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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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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r 30. 2024

thanks for the purple' gift

보랏빛 만남에 감사합니다


황사가 짙은 오늘, 학원 앞에 보랏빛 패션의 한 사람이 서있었습니다.

저를 기다리던 수줍은 미소가 흩날려 다가왔습니다.

몇 년 만에 만났지만 애타는 집회 현장에서 종종 마주쳤던 다소곳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파인텍 현장에서 차광호 위원장에게 손 편지를 전해주고, 故 김용균 시민장례식장에서 먹먹해 눈물짓던 저와 마주쳤던, 청와대 앞에서 송경동 시인이 40일 넘게 단식할 때 따뜻한 차를 타왔던 이였습니다.


저는 그이를 선배라 부르고, 그이는 저를 언니라고 부릅니다.


어제 특강 차 오셨던 선생님을 저와 그이가 시간차 두고 다른 장소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둘은 한 곳에서 만났습니다.

제가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곳 앞에서요.

다들 그럽니다. 제가 요리학원에 다니는 건 상상도 못 했다고.

  

올해 두 번째 손님에게 학원에서 만들어온 포모도로파스타와 치킨퀘사디아와 고기 빠진 자몽샐러드와 어제 남겨놓은 인살라타를 차려주었습니다.


퉁퉁 불은 포모도로파스타를 먹고는 "토마토만으로 어떻게 이런 맛이 나죠?"

다 식은 치킨퀘사디아를 소스에 찍어먹으며 "퀘사디아는 진리죠."

음식은 적정 온도에서 먹어야 맛인데, 상상도 못 한 제 요리였기 때문이었을까요?

너무너무 맛있다를 연발하는데 오히려 제가 어리둥절했습니다.  


식사 후 그이는 사온 제 책을 꺼냈습니다. 이렇게 고마울 데가요.  

세계 곳곳의 핵실험 현장을 다니는 핵천체물리학자가 읽을 제 책은 과연 어떨까요?


그이는 궁금했다고 합니다.  

"대체 그 동력이 어디서 나올까?“

끊임없는 제 운동성 혹은 활동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를 추동하는 건 어디든 갈 수 있고 가다 보면 새로움을 만나는 자유.


책을 사 왔는데도 그이는 계속 빈손으로 온 걸 미안해했습니다.

저는 이 집에 이사와 제일 처음으로 샀던 접시 두 개 시리즈를 사달라고 했습니다. 식사할 때마다 짝이 맞지 않는 그릇이 늘 거슬렸거든요. 그리고 학원에서 음식 담아 올 밀폐용기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뜰체망과 유산균 살릴 우유도.


이 동네에서 가장 큰 마트에 가서 그릇을 골랐습니다.

일 년 동안 갈 때마다 들었다 놓았다만 하고 덜컥 사지는 못하던 흰 토끼와 검은 토끼가 그려진 접시. 고르다 보니 밥그릇과 국그릇까지 총 열 피스를 카트에 담았습니다. 과도했습니다. 거기에 50% 할인상품 두고 정품 직사각형 유리 밀폐용기 크기별 다섯 개에 뜰체망과 우유와 누룽지와 사과까지.

그이의 신용카드에선 거금이 결제되고 제겐 갑자기 생필품이 부쩍 늘었습니다.

게다가 그이는 짐이 무겁다고 다시 제 집까지 돌아와서 물건 든 상자를 집 안에 옮겨 주고 갔습니다.


바듯이 도착한 기차역 앞엔 금요일 밤이라 주차된 차가 너무 많아 운전자가 하차할 순 없었습니다.

그이의 마음만큼이나 보드라운 손을 잡아 보았습니다.

차에서 내린 그이는 기차 탈 시간이 6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게 역 안으로 뛰어가지 않고 제가 떠날 때까지 서있었습니다. 사람의 여유는 급박한 순간에 간발의 차이로 드러납니다. 여유 있는 모습은 우아합니다.

   

미안할 정도로 고마운 마음이 넘쳐 피곤과 씨름하며 글을 썼습니다.

새벽 두시가 넘었군요.

이제 글을 다 썼으니 잠을 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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