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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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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곱째별 Mar 31. 2024

thanks for the tribute

부여 신동엽 문학관 동행 감사


부여에 다시 갈 줄은 몰랐습니다.

이 봄 흐드러진 아이보리 목련이 양 옆 가로수로 그득한 부여에 다시 갈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지난주 수요일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 그대 시간 되면 일요일 오전에 신동엽 문학관 동행, 어떠한지.'


안타깝게도 그날 교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못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금요일에 그 모임이 취소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 그 친구가 저희 집에 오게 된 겁니다.

 

'이 봄에 유난히 신동엽시인이 떠올라서 대전 가는 길에 부여 신동엽 문학관에 들를까 했다오 그대와 함께'


그런데 친구의 감각이 초월적으로 예민한 건지, 바로 오늘 새벽 신동엽 시인의 장남 신좌섭 교수가 안타깝게도 65세에 작고하셨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죽음은 부활로....... 이어지겠지요?

친구는 오전에 저 때문에 관련도 없는 수많은 인파 속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부활주일 점심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후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저는 친구를 태우고 부여로 차를 몰았습니다.


"신동엽 시 하나 읊어 주세요."

운전하다 불쑥 한 청에 친구는 시구를 중얼중얼 외웠습니다. 그리곤 곧 휴대폰으로 시를 찾아 낭독해 주었습니다.


*


봄의 소식


신동엽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발병 났다커니

봄은 위독하다커니


눈이 휘둥그레진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머언 바닷가에 갓 상륙해서

동백꽃 산모퉁이에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렇지만 봄은 맞아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광증이 난 악한한테 몽둥이 맞고

선지피 흘리며 거꾸러지더라는......


마을 사람들은 되나 안되나 쑥덕거렸다.

봄은 자살했다커니

봄은 장사 지내버렸다커니


그렇지만 눈이 휘둥그레진 새 수소문에 의하면

봄은 뒷동산에 바위 밑에, 마을 앞 개울

근처에, 그리고 누구네 집 울타리 밑에도,

몇날 밤 우리들 모르는 새에 이미 숨어 와서

몸단장들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말도 있었다.




산문시(散文詩) 1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던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데거 러쎌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소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 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까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갯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트럭을 두대씩이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 이름 꽃 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 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 쪽 패거리에도 총 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탱크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 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 소리 춤 사색(思索)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


뮤지션이라 성우 못지않은 발음의 시 낭송을 들으며 제가 시인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시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함을 알았습니다. 부탁하지 않아도 시를 낭송해 주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시를 기억해 내는 신묘한 재능이 있었지요. 그때만큼은 제게 외모도 업적도 아닌 오직 시를 읊을 줄 아는 감성이 이 세상 최고의 가치였습니다. 가뜩이나 마음에 살얼음이 떠 있었는데 시 낭송을 듣자 부여로 향하는 마음이 아리고 시렸습니다.


어느 밤, 부여 그 동네에서 신동엽 시비를 찾아 깜깜한 밤 낯선 길에서 헤맨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시비를 찾긴 했지만 너무 어두워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비춰 본 게 전부였습니다. 그땐 문학관에 가 볼 생각도 못했습니다.



'신동엽 가옥 터는 시인 신동엽이 어린 시절부터 결혼 후까지 살았던 집터이다. 1985년에 유족과 문인들이 기와집으로 복원하여 2003년 부여군에 기증하였다.'


초가집 두 채가 있고 뒤로는 현대적인 건축물이 있는데 그 건축물의 미적인 가치는 외관도 훌륭하지만, 건물에 발을 들여서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문학관 앞에는 임옥상의 '시의 깃발'(스테인레스 스틸, 2012)과 구본주의 '쉿, 저기 신동엽이 있다' (브론즈, 2020) 작품이 있습니다. 브론즈 작품이 있는 콘크리트 벽에서 초가집 쪽으로 몸을 돌리면 배롱나무 두 그루가 양쪽에 서 있습니다. 아직 이파리는 없네요.

브론즈 상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건물 옥상이 나오는데 앉아서 쉴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잘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실내 카페에서 차 마실 바엔 들고 나와 그곳에서 마시는 게 훨씬 운치 있겠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거기서 가운데로 돌아 들어가면 신동엽 흉상이 있습니다. 펜을 쥔 주먹 아래 책자에는 '금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신동엽의 시 '금강'은 26장으로 이루어진 대 서사시에 후화(後話) 1, 2가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시인데 19장에 나오는 '계룡산 동학사'가 반갑습니다.  


*

'마음이 가을 물같이

차가운 남잔

마음이 겨울 이불 속같이

다스운 여자를 찾아다니는 법,


진아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

그 푸담한

가슴.

꿈꾸는 듯 깊은

눈매 깜박이고

있을까,


계룡산쯤

동학사(東鶴寺)에라도

피란 가 있게 할걸,


 (금강 제19장 중에서)


*


어디 남자만 마음이 다스운 여자를 찾아다니겠습니까? 여자도 마음 다스운 남자를 찾겠죠.

신동엽의 시 '금강'을 다 읽고 다시 금강 자전거길로 가야겠습니다. 마음 다스운 남자를 그 길에서 찾으려고는 아닙니다. 이젠 금강에서 동학혁명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문학관은 등산복을 입은 신동엽 시인의 사진과 '서둘고 싶지 않다'라는 시구로 관람객을 맞았습니다. 암벽 등반을 했던 시인의 이름을 따서 북한산 백운대에는 신동엽길이 있답니다.

친구와 저는 서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각자의 관람 동선에 따라 걸어다녔습니다. 그러다 한 귀퉁이에 있는 방명록에서 친구의 글씨를 보았다. 아랫녘에서 제게 준 CD의 글씨와 똑같았습니다.


'시인이시여,

고약한 봄입니다.

아드님의 혼

잘 보듬어주소서


나무

2024.3.31.'


아마도 친구는 눈물지으며 그 공간을 다니고 있었으리.


관람 후 상품 코너를 돌아보았습니다. 노란 텀블러가 눈에 들어왔지만, 신동엽 시선집(창비)을 샀습니다. 삼가 조의금을 드리는 마음이었습니다.



한숨 돌린 후, 친구가 땅끝에서 중부까지 온 원래 목적인 대전의 인도문화예술연구소 서뗘 개원식에 함께 갔습니다.

3년 전 땅끝에서 젊은 원장을 춤을 보았습니다. 그 춤을 2~3m 앞에서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잠시 있었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모녀 원장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눈과 목소리에서 알 수 있죠. 진심. 진실. 서뗘의 우리말 뜻입니다.  


오늘은 오전 오후로 참 영적인 날입니다.

하지만 제 가슴속 가장 강렬한 기억은 부여 신동엽 문학관에서 만난 시인과 시.

인도에서 공부하고 해남에 거주하며 부여로 인도해 준 친구에게 고맙습니다.

친구의 문자처럼...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하니 불역낙호(不亦樂乎)아라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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