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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문화재단 Dec 29. 2016

연극이 갖고 있는 강렬함

연출가 김정

작년, 공연 중의 한 대목이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주최측(한국문화예술위원회)으로부터 공연 방해를 받으면서 ‘팝업씨어터 사태’와 검열 문제의 한 가운데 있었던 <이 아이>의 연출가 김정을 만났다.


정 씨한테 검열 문제로 인터뷰를 부탁한 건 아닌데, 아무래도 첫 질문이 그렇게 되네요. 팝업 사태 때문에 인터뷰 많이 하셨죠. 제일 싫었던 질문이 뭐였어요?


질문을 자꾸 단원고, 세월호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세월호 참사를 비유하기 위해서 <이 아이>라는 작품을 한 건 아니었거든요. 저 자신이 세월호를 이야기할 만한 준비? 애도의 깊이랄까? 그런 게 부족했는데, 덜컥 제가 그런 작품을 한 게 될까봐… (싫었어요.) 제가 세월호를 지시한 게 아니라, 은유로서 지금 현재 고통 받고 있는 타인에 대한 공감이랄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타인의 고통이라는 게 무엇일까, 라는 걸 통해서 세월호까지 얘기가 갈 수도 있겠죠. 작품 안에는 세월호도 있을 수 있지만 좀 더 넓게 이야기 하고 싶었어요. 심지어는 세월호라는 것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기 위해서 애를 썼던 작품인데도, 그들(검열의 주체)이 너무 단순하게 한 순간 세월호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위험을 느끼고 공연을 방해했다는 게 문제였던 거죠. 제가 느꼈던 가장 큰 위협도 그거였고요, 근데 자꾸 세월호랑 직접적으로 엮으려고 하는 게 싫었어요. 그런 건 직접적인 불쾌함이었고요.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은 아니었지만 주변에서 “그렇게 해서 안 바뀌어, 문화예술위에 가서 농성이라도 해라.” 너무 쉽게 말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좀 짜증났어요. (웃음) 그리고 어느 자리에서 TV에 나오시는 선배님이라고 인사를 시켜줬어요. 뭐 도와줄 거 없냐고 얘기를 해보래요. 저희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고 뭔가를 하고 있는데, 그것에 스스로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걸 도와주면 되는 거지, “뭐 도와줄까? 얘기해봐”라는 태도는 문제가 있죠. 시간이 흘러서 많이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얘기하다보니까 확 열이 나네요. (웃음)


처음에 이 질문을 하게 된 게… 정씨가 본인의 작품으로 많이 알려지기 전에, 정 씨 뿐만 아니라 송정안, 윤혜숙 연출, 셋 다 갑자기 이 이슈로 확 주목을 받게 됐잖아요. 어떤 불편함 같은 게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 불편함은 항상 가지고 있는데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세상 자체가 이렇게 비틀어져있는데 그런 일들이 벌어진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죠. 우리 세 명이 모여서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내가 아니었으면 당장 다음의 누군가가 얻어맞았을 것이다. 그래서 행동하는 데 있어서는 어떤 의심도 없었어요. 연극을 하면서 이렇게 사회적인 일로, 몸으로 얻어맞은 적이 없었는데 당연히 어떤 차례가 왔다, 더 이상 피할 수 없이 이런 일이 나한테까지 왔구나, 싶었고 분노하기에도 너무 바빴어요. 그 때 관심가지고 와줬던 분들, 같이 힘을 모으고자 했던 분들이 너무 많았고, 그런 얼굴들을 제가 확인을 했고, 그런 순간을 겪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 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연극계 안에서 어떤 저항이 있거나, 불편한 일들이 있으면 나도 자발적으로 관심을 갖고 가서 도와야겠다, 그런 생각을 했고, 그런 데 다니느라 바쁘기도 했어요. 


방금 얘기하신 불편함은 나중에 찾아왔던 것 같아요. 솔직히 큰 불편함이라기보다는 자꾸 반문하게 돼요. 내가 그렇게 주목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건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그 일 때문에 그렇게 주목받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생각해요. 이상하게 생겨버린 유명세(?)를 다르게 인지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해요. 내가 그것을 이용하지 않아야 될 것이고,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도 없고, 숨어살 필요도 없는데, 어찌됐건 이렇게 된 거고, 앞으로 계속 증명해나가야 되겠죠.


그리고… 그런 게 있었어요. ‘권리장전’, ‘화학작용’에 참여를 했고, 지금은 ‘뉴스테이지’라는 사업의 수혜자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이런 기회들이 나한테 온 게 너무 좋고 감사하고 열심히 해내고 싶은데, 혹시나 이런 기회들이 그 사건 때문에 더 빨리 온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게 있어요. 조연출을 오래 하다가, 데뷔작을 했을 뿐인데.



 그 데뷔작이 평이 좋았잖아요.


 에이, 너무 짧게 했고 보신 분들만 보셨는데요, 뭘. 저를 증명한 적이 없는 거예요. 아는 연출들의 그룹이랄까, 그런 것도 없었고. 어떤 계기로 그런 관계들이 열리는 건 너무 좋은데…


 어떤 특혜를 받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접근하려고 노력했던 것 보다는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노력한 사람이 많을 테고 그 사람에게 갔을 수도 있는 기회일 수 있으니까요. 감사하기도 하지만요.


 물론 그 일 때문에 김정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고, 어떤 작품을 하나, 궁금해서 보러가게 되는 사람들이 있겠죠. 순서적으로 그럴 수 있지만 이건 특혜라고 하기 보다는 운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런 일을 겪은 걸 운이 좋았다, 라고 말 할 수 없잖아요.


 그렇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잃은 게 없어요. 팝업 사태 때문에 직장을 떠난 친구도 있는데, 그 친구를 생각하면… 나는 아는 사람들, 여러 연출들, 자극받을 수 있는 기회들, 심지어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기회까지 뭔가 얻은 게 많다는 생각이 들지, 하나도 잃은 게 없어요. 오히려 얻은 게 많았고, 연극을 함에 있어서 풍성해졌달까, 그런 데서 오는 불편한 마음이 있어요. 그걸 원해서 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으니까요. 그래도 애초에 저항을 시작할 때 다른 생각(주목을 받을 수 있겠다와 같은-필자 주)이 있어서 한 건 아니었으니까요. 그 땐 누가 말렸어도 들이받으려고 했었어요. 근데 혜숙이랑 정안이가 보이콧을 하는 걸 보고서, “왜, 얘네봐라?!” 그랬어요. 일이 점점 커지고 저는 그냥 따라다니기만 했죠. (웃음) 전 그냥 혼자 소리 지르고 싸우고 그럴 줄 알았거든요.


 이거랑 관련해서 하나만 더 물어볼 건데요. 공식적으로 노출되는 인터뷰에서건 사적인 술자리에서건, 그 일과 관련해서 참 얘기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 있나요?


 사실, 지금의 가장 큰 갈등이랄까, 고민인데요. 워낙에 그런 일들에 내 모든 걸 다 던지고 나가본 적이 없어요. 팝업 사태 때문에 한참 시위할 때, 굉장히 나가기 싫은 날도 있었어요. 단순히 육체적인 힘듦도 있었고, 쉬고 싶고 그런 치열한 데서 빠져나오고 싶은 게 있잖아요. 그래도 하루도 안 빠지고 매번 나갔던 것은 미안함, 혹은 책임감, 미안함에서 오는 책임감이랄까요? 그런 것 때문이었어요. 관심 가져주고 응원해주는 분들에 대한 보답으로서의 책임감이 있었죠. 나갈 때마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매번 만나서, 그건 너무 충만했는데 힘들기도 했었죠. 이후에 <권리장전2016_검열각하> 할 때나, 그런 일이 있을 때, 팝업 때 열성으로 관심을 가지시고 함께 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동 같은 게 있었기 때문에 어떤 부름이 있으면 웬만하면 가서 뭐 조그만 거라도 하려고 했었어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발적인 마음도 있었지만 큰 부분은 어떤 책임감, 마음적인 보답 같은 것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너무 게으른 인간이라 도피하고 싶은 마음도 많았죠. 그래도 그때는 기꺼이 재밌게 즐겁게 했는데, 또 블랙리스트 문건 터지고, 광화문에서 연극인 텐트촌도 세워지고… 하려고 하면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내가 힘들다고, 내 작업해야 한다고 거리두기를 하다 보니 하는 것도 아니고 안하는 것도 아니고, 그러다보니까 스스로 자꾸 스트레스를 받더라고요. 참여를 적극적으로 하지도 않으면서 한 발 걸치고 있는 제 꼬라지가 너무 보기가 싫고요. 괜히 생색만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차라리 조용히 있자, 그런 마음이 들어서 요즘 좀 조용히 있는데요. 큰 부담이기도 하고 책임감이기도 하고, 요즘 가장 큰 고민이에요. 내가 그런 것들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런 질문도 들고요. 팝업 터졌을 때 가장 많이 반성했던 것은 연극이라는 매체 자체를 너무 느끼는 것으로만, 나 스스로를 충만하게 해주는 것으로만 삼았구나, 하는 거였어요. 나를 충만하게 만들어주는 것만큼, 사회나 관객을 향한 에너지도 쓰고, 관심도 훨씬 많이 가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으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 스스로 굉장히 반성을 많이 했죠. 그러면서 여러 가지 일에 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여기저기 나가보기 시작했는데, 이걸 내가 자발적으로 기꺼이 끌어안고 갈 수 있는 힘까지는 없고… 그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있어요. 실제로 계속 행동하시는 분들에 대한 존경도 많이 생기지만, 반대로 너무 대단해 보여서 저는 그만큼을 할 수 없으니까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자책이 들어요.


 무슨 80년대 이야기 같아요.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예술하고 자빠져 있는 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 그런 얘기요. 2016년에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웃기네요.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나 아직 저는 균형을 모르니까요.



 조금 전에 연극관에 대한 얘기가 살짝 나왔는데요. 원래 연극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에 대해 반성하게 됐다고. 그게 어떤 거였어요?


 클래식을 잘 모르긴 하지만 정말 좋은 클래식 음악을 들었을 때 일어나는 인간으로서 느끼는 아주 기본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감흥이랄까요, 나는 아무 것도 몰라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게 예술의 힘이잖아요, 설명이나 현상에 대한 지시가 아니라. 연극도 그런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지방에서 자라서 그런지 워낙에 문화적인 접촉을 많이 못했어서, 훨씬 더 그런 것들을 누려보고 싶었어요. 한태숙 선생님이라는 큰 선생님 밑에서 조연출을 오래 하다보니까, 선생님은 굉장히 긴 시간 인생의 굴곡을 겪었던 사람으로서 던질 수 있는 큰 메시지가 있고, 예술을 예술로서 덩어리로서 안을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보내신 분인데, 저는 그러지도 않았으면서 그 열매만 자꾸 따 먹는 거예요. 그게 단 줄 알았던 거죠. 맞어, 예술이 이런 거고, 연극이 이런 거야, 제가 겪어야 될 것들을 충실히 아프게 겪지 않고서 그 다음 단계에서 누리고 있었던 거죠. 내가 인간에 대한 고민을 한다면 실제로 그 자리에 더 가까이 가는 노력들을 해야겠다, 좀 더 직접 체감해야겠다, 아무튼 좀 더 겪어야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죠. 저는 되게 게으르고, 스트레스에 약해요. 강인한 인간이 아니라서 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아무 고민도 스트레스도 없는 그런 곳으로 가버리고 싶은 그런 느낌…?


 지금도 고민은 진행 중이고 앞으로 그 생각은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 당장은 이런 연극을 하고 싶다, 이런 걸 해보려고 한다, 얘기 좀 해주세요.


 지금 당장은 결과물에 있어서도 제 스스로도 도전적인 것을 하고 싶어요. 연출가로서 어떤 것을 건만큼 성장하는 힘으로 돌아온다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안정적이고 세련된 어떤 것들을 생각해왔고, 그런 고민들만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연극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있잖아요, 체험을 통해서 인간을 완전히 뒤집어버리는 게 연극인데,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니라 관객과 같이 체험할 수 있는 어떤 강력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 걸 해보고 싶어요. 실패할 수 있지만 나 스스로 그런 평가에 대한 위험을 느낄 정도로, 그런 작업을 해야 되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신진연출가라서가 아니라 그런 경험이 없이는 안전한 것, 보편적이거나 대중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을 해요.


 한태숙 선생님 조연출을 오래 한 것이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제 선입견일 수 있지만 한태숙 선생님 작품처럼 아주 세련되게, 웬지 그렇게 해야 할 것 같고.


 어릴 땐 그랬는데,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긴 알았어요. 선생님의 작업에서 연습 과정의 치열함이라는 건 이루 말 할 수가 없어요. 그 이후에 선생님의 호흡으로 다듬고 매만지는 건데, 저는 그 중간 과정을 겪어야 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완성된 단계, 그건 선생님의 것이고 내 것은 실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그런 걸 격렬하게 겪은 다음에 만들어지겠죠. 그걸 해야 되는 나이고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안 거죠.


 극장에서 할 수 있는 강렬한 체험, 어쩌면 진부하지만 연극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이죠.


 안전한 걸 찾는 성향이다 보니까 위험한 것들에 대한 도전, 창작자로서의 자기를 완전히 걸 수 있는 무언가가 없으면 다음으로 못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정 씨 작품을 하나 밖에 못 봤지만 저는 두려움이 많다, 안정적인 걸 찾는다, 고 느끼진 않았어요. 오히려 고집이 있다, 라고 느꼈는데요.


 고집이 세다는 얘기는 그냥 인간으로서는 많이 듣는데요. (웃음)


 정씨가 도전하고 싶다고 얘기한 걸 이미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결과물로서는 자신이 없어요. 고민을 하고 작품에 담으려고 있는 것이죠. 함량미달의 작품이 나올 수도 있고. 제 한계가 있으니까요. 어느 순간에는 연극이란 게 이런 모호성이 있는 거지, (웃음) 확 놔버리고 싶을 때도 있는데, 스스로 용납이 안 되죠. 그런 용납을 하지 않는 정도가, 제가 지금 버티는 정도인 거예요. 스스로 타협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실력이 없으니 그런 거라도 해야죠. (웃음)



 작품 만들 때 뭘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연출이 첫 관객이잖아요. 말들이 주는 울림이 첫 관객인 내 몸으로 전해져 와야 된다, 라는 게 중요해요. 연습과정에서, 그리고 결과물이 내가 처음에 의도했던, 혹은 연습 과정에 봤던 느낌들이, 물론 주관적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나에게 일단은 강하게 넘어와야 된다, 그 다음에 관객을 만나야 된다, 고 생각을 해서 내 몸의 반응들에 집중을 하는 편이에요. 전공도 아니었고 연극을 한 지 오래 되질 않아서, 뭔가를 느끼려고, 어떻게 하면 더 진하게 넘어올 수 있겠다, 그런 걸 찾으려고 눈알 터지게 봐요. 어떤 식으로든 그냥 이미지나 분위기로 넘어가는 글이나 장면은 없다, 모든 장면과 모든 순간은 다 어떤 느낌들을 주고 있다, 라고 믿어요. 만약에 그런 넘김을 주지 않는 작품이라면 정확하게 주지 않아야 되는 거죠. 넘기지 않음으로써 또 무언가를 넘기는 거니까요. 내가 느꼈던 몸의 반응, 혹은 그 이상을 객석에 넘겨줘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이런 느낌적인 걸 배우들한테 어떻게 전달을 해요? 나한테 넘어오지 않아, 이렇게 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저랑 쓰는 언어가 너무 달라서 궁금해요.


 대본을 볼 때 어떤 순간을 상상하면서 보잖아요. 이 말이 어떻게 왔을 때 아프게 오겠다, 나를 뒤흔들어 놓겠다, 뒤집어 놓겠다, 라는 걸 상상할 때 몸이 벌써 찌릿하잖아요. 나한테 안 넘어 왔어, 이렇게는 전달이 안 되죠. (웃음) 끊임없이 그 순간이 채워지지 않으면 넘어가지 않는 거예요. 이렇게 해보면 그 말들이 더 진하게, 더 굵게 넘어가지 않을까, 그런 얘기들을 하면서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거죠, 채워질 때까지.


 될 때까지 집요하게 연습을 하는 편이에요?


 데뷔할 때는 정말 심하게 그랬는데 (웃음) 지금은 나름대로 웃으면서 넘기기도 해요. 결국엔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하게 되죠. 상대방은 저 때문에 힘들 수도 있겠지만 배우들마다 각자 그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강렬함이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연출가인 나를 만나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또 다른 게 나올 수 있는 거고, 그걸 믿고 뽑아내는 것이 하나의 큰 의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한테서 못 봤던 진실된 순간을 나를 만났을 때 뽑아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다 실리지 못했지만) 중간 중간 했던 얘기들을 보면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체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한 선생님 조연출을 1년 했을 때쯤에,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구나, 싶었어요. 창작자로서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너무나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 되잖아요. 내 노력, 내 시간, 그런 것들을 다 걸만한 일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 거죠. 결국 선생님께 저는 아닌 것 같습니다, 메일을 드렸는데 잡아주셨어요. 네가 꼭 연극을 할 필요는 없다, 근데 1년은 너무 짧다, 그러시면서 잘 이끌어주셨어요. 그 이후에 <레이디 맥베스> 를 하면서 싱가폴에 초청을 받아서 갔어요. 그때 만났던 한 순간으로 아무 의심이 없어지고 5년은 거뜬히 간 거예요. 연극이 그런 매체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는데, 배우가 고개를 숙였다가 탁 들었는데 모든 게 다 사라졌어요. 그 순간을 맛보면서, 이렇게 강렬한 매체구나 라고 느낀 거죠. 아마 연극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더 그랬던 것 같은데, 아, 연극이라는 매체가 이런 거구나, 왜 연극을 하려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지 언뜻 보게 된 거죠. 엄청 강력한 구경의 커다란 총인데 그걸로 맨날 표적지만 쏘고 딱총처럼 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이 매체가 가지고 있는 강렬함에 접근하는 것으로 평생이 다 갈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창작자들이 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연극이 가지고 있는 그런 파괴력에 접근하기 위한 다른 갈래의 길을 가는 거 같아요. 너무 무한하니까요. 연극을 하는 평생에 그런 걸 한번은 느껴보고 싶고 만들어보고 싶어요.


 너무 공감이 가요. 저도 어느 공연을 보면서 정씨가 말한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었거든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정한테 연극이란?


 그냥 되게 좋아요. 

제가 한 선생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선생님이 연세가 많으시니까 제가 옆에서 모시고 조력한다고 생각했는데, 4년인가 5년이 지나고 나니까 정확하게 선생님이 나를 엎고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엎고 다니면서 좋은 구경은 다 시켜준 거예요. 이 질문을 받으니까 딱 그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연극이라는 아주 따뜻하고, 내가 죽을 때까지 업혀있고 싶은 것에, 업혀있다. 다 커서 내려와서 업어드려야 효잔데, 그건 모르겠고, 지금은 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연극, 그 차제를 누리고 있는 것 같아요.


[사진: 장우제 woojejang@gmail.com]






김정(연출가)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이 아이> <손님들> 외






부새롬 연출가, 무대디자이너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뺑뺑뺑> <달나라연속극> <로풍찬 유랑극장> <뻘> 외

purom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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