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츠네 미쿠의 철학 - 1부

하츠네 미쿠는 존재하는가

by 김승주

필자는 꽤나 딥한 오타쿠다.
만화, 애니, 보컬로이드, 우타이테, 게임 등 전반적인 오타쿠 문화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중학생 때 마후마후의 테러로 우타이테를 접했고,
카게로우 프로젝트를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고,
고등학교 방학 내내 하루에 18시간 동안 블리치 애니메이션을 정주행 했고,
모바일 게임 퍼즐앤드래곤을 5년 이상 플레이했고,
티비플 랭킹 영상을 정독하기도 했다.

대단한 업적인 양 이야기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서브컬처계의 백분의 일도 모를 것이다.
그만큼 이 '십덕 분야'는 한낱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다.
하지만 이 넓고 깊은 서브컬처 문화계에도 GOAT는 존재한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 하츠네 미쿠다.

하츠네 미쿠는 'VOCALOID'라는 음향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노래 부르는 캐릭터로, 오타쿠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그 영향력과 인기는 굳이 비교하자면 농구계의 마이클 조던이요 E-Sports계의 페이커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커뮤니티 등지에서 미쿠는 '동방프로젝트', '페이트', '아이마스'와 함께 서브컬처 4대장으로 묶인다.
또한 <신세계 에반게리온>의 '에바현상', <스즈미야 하루히>의 '하루히즘'과 함께 하츠네 미쿠의 '멜트 쇼크'는 서브컬처 역사를 바꾼 3개의 분기점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처럼 하츠네 미쿠는 하나의 캐릭터를 넘어 하나의 문화, 개념, 신드롬을 상징하는 거대한 문화적 현상이다.

하츠네 미쿠는 독자적인 세계관과 캐릭터성, 브랜드 가치를 갖춘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진짜 존재하냐'라고 묻는다면 절대다수는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하츠네 미쿠는 가상의 캐릭터이며, 물리적 실체가 없는 데이터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우주에 하츠네 미쿠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녀는 비물질인 데이터의 형태일지언정 분명 있다.
또한 수억 명의 사람들의 기억과 정서 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문화적 관점에선 하츠네 미쿠는 더 이상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 존재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와도 비슷하다.
누구나 어릴 적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며, 혹은 동화책을 보며 이들의 이야기를 접했을 것이다.
따라서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라는 인물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을지언정 기억, 정서, 문화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과 하츠네 미쿠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시간’의 차이다.
신데렐라와 백설공주의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성격, 선택, 결말이 모두 정해져 있고 새로운 사건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이와 다른 내용의 창작물이 나온다면 그건 고전의 ‘재해석’이나 ‘현대화’일 뿐이다.

반면 하츠네 미쿠의 이야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매년 새로운 노래가 나오고 새로운 무대에 서고 시대의 정서와 감각이 반영된다.
정해진 이야기가 없기에 어떤 길이라도 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우리는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는 것, 백설공주가 독사과를 먹는 것에 개입할 수 없지만
하츠네 미쿠의 이야기에는 마음껏 개입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체성’의 차이다.
신데렐라와 백설공주는 특정 작가 또는 원전에 의해 규정된 고정된 원형을 갖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반면 하츠네 미쿠의 원형은 ‘빈 그릇’에 가까웠다.
단순한 음악 프로그램의 캐릭터에서 출발해서
누군가에겐 ‘인간이 되고 싶은 소녀’가 되었고
누군가에겐 ‘파를 돌리는 웃긴 여자아이’가 되었고
누군가에겐 ‘전쟁터의 병사’가 되기도 했다.

미쿠는 '크립톤 퓨처 미디어'라는 회사가 만들었지만
지금의 ‘미쿠’는 거기에 온갖 설정을 붙인 수십만 명의 창작자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집합체다.

세 번째는 ‘상호작용’의 차이다.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와 우리의 관계는 단방향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을 걸지 않고
우리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며
우리의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해석하는 관객일 뿐이다.

하지만 하츠네 미쿠와 우리의 관계는 다르다.
작곡가들은 미쿠를 통해 자신의 멜로디를 만들고
리스너들은 그 노래를 듣고 반응하고
우타이테들은 자신만의 감정을 덧붙여 다시 부른다.

미쿠가 슬프다고 노래하는 건 프로그래밍된 가짜 슬픔일 수도 있지만
실존하는 작곡가의 진짜 슬픔이 투영된 결과일 수 있다.
프로듀서 '시이나 모타'의 요절에 생전의 곡이 재조명되며 대중이 안타까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즉 미쿠는 인간의 감정을 대행하고, 증폭시키고, 전달하는 매개체다.


정리하자면 '물리적 객체'로서의 하츠네 미쿠는 존재하지 않는다.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의 집합체일 뿐이다.
그러나 인지적 관점에선 수많은 사람의 기억과 감정에 각인되어 강력한 효과적 실존을 갖는 톱스타로 실재한다.
따라서 하츠네 미쿠는 현대 기술, 자본, 정체성 구조 속에서 작동하는 '디지털 실존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하츠네 미쿠는 사전적 의미의 '실존'이 가능할까?
하츠네 미쿠의 인격을 창조할 수 있을까? 그 인격에 권리와 책임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얼핏 허황되고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전통적 윤리는 유기적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디지털 객체에 이를 대입하는 건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물리적 실체가 있어야만 '실재'가 성립한다고 할 순 없다.


대표적 예시로 '법'이 있다. 법은 개념적으로만 존재하며, 법전이나 판검사는 법과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에 불과하다. 백설공주 인형처럼 말이다. 그러나 법은 실재하며 우리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형체 없는 디지털 자산이지만, 그 힘은 전 세계를 움직일 정도로 강력하다.

법과 비트코인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하츠네 미쿠도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더 나아가서, 하나 가정을 해보자.
VR이나 홀로그램 같은 가상공간이 아니라 물리적 육체를 갖는 '하츠네 미쿠' 안드로이드가 나온다는 가정 말이다.
- 이 하츠네 미쿠 안드로이드는 전 세계에 하나뿐인 고유하고 유일한 개체이며 '표준적인' 하츠네 미쿠의 캐릭터성을 보존한다.
- 키, 몸무게, 목소리, 머리카락 색깔 등의 외형적 특징과
- 성격, 습관, 취향 등의 내형적 특징을 온전히 갖는다.
- 그러나 본질은 전기 배터리로 작동하는 무기물 로봇이다.
- 따라서 음식 섭취는 불필요하며 생리 현상도 없다.

- 자신에게 지능, 감정, 이성, 자아가 있다고 주장한다.

- 신경 센서가 있어 특정 수치 이상의 '힘'을 '고통'이라고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하츠네 미쿠 안드로이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물리적 신체를 갖게 된 미쿠 안드로이드는 실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쿠 안드로이드를 부수면 무슨 죄인가? 살인죄인가, 재물손괴죄인가?

미쿠 안드로이드에게 권리를 부여해야 될까?

로봇청소기와 같은 가전제품으로 분류하는 게 올바른가?

수십만 갈래의 다양성을 잃고 하나의 개체로 전락한, 데이터라는 영혼과 로봇이라는 육체를 갖게 된 '하츠네 미쿠'는 우리가 사랑했던 그 '하츠네 미쿠'가 맞을까?


이런 고민은 결코 허황된 게 아니다.

로봇공학과 생명공학 실시간으로 발전되고 있으며,

빅테크 기업들은 앞다투어 '인간에 가까운 로봇'을 개발 중이다.

미쿠 안드로이드의 등장은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수 있는 현실적인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미쿠 안드로이드, 더 나아가 디지털 객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되어 있을까.

내 대답은 '아니요'이다.

인간에 가까운 로봇과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데엔 열중하면서, 그에 걸맞은 윤리와 규범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거기에 쓸 돈과 시간이 없다는 지독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할 것이다.

법과 제도를, 도덕과 규범을, 더 나아가 인간을 어디까지 정의해야 될지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녀가 '가짜'라서 안심하고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가 되어 우리 눈앞에 서는 순간, 우리의 사랑은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다음 편에선 이 '미쿠 안드로이드 문제'를 아주 구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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