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는 결핍이 진짜일까?

마이클 이스터, 《가짜 결핍》을 읽으며

by 시 선


“결핍의 고리는
오래전 생존을 위해 뇌가 발전시킨 도박이다.
그 덕분에 인간은 불확실성에 직면하더라도
그만두지 않고 거듭 시도했다.
그만두는 사람은 죽는 거다.”

마이클 이스터, 《가짜 결핍》


만약 내가 (저자가 말하는) 오래전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금세 죽었을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빠르게 그 생을 마감하고 현 세상에 다시금 생을 부여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어째선지 나의 뇌는 생존을 위한 기본값이 미달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잊을만하면 반복해서 ‘만족 불가능성’을 들먹거린다. 그것이 곧 인간에게 새겨진 ‘뇌의 기본값’이라는 주장이다. ‘한 번 더’ ‘조금만 더’ ‘이것만 하면 끝’ 이러한 욕망은 뇌에서 생성된 자동 알림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 근원은 인류의 생존 환경과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희소했다. 구하기도 어려웠지만 구한다 한들 오래가지 못했다. 당연히 좀 더 많은 것을 좇는 사람들만이 생존하여 유전자를 남길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더 많이 먹고, 더 많은 물건과 정보를 축적하고,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쾌락이나 생존 욕구를 더 강하게 추구하는 것이 기본적인 행동 원리인 것이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이 풍족하여 차고 넘치는 지금도 과거의 행동 원리가 여전히 우리의 뇌에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게 바로 저자가 말하는 ‘결핍의 뇌’ 즉, 《가짜 결핍》의 실체다.


저자는 이 ‘결핍의 뇌’가 오늘날 인간이 비생산적인 습관을 떨쳐내지 못하고 되풀이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슬롯머신의 중독성으로부터 착안해 ‘결핍의 고리 3요소’를 정의하며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결핍의 고리 3요소는 다음과 같다. 1, 기회가 주어지고 2,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 걸려 있으며 3, 즉각적으로 반복할 수 있기만 하다면 인간의 행동은 결핍의 고리에 빠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결핍의 고리를 현대사회 사람들이 직면한 많은 문제에 대응시킨다. 도박을 비롯하여 마약, 알코올, 음식, 소유물, 정보, 지위 등 모든 것들이 거의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건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인류는 오랜 시간 생존하며 진화해 온 만큼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인간은 내적 외적 환경에 따라 영향을 받으며 생존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저자가 동물실험에서 지적한바, 결핍의 고리는 문제적 환경 외에 다른 환경은 일절 없다는 전제하에만 가능하며, 또한 인간은 쥐나 비둘기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의 행동은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하고 어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이 단지 생존을 위해 ‘결핍의 뇌’를 가졌고 그렇게 진화했다면, 인간은 결코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과거보다 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결핍의 뇌’로 인간의 생존과 진화를 설명하려 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낀다.

그렇다 해도 마이클 이스터의 《가짜 결핍》은 저자의 끈질긴 노력과 탐구의 결과물로서 괄목할 만하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의 강박적이고 중독적인 습관을 과거 인류로부터 새겨진 ‘결핍의 뇌’로 인식하게 하여 스스로 ‘결핍의 고리’ 안에 갇힌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함으로써 그 자각 자체가 ‘결핍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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