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머리카락

중년의 소일거리

by seungmom

일일이 손으로 머리카락을 주우면서 화가 나지 않는다.


세끼 밥을 해 주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오니 일거리가 확 줄었다.

이렇게 미국까지 와서 해 주어야 할 일이 줄어들고 나니

내가 시간과 경비를 쓰면서 이곳까지 온 것에 명분이 없어졌는데

그래서 였는지 즐긴다.


전엔 아이의 머리카락이 카펫에 늘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짜증이 났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긴 머리카락이 나에게 일거리를 준다는 생각에

재미있게 햇볕의 각도에 따라 안보였던 것이 보인다는 것도 알아냈고

머리 길이가 길어 양손으로 줍는 것은 도리어 방해가 된다는 것도 알았다.

양손으로 집어낸 머리카락이 같은 것인 줄 모르고 당기다가 정말 길구나 했는데

이렇게 머리를 쓰면서 딸아이의 방에만 깔려 있는 카펫 위를 기어 다니며

안경 너머로 하나씩 집어내다가 여러 개가 같이 따라 올라오면 횡재한 것 같았다.


딸아이는 근시다.

난 젊어서 엄청 좋은 눈으로 살다가 노안이 오고 조금 난시가 되었는데

이런 좋은 시력의 소유자였던 난 근시가 가지는 일상에 불만이 많았지만

근시는 내가 만들어 놓은 작품이어서 할 수 없어 입을 다물어야 했다.

대신 머리색은 멋지게 만들어 줘서 내 어깨가 으쓱해지는데

난 검고 굵은 머리카락이었는데 딸은 색이 엷어 염색했냐고 묻는다고 한다.


처음엔 그저 게을러서 머리카락을 줍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없는 동안에도 아이는 나름 잘 치우고 사는 것 같았고

내가 오는 날짜에 맞춰서 싱크대와 가스레인지 등은 엄청 빛나게 깨끗하게 닦아 놓아서

그저 근시여서 서서 바닥에 있는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실 딸아이도 나처럼 카펫 바닥에 엎드리면 다 보이겠지만

아이의 눈에 거슬리지 않아 그런지 내가 머리카락을 줍고 있으면 하지 말라고 한다.

이것도 청소기가 잘해 준다면 상관이 없는데 오래된 싼 카펫은 청소가 쉽지 않아

열심히 긁듯이 빨아들여도 머리카락은 용하게도 카펫에 붙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확실한 작업이 손으로 떼어 내는 것인데

이게 내 성격과 잘 맞는지 난 지겹다는 생각보단 깨끗해진다는 기분에 취해

한 시간 이상을 돋보기안경으로 여러 각도로 바닥을 뒤지면서 찾아낸다.


나도 젊어서는 긴 머리로 살았는데

40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면서는 머리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묶고 지냈더니

무거운 머리카락이 머리카락 밑동을 당기는지 아파서 할 수 없이 잘랐다.

그래서 긴 머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젊을 때뿐이라는 생각에서

숱이 많은 딸아이에게도 긴 머리를 즐기라고 부추겼는데...


지금은 딸의 긴 머리카락 줍는 것이 이 나이에 딱 맞는 일거리라고

줍는 방법에서 여러 가지 머리도 쓰게 만들어 따분하지도 않고

크게 몸을 움직이지도 않아도 되면서 결과는 깨끗함이 마음까지 산뜻하게 해

한 일 치고는 크게 만족해한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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