의 관광객은 대부분 정치적 관심에서 북한을 여행하고, 뛰어난 경치를 만나면 오히려 보너스로 여기는 편이다. 그에 반해 중국 관광객은 깨끗한 바다에서 수영하는 것이 여행의 진짜 이유다. -p.377
제철소 소속 유치원의 공연도 관광 프로그램에 속한다. 평양의 학생수년궁전이나 다른 교육기관의 유사한 행사도 그렇지만, 여기서도 이런 행사는 내게 언제나 약간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아주 어린 아이들조차 완벽하게 훈련되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지만 이상하기도 하다. 사탕을 사는 것은 필수의무다. -p.405
근처의 공중 목욕탕을 방문할 기회도 있다. 하지만 조심하시라! 그것을 일본의 온천이나 남한의 찜질방 같은 것으로 상상하고 집단 체험을 기대한다면 오판이다. 개인 방을 할당받는데, 약간 공포소설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녹슨 관들, 부서진 타일, 네온 조명, 벽에서 벗겨지는 페인트,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여기서 욕조에 온천수를 채울 수가 있다. 온도는 조절되지 않는다. 나는 온도계는 갖고 있지 않았지만 물은 무지무지 뜨거웠다. 아예 발도 담가보지 못했는데, 그건 그야말로 말뜻 그대로 가혹한 일이었다. 다른 여행자들은 30위안을 절약하는 쪽이 낫다. -p.407
청진역사박물관에서는 그사이 거의 북한 전역으로 퍼진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이른바 ‘구호나무’라는 것이다. 이는 1980년 무렵 김정일이 시작한 선전활동의 일부인데 항일투쟁의 유산을 보존하고, 김일성 일가의 뛰어난 역할을 드러내는 일이다. 오늘날까지도 애국자들은 산에서 나무껍질이 벗겨진 자리에 ‘김일성 장군 만세’ 같은 구호가 새겨지거나 그려진 나무들을 ‘발견’한다. 이렇게 말해보자. 이 모든 구호들이 진짜라면 당시 몇 안 되던 빨치산들은 24시간 나무들을 장식하느라 바빠서 싸우거나 잠잘 시간도 거의 없었으리라. 방문객들이 듣는 충직한 설명에 따르면, 청진 일대에만 3,000그루의 구호나무가 있으니 말이다.
1998년에 이런 맥락에서 돌발사건이 일어났다. 17명의 군인들이- 남자 10명, 여자 7명- 숲에서 야영을 하다가 불이 났다. 여러 유화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제 몸을 던져 구호나무들을 덮었다. 그들은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구호들을 구했고, 덕분에 영웅이 되었다. 오늘날 북한의 모든 어린이는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안다.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의 애국심이 내 생각에는 진짜일 것 같다. 그런데 어쩌면 그 일은 그냥 비극적인 사고였는데, 젊은이의 부모들이 절망한 나머지 나중에 이런 영웅담으로 바꾸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p.407
중요한 점. 어떤 경우에도 낯선 사람이 베이징에 있는 ‘친구’에게 줄 거라는 짐 꾸러미를 맡아주지 말 것. 불법적인 물건을 가지고 있다가 잡히면 세상 어디서도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특히 여기서는 그야말로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다. -p.429
조용히 사진들을 본다. 흔들린 사진들을 지운다. 질주하는 버스에서 흔들리느라 놓쳐버린 디테일들을 발견한다. 자기가 영웅처럼 느껴지고, 또 영웅 대접도 받는다. 아니 정말로 북한에 갔었어? 와우, 북한 사람들이 당신을 도로 내보내줬단 말이지? 그 비슷한 말들을 듣는다.
그러고는 홀로 자기만의 생각에 빠진다. 기대는 충족되었나? 투자 비용은 과연 보람이 있었나? 이제 나는 더 많이 알게 되었나? -p.434
물론 많은 면에서 그의 의심이 확인되기는 했다. 금지, 거짓말, 가난, 기묘한 자기서술, 추위, 보살핌과 선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었다. 어쨌든 그는 나의 많은 동반자들이 그러듯이 겨우 며칠 만에, 북한의 현실이 우리 미디어에서 퍼뜨리는 아주 단순화된 전형들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경험들도 염두에 두고서 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맨 앞에 제시했던 질문 - 북한여행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 에 대해 분명하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그 나라, 그 체제, 그 지도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상관 없이, 진지한 비평가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라는 것이다. 대개 겨우 1주일짜리 여행을 하고 나서 간단히 모든 것을 안다고 하는 그런 식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오히려 가능한 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보려는 북한 측의 온갖 대담한 시도들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여행해야 한다. -p.434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인 쇼인가? 양심적으로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전에 갖고 있던 이미지에 잘 들어맞지 않는 인상과 경험을 받아들일 각오와 더불어 건간한 의심도 중요하다. 아무도 우리에게 특정한 관점을 가르쳐줄 권리가 없다. 내 생각에 북한을 다룰 때도 역시 그래야 한다. 가서 보고 몇 가지 결론을 이끌어내고, 그 과정에서 비판적이되 공정함을 유지하라. 북한여행은 절묘한 줄타기이다. -p.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