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빅이닝

야구, 무한도전, H.O.T, 그리고 내 인생

by 이승기

야구


나는 야구, 그 중에서도 한화, 아니 이글스를 좋아한다. 이글스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내 고향이 대전이라는 단순한 이유때문이다. 1992년에 아버지와 처음으로 한밭구장에 직관을 갔었다. 경상도 출신이신 아버지는 삼성팬이셨기에 삼성과 빙그레 이글스의 경기가 내가 처음으로 직관을 했던 경기이다. 처음으로 갔던 직관에서 내가 사인을 받았던 선수는 4번타자 장종훈도, 센세이션했던 신인 정민철도 아닌 평범하지만 멋져보였던 당일의 선발투수 한용덕 선수였다. 그리고 지금 한화 이글스의 감독은 한용덕 감독이다. 어릴 때부터 사람 보는 눈이 있었나보다. 물론 농담이다.


이글스 때문에 좋아하게 된 야구였지만 언젠가부터는 야구 그 자체가 좋다. xy 염색체를 가진 많은 이들이 축구를 좋아하지만 난 야구가 더 좋다. 90분동안 연속으로 하는 축구는 국대경기라도 잘 집중이 안되는데 약 3시간동안 9회까지 하면서 총 17번의 휴식시간을 갖는 야구는 집중이 잘 된다. 언젠가 '나는 왜 야구를 좋아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해 본 적이 있다. 그 고민의 결과는 야구는 인생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하일성 해설위원(후일에는 KBO 사무총장까지 하셨다)께서 중계 중에 '야구 몰라요.'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야구에는 대역전극이 많이 나오기에 그러한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던 경기 중에서도 경기 초반에 상대방에게 경기의 흐름을 넘겨주었지만 중반에 따라가서 후반에 결국에는 역전을 해냈던 경기가 많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경기는 08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 한일전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에 2대0으로 뒤지고 있다가 2점을 쫓아갔고, 결국 약속의 8회를 '빅이닝'으로 만들어서 4점을 뽑아내서 일본을 이기고, 결승에서도 쿠바를 꺾고 금메달을 땄었다.


빅이닝이란 야구에서 3점 이상을 얻어내면서 경기의 흐름을 바꾸어내는 이닝을 의미한다. 내가 빅이닝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불리 상황에도 버티고 버티다가 기회를 잡아서 한 이닝에 3점 이상을 득점하며 경기의 흐름을 바꾸어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빅이닝이 존재하기에 난 야구가 좋다. 그리고 정말로 끝날 때까지 야구를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알 수가 없기에 야구와 인생은 닮은 것 같다.


무한도전


2018. 3. 31.부로 무한도전이 시즌1을 마치고, 시즌2를 준비한다고 한다. 시즌1을 마치면서 무한도전을 기획하며 무한도전의 그 자체였던 김태호 PD가 하차하고, 기존의 멤버들도 하차한다고 한다. 무한도전의 애청자였던(2012년까지는 매주 보았었지만 요즘은 1달에 1번 정도 보기에 '였던'이다) 사람으로서 무한도전 시즌 1 종료, 아니 사실상 폐지가 너무 안타깝게 다가온다. 유재석, 박명수, 하하, 정준하, 그리고 지금은 없는 노홍철, 정형돈은 그냥 연예인이 아니라 내가 20대 초반부터 함께 나이가 들어온 친구 같다고 느껴지기에 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 같다.


지금은 '국민예능'이라고 불리는 무한도전이지만 그 처음은 무모한 도전, 그리고 무리한 도전이었다. 무한도전으로 이름을 바꾼 뒤에도 '평균보다 떨어지는 여섯 남자가 만들어가는 도전 이야기'로서 시작을 했었다. 대한민국 평균보다 떨어졌던 남자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예인으로 성장해가는 모습(물론 유재석은 무한도전을 시작할 때부터 어느 정도 대한민국 대표 mc로서 자리를 잡았었지만)에서 난 야구를 보았던 것 같다. 대부분 연예계에서 잘 자리잡지 못하였기에 대한민국 평균이하 남자라는 컨셉으로 시작했었지만 무한도전이라는 빅이닝을 통해 그들은 대한민국 대표 연예인으로 시청자들과 함께 성장했다. 그리고 여섯 명이 무한도전으로서 함께할 때에는 엄청난 performance를 보여주었었지만 개개인의 연예활동은 유재석, 정형돈 2명을 제외하고는 이전보다 큰 발전이 없었다고 보기에 팀을 중시하는 야구와 더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무한도전을 앞으로 볼 수 없다는 것도 아쉽지만 과연 무한도전이 없어지면 더 이상 내 친구와 같은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더욱 아쉽다. 한편으로는 내 친구들과 같은 야섯 남자들이 빅이닝을 보낸 후에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도 궁금하기도 하다.


H.O.T.


이처럼 야구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무한도전이 마지막으로 했던 대형프로젝트는 지난 2월 방송했던 토토가 3 H.O.T. 편이다. 토토가 1과 젝키의 토토가 2를 모두 보았었지만 난 H.O.T.의 토토가 3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 이유는 내가 중학교 시절 H.O.T.의 팬이었기 때문이다.


난 남자였음에도 불구하고 H.O.T.를 좋아했었다. H.O.T.의 앨범이 나오는 날에는 학교 담장을 넘어가서 레코드 가게에 가서 카세트 테이프와 CD를 구매했었고, 집에서 혼자 H.O.T.의 춤을 추기도 했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H.O.T.노래를 열심히 부르기도 했었다.


캔디를 부르던 초등학교 6학년부터 좋아했던 H.O.T.는 내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해체를 하였다. 여성팬들처럼 엄청나게 슬프지는 않았지만 처음으로 좋아했던 남자연예인 그룹이 해체한다는 사실이 아쉬웠다(사실 그 이후에 남자 아이돌을 좋아한 적은 없다). 그리고 그 이후에 가끔 라디오에서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을 제외하고 H.O.T.는 서서히 내 머릿속에서 잊혀져갔다.


그러던 H.O.T.가 내가 좋아하는 무한도전을 통해서 잠시나마 돌아왔었다. 그 이후에 나는 유투브를 통해 H.O.T. 멤버들의 지난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토니, 장우혁, 이재원으로 구성되었던 JTL의 게릴라콘서트 편을 보면서 H.O.T. 해체 이후에 많은 심적 어려움을 겪던 3남자의 눈물과 함께 내 마음도 울컥했다. 그리고 솔로 데뷔 후, 자신이 H.O.T. 인기의 1/5를 가져올 줄 알았었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외로움을 느꼈다는 강타의 인터뷰를 보면서는 빅이닝이 지난 후의 그의 허탈한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많은 멤버들이 군대를 다녀와서 예능에 출연했던 10년대 초반 방송에서는 자신들 인생의 최고의 빅이닝인 H.O.T.를 보낸 후에,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각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인생 최고이 빅이닝 후에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가던 그들은 다시 한 번 H.O.T.로서 새로운 빅이닝을 맞으려고 하고 있다.


내 인생


야구의 빅이닝부터 시작해서 무한도전, H.O.T.의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는 결국 '인생을 길다. 그리고 그 긴 인생을 잘 살아가다보면 언젠가는 빅이닝(영광의 시기)가 올 것이다.'라는 이야기이다. 오늘 열심히 야근을 하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들었던 생각이다.


3수를 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던 내 인생은 대학에 진학하면서 풀리는 것 같았지만 곧 군대를 가면서 암울해졌었다. 하지만 제대와 복학과 함께 다시 서서히 올라가다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가면서 최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최정점이라고 생각했던 그 시기를 더 뚫고 로스쿨에 입학하고, 그 보다 더 최고점인 변호사가 되었다. 20대 중반부터 30대의 초입까지 내 인생은 쭉 빅이닝이었던 걱 같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서서히 평범해지다가 최근 1년 사이에 엄청나게 하락하고 있는 느낌이다. 살아가는 것이 조금은 버겁다고 느껴지기도 했었지만 내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다시 또 행복한 시기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버텨내고 있다.


지금 당장 홈런을 치지는 못하지만 안타를 치면서, 안타를 못치면 몸에 맞아서 진루를 하고, 희생번트와 희생플라이를 날리면서 한 점, 한 점 다시 따라가다보면 언젠가는 빅이닝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것이 긴 인생을 살아가는 재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