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교사로서 말합니다. 영어는 '잘해야' 합니다.
영어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다.
따라서 이 글을 포함해 4~5부 정도로 이어질 예정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간략히 '나'에 대해,
그리고 '나에게 영어'가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고 싶다.
그만큼 독자가 작가를 신뢰해야 글의 방향에도 신뢰가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어'뿐 아니라 '언어'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늘 버킷리스트에는 'n살 되기 전 5개국어 마스터'가 적혀 있었다.
언어를 배운다는 건 나에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방식이었다.
어린 시절엔 n살이 30이었고, 그때는 30살이 굉장히 멀게 느껴져 가능할 줄 알았다.
확실하게 그 기준 나이는 넘은 지금,
어디가서 자신 있게 "이 언어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영어 하나뿐이지만,
그 외에도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일본어는 JLPT N3를 취득했고, 대학 시절 면세점에서 일본인 고객 응대 점원으로 근무했다.
스페인어는 여행 중 현지인과 대화할 만큼 익혔고,
프랑스어는 캐나다 오타와에서 일하며 프랑스어 고객을 맞이하며 배움을 시도했었다.
이렇듯 나는 언어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국제어로서의 위상을 가진 '영어'는 정말이지, 내 인생을 바꿔놓았다.
누군가 "왜 영어교사가 됐어요?"라고 물으면, 나는 이렇게 답한다.
"영어가 내 삶을 바꿨기 때문이에요"라고.
영어를 통해 나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났고,
전혀 다른 사고의 틀을 경험했다.
그래서 내 학생들도 영어를 단순히 '시험 과목'이 아닌,
'세상과 연결되는 언어'로 느끼길 바라며 하루하루 교단에 서고 있다.
여러 나라의 언어를 공부하며 깨달은 건 명확했다.
언어를 잘한다는 건 유창하거나 정확한 기술이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을 가지는 일이라는 것.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언어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감정이 달라질 때가 있다.
흔히 하는 비교라지만, 누군가 내 옷차림을 보고
"오늘 정말 예쁘다!"
라고 하면, 한국어로는 본능적으로 이렇게 반응한다.
"에이~ 아니에요, 그냥 아무거나 입은건데.."
겸손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의 문화 속에서는,
칭찬에 "감사합니다"라고 바로 답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게 느껴지고,
자칫 '거만해보일 수 있다'며 꺼리곤 한다.
하지만 영어로는 전혀 다르다.
"You look great today!"
"Thanks! This colour is stunning, right?"
영어 화법에서 칭찬을 받아들이는 건 '자기 긍정의 표현'이다.
우리말에서처럼 "No, it’s nothing"이라고 하면 오히려 어색하거나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이처럼 같은 '칭찬'이란 현상도
한국어로는 겸손과 부끄러움으로, 영어로는 감사와 자긍심으로 나타난다.
이는 영어교육이론 속 사피어-워프 가설(Sapir–Whorf Hypothesis),
즉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언어상대성 이론으로도 설명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방식과 감정표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어를 배운다는 건, 사고의 틀을 하나 더 얻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놀라운 나라다.
전쟁 폐허 속에서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뤘고, 지금은 문화강국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통계도 있다.
OECD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청년 자살률은 회원국 중 1위,
15~29세 인구 10만 명당 17명 이상이다.
또 2024년 조사에선 청소년의 약 3분의 1이 '슬픔, 절망감으로 일상생활이 힘들었다'고 답했다.
굳이 이러한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틀 안의 삶'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보통'에서 벗어나면 주목과 평가가 따르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진짜 자신을 잃는다.
나는 학생 시절, 그 틀에 갇히는 게 무엇보다 괴로웠다.
그런 내게 영어는 자유였다.
영어는 전 세계 58개국 이상에서 공식 언어로 쓰이며,
비공식적으로 주요 언어로 사용하는 나라까지 합치면 75개국이 넘는다.
즉 영어는 단순한 제2언어가 아니라, 세계 공용어(Lingua Franca)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기에
'(사고의 방향으로서) 맞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영어에는 '틀에 맞아야 한다'는 압박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말하고 들을 때, 언제나 이상하리만큼 자유롭다.
영어가 내게 준 또 하나의 선물은 대처력이다.
삶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는
단순한 긍정의 문제가 아니라, 경험의 스펙트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좁은 우물 속 개구리에게는 작은 물결도 거대한 파도지만,
넓은 연못의 개구리에게는 일상적인 물살일 뿐인 것처럼 말이다.
영어를 배운다는 건, 그 연못을 넓히는 일이다.
하나의 언어를 더 함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경험도, 만날 수 있는 사람도 더 많아진다.
그리고 시야가 넓어지면 고난을 해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영어를 잘한다는 건 결국, 삶을 단단히 살아내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 믿는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우스갯소리로 "선생님 전 영포자에요"라고 말할 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아이고, 그래~? 뭐.. 시험은 그렇다쳐도 영어 자체는 절대 포기하지마" 라고.
그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다.
영어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일 뿐만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여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되어 내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믿음은 더 커졌다.
나는 어디가서든 '공부보다 경험이 중요하다'고 늘 말하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이 '영어' 만큼은 잘했으면 한다.
그 이유는 성적이 아니라 자유로움 때문이다.
영어를 통해 세상을 넓게 보고,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어딜가든 자신의 생각을 당당히 표현하며,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것이다.
엄마모임에서 내가 영어교사임을 알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영어는 잘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돼?"
그럴 때마다 나는 되묻는다.
"ㅇㅇ엄마가 생각하는 그 '잘한다'의 기준이 뭔데?"
영어교육학적으로도 '잘한다'는 건 단순하지 않다.
대체로 유창성(fluency) 과 정확성(accuracy) 이 핵심 지표로 쓰이는데,
이 두 가지 기준으로 엄마들의 기대 유형을 나눠보자면
1) 원어민처럼 말하고, 시험도 만점 받길 바라는 유형 (fluency + accuracy)
2) 시험 성적 중심의 유형 (accuracy)
3) 여행 중 불편함 없이 소통하면 충분하다는 유형 (fluency)
의 세 유형로 나눌 수 있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엄마들은 1번에 가까운 기대를 가지고 있었고,
그 중 일부는 그 방법으로 영어유치원을 떠올렸다.
그 방법이 맞냐 틀리냐에 대해서는 '영어유치원' 편에서 자세히 다룰 예정이지만, 절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번 '영어교육' 시리즈에서는 앞으로
'영어유치원의 득과 실',
'꾸준함과 동기부여가 만드는 언어의 힘',
'엄마표 영어의 본질' 등
많은 부모들이 궁금해하는 영어교육의 진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이번 글은 내가 평생 영어와 함께 살아오며 느끼고 성찰한 생각들을 담았다.
그만큼 자신감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영어 인식에 작은 균열을 내고 싶다.
내 글을 통해서 영어가 단지 점수를 위한 과목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언어로
많은 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 잡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