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을 찾아
진안고원의 밤하늘이 칠흑같이 어둡다. 가장 어두운 밤에 빛나는 별을 찾아 숲길을 걷는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나온 별이 머리 위에서 반짝인다.
진안고원의 밤길을 걸어 별 보러 가는 날, 그날 밤의 목표는 별이 쏟아지는 숲길을 걸으며 숲 치유를 하는 것이었다. 새로 개장한 국립진안고원산림치유원에서 진안의 농산물로 만든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해 여러 가지 체험을 했다. 출발할 때부터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던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며 걷기 시작했다. 방문자센터에서부터 치유정원까지 3.5km의 어두운 숲길을 걸었다. 준비물에 헤드랜턴과 손전등이 있었는데 미쳐 준비하지 못한 나는 앞서가는 사람의 손전등에 의지한 채 그와 함께 걸었다. 숲 속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내린 비로 중간에 움푹 파인 작은 개울들이 여러 군데 생겼고 신발이 물에 젖었다. 앞은 보이지 않고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들까지 발부리에 걸렸다. 식은땀이 흐르고 긴장되었다.
몇 년 전 오른쪽 발목을 삐끗해 접질린 적이 있었다. 몇 달 동안 한방치료로 침을 맞고, 물리치료와 도수치료를 하며 고생했었다. 그때 의사는 또다시 발을 접질리면 만성이 되기 때문에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다시 처음 길로 되돌아가기에도, 앞으로 나아가기에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깜깜한 숲 속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 발짝도 뗄 수 없었다.
60대 중반 내 인생에도 깜깜한 밤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취업하지 못했다. 늦게 결혼한 아버지는 다니시던 농업협동조합에서 이미 은퇴를 한 상태였다. 게다가 나는 6남매 큰딸이었고 집안에는 수입이 아무것도 없었다. 동생들은 모두 학생이어서 계획대로라면 내가 취업을 해야만 했다. 작은 집에 할머니까지 9명의 대식구가 함께 살았다. 부모님과 동생들의 얼굴을 미안해서 볼 수 없었고, 같은 밥상에 앉아 함께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시내 버스비도 없어서 나갈 수도 없었고 나갈 곳도 없었다. 공장에 취직해 보려고 근처 공장을 찾아다녔지만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때는 제5 공화국 전두환의 무서운 독재정권 시절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극좌 빨갱이들이 공장에 위장 취업해서 순진한 공장 직공들을 선동하고 이념화시킨다는 이유에서였다. 집안에서 눈과 귀를 막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앞뒤가 꽉 막힌 상황들이 숨통을 조여왔다.
그때 나에게 숨 쉴 공간은 오로지 친구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다행히 친구 미라는 대형 병원의 영양사로 임시 취업했다. 영희는 가정 형편이 좋았고 성격도 좋았다. 친구들은 커피와 밥을 사주고, 넋두리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다. 친구들을 만나는 그 순간만큼은 크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일 년 후 우리는 모두 취업할 수 있었다. 미라는 학교 영양사 선생님으로, 영희와 나는 시청과 도청 공무원이 되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숨죽이던 나는 한 발 한 발 걸어 환한 빛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5년을 근무하고 집안 사정상 퇴직을 했고, 친구들은 37년과 34년을 근무하고 명예퇴직 했다.
인생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아무리 깜깜한 밤에도 어둠 속에서는 별이 빛난다. 비 내리는 어두운 밤, 앞서가는 사람의 손전등 불빛에 의지한 채 그와 함께 치유정원에 도착했다. 내리던 비도 그쳤다.
치유 정원에 도착하자 은박지 돗자리가 길게 깔려있었다. 별을 관찰하고 별빛 명상을 하기 위해 모두 원하는 자리로 가서 편한 자세를 취했다.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눕는 사람도 있었다. 남편과 나는 나란히 누웠다. 잠시 뒤 은은한 음악이 깊은 산속에 울려 퍼졌다.
<One Summer’s Day>, <Starry Starry Night>, <별 보러 가자> 달콤한 음악에 우리는 조용히 감탄사를 외치며 노래에 빠져들었다. 무척이나 달콤한 음악들이었다. 풀벌레 소리, 개구리 소리가 들려오더니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며 <별이 진다네>를 마지막으로 음악은 끝났다.
잠시 뒤 진행자가 하늘을 향해 레이저를 쏘았다. 기다란 레이저 불빛이 하늘의 빛나는 별을 가리켰다.
“이건 견우성, 이건 직녀성입니다. 이 가운데를 흐르는 별빛 무리는 은하수, 밀키웨이입니다.”
우와,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보슬비 내리는 깜깜한 밤길을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걸어오길 잘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흐렸던 하늘이었는데 거짓말처럼 빛나는 별을 보여주었다. 주최 측에서는 더 많은 별자리를 보여주려고 준비했는데 흐린 하늘이 아쉽다고 했다. 하지만 견우, 직녀, 은하수가 얼굴을 내밀며 우리들 머리 위에서 밝은 빛으로 반짝였다. 견우성 같았던 미라, 직녀성 같았던 영희, 그들이 나에게는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은하수였다. 내 친구들이 어둠을 헤치며 여기까지 잘 왔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진안고원의 가장 어두운 밤에 숲길을 걸어 빛나는 별들을 만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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