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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Dec 21. 2016

돈의 이면을 보다

달나라동백꽃 <연변엄마>

달나라동백꽃은 창작극 위주로 공연을 만들면서 꾸준히 객석을 채우며 살아가는 젊은 극단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극단이다. 배우와 작가, 연출가, 스태프 등이 모여 만든 이 극단은 극단 이름마냥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새빨간 동백꽃처럼 대학로의 풍경 한 폭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뚜렷한 기치를 내세우며 한 방향으로 목소리를 굵게 내는 극단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마니아층은 제법 두텁다. 작품마다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밑도 끝도 없는 순수한 열정만큼은 달나라동백꽃의 연극을 본 관객들이라면 모두 쉽게 인정할 수 있으리라. 꾸준한 모습으로 신뢰를 쌓고 있는 이 극단에서는 무엇보다 배우들의 성장세가 눈에 띈다. 이 극단 특유의 가족적인 분위기가 특히 나이 어린 배우들에게 든든한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는 듯하다.


달나라동백꽃이 창단한지 올해로 5년째가 됐다. 겨우 5년밖에 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그 동안 꾸준히 달리고 또 달렸다. <오레스테이아>, <안티고네>, <15분>, <앞집아이>, <썬샤인의 전사들>, 그리고 이제 무대에 오를 <연변엄마>까지 올해만 해도 6개의 짧고 긴 작품을 소화한다. 특히 <연변엄마>는 이 극단 입장에서는 의미가 조금은 남다르게 다가올 작품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년의 시간을 극단 스스로 기념하고 축하하는 작품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올린 후 잠시 가쁜 숨을 고를 예정이라는 부새롬 연출가의 말에서 그동안의 부단한 노력과 열정, 여기에 더불어 일종의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서 피로감이란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창작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의 또 다른 말이다. 소박한 잔치의 의미를 지니게 될 이번 공연은 올해 달나라동백꽃의 마침표이자 다음을 기약하는 쉼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근현대사의 꼬인 실타래에 주목하다


“올해 극단을 창단한지 5주년이 돼서 뭘 해볼까 하다가 <연변엄마>를 골랐어요. 달나라동백꽃 소속인 김은성 작가가 썼지만 우리 극단에선 안 해본 작품이고, 또 우리 극단 친구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이기도 하니까요. 지금은 대본이 많이 수정된 상태인데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너무 예전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거든요. 그때 연변 분들과 지금 연변 분들하고 조건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는 불법체류도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없어요. 지금은 그때 연변 분들이 당했던 일들을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당하고 있죠. 또 무엇보다도 시국이 급변하는 바람에 ‘지금 이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하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한편으로는 또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여기 전씨네 가족에 한국 근현대사가 축약돼 있다는 생각이요. 인물들이 모두들 ‘돈, 돈, 돈’ 거리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런 세상이니까 이야기가 유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부새롬 연출가


<연변엄마>의 핵심 인물은 연변에서 온 한 가정부다. 김은성 작가는 한국 사회의 가장 주변부에 위치한 인물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연변엄마 복길순의 시선을 빌어 한국사회를 바라본다. 한국에서 일하다 다친 아들의 수술비를 벌고, 또 소식이 끊겨버린 딸을 찾기 위해 한국에 온 복길순은 부유한 중산층 가족의 한 아파트에 가정부로 취직한다. 이로써 한국사회의 안팎을 관찰하는 자로서 최적의 조건이 복길순에게 형성된다. 복길순은 주중에는 한 가정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레 한국사회의 내밀한 욕망을 엿보는 자리에, 또 주말에는 딸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의 풍경마저 조망할 수 있는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극 속에는 부유한 전씨 일가 외에 가난한 연변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나누어 묘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극은 그저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공통된 한 증상을 포착해 보여줄 뿐이다. 부자이든 아니든, 한국 사람이든 연변 동포든 간에 이들은 대부분 어그러져 있는 모습으로 포착되는데 그 근본적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바로 돈이다. 돈에 대한 집착, 성공에 대한 집착이 이들을 병들게 하는 핵심 이유이자 공통 이유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연변엄마인 복길순을 제외하면 극 중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돈의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극 초반 미래 세대의 희망처럼 제시되던 대학생 아들 전우진마저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며 전 세대의 논리에 휩싸이고 만다.

공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을 던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엉킨 실타래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전향을 하고 광주항쟁의 진압군으로 활동한 할아버지 전희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치매를 앓고 있는 이 노인의 파편 같은 발언들을 통해 얽히고설켜버린 거대 서사는 외마디 비명처럼 얼핏얼핏 극 중 발산된다. 비극적 전쟁과 이념 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그저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했던 민족의 아픈 역사는 그들이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오늘날 이 가족의 운명을 결정짓고 있다. 연극 <연변엄마>는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을 둘러싼 불투명한 막, 그 한 꺼풀을 벗겨내려는 시도다. 사람들을 웃고 울게 하는 돈이라는 이름의 꺼풀을 들춰내고 나면 비로소 그 아래 일그러진 우리의 역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 여기,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공연


“(대본에서 가장 와 닿는 부분은) 돈이에요. 부유층인 전씨 삼대가 한국 현대사를 이야기해주고 있는데 이 가족들뿐만 아니라 하층민이라고 볼 수 있는 연변에서 온 분들은 또 왜 이러고 살고 있나 생각해보면 결국은 돈이 문제인 것 같아요. 모두가 ‘돈, 돈, 돈’ 하면서 살고 있는 셈이죠. 꽤나 잘 사는 집도 누구 네보다 더 잘 살아야겠고, 또 뭘 더 가져야겠고, 1등을 해야겠고 하는 마음에 다들 눈이 시뻘개져서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아요. 못 사는 사람은 또 못 사는 사람대로요. 그런 부분이 제일 많이 눈에 들어왔고. 이 작품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얘기가 그런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부새롬 연출가



<연변엄마>의 무대는 단순하게 꾸며질 예정이다. 중산층의 고급스런 아파트를 재현하는 대신 비현실적으로 비틀어 만든다는데, 부 연출가는 마치 ‘합판때기’를 그냥 세워놓은 듯한 정도의 거친 무대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다. 세트 느낌이 그대로 드러나는 불안정한 무대를 배경으로 소파 하나, 카펫 하나가 전부인 공간이 될 공산이 크다. 배우의 등퇴장 역시 굳이 숨기지 않고 관객 눈앞에서 계속해서 이뤄진다. 깔끔하게 채색된 아파트 공간이지만 허약하게 꾸며지는 까닭에 그 공간도, 그곳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도 온전히 뿌리 내리지 못한 채 떠도는 듯한 느낌을 자아낼 것으로 보인다. 

공연을 한 주 앞두고 방문한 <연변엄마> 연습실에서는 돈만 중시하는 전씨 가족을 좀 더 비현실적으로 비춰지도록 하기 위한 마무리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들 전씨 가족의 모습은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드러난, 소위 중산층의 허위적인 의식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연상시킨다. 특별한 목적의식과 방향성을 품고 극단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달나라동백꽃 극단의 공연에는 이처럼 특유의 뉘앙스와 색깔이 묻어난다. 사회나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와 연출가의 시선이 늘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이 공연을 만드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막상 부새롬 연출가는 온통 어수선한 시국에 대해 ‘연출자로서는 당분간은 바라보고 싶다, 다음에는 작은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말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시끄러운 세상에 대한 이들의 시선은 다음 작품들에도 계속해서 묻어나오지 않을까 싶다.






일시: 12월 15~31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 공연 없음

장소: 아름다운극장

작: 김은성

연출: 부새롬

출연: 우미화, 선종남, 성여진, 유성주, 곽지숙, 김훈만, 배선희, 이지혜, 조재영, 노기용

문의: 02-928-8802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페이스북 facebook.com/nabye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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