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데 씹덕아
국문과를 졸업하고 국어학 공부를 하고 있는 나는 글에 대해 소비자(향유자)로서의 취향이 뚜렷하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내 삶은 말과 글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혹자는 네 글도 이상한데 뭘 따지느냐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글 쓰는 공부를 한 적이 없고 글에 대한 소비자로서 발언하고 싶다!
간단히 생각나는 취향들을 말해보겠다. 글에 있어서는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는 것을 적기 더 쉬운 것 같다.
티 나는 비유가 과한 글.
촌스러운 연애편지 같다. 이불킥을 야기하는.. 물론 나는 수더분한 연애편지 같은 글은 좋아한다. 촌스러움과 수더분함은 분명 다르다.
관념어를 남발하는 글.
관념어를 남발하면서 읽기 좋은 글, 의미 있는 글을 쓰는 건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표현 없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글쓰기를 연습할 때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주제어 없이 주제를 표현해 보자.
꾸밈이 과한 글.
'티 나는 비유'와 같은 맥락이다. 미사여구가 필요없다면 과감히 지우는 것이 어떨까. 아름다운 어휘를 써야만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간단한 문장에서 오는 감동이 얼마나 멋진데요!
이렇게 '과한' 세 가지 유형을 읽기 꺼려진다. 소위 '오글거린'다고들 표현하는데, 이건 오글거림의 문제가 아니다. 글맛이 떨어진다.
주장이 있는 글의 경우에, 읽어보았을 때 그다지 타당하지 않으며 그의 논지를 '공감'할 수 없는 글들이 있다.
견해 차이에서 오는 공감 불가가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부실한 논지일 때.
혹은 타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이것저것 들고는 오는데 그것들이 굳이 동원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한편 이론에서의 공감이란, 인간관계에서의 '공감 못해줘?' 같은 의미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다.
나와 입장이 같든 다르든 간에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타당하며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없고 이론이 아름다울 때, 우리는 그 논문을 공감하며 읽어나갈 수 있다.
덧붙이자면, 그 주장의 배경과 필자가 조직한 이론적 세계관을 뒤따라 밟는 것!
'세계관'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싶다.
최근 이런 질문을 들었다.
"네가 책을 구입하는 이유는?"
"정보글이 아닌 시/소설을 읽는 이유는?"
질문의 의도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정보나 간접 경험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것 같았다. 또한 취미가 독서인 사람은 도서관만으로도 욕구가 충족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맞는 말이다. 물론 나도 도서관을 애용하는 가난한 대학원생이다.
나는 이 질문에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었다.
저는 힐링하려고 독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 저는 오타쿠입니다.
텍스트로 독자의 힘듦을 어루만져 주고 공감해 주는 글도 좋겠지만
나는 언어 천재들이 활자로 펼치는 온갖 예술에 전율을 느낀다.
일명 '활자 차력쇼'
특히 '시'는 언어예술이 아닌가!
문학 공부를 안 한 지는 오래되었고 또한 어학 전공자의 선입견이 들어간 표현이라 아주 조심스럽지만,
문학은 가능한 한 최대치의 언어능력 발휘가 아닐까.
여기에는 생성문법적 관점이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문학 전공자들이 몰려와서 반박해 주면 좋겠다.
근데 내가 말하는 '언어능력 발휘'는 어휘력 뽐내기 대회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언어를 갖고 '놀아달라'.
책의 중요한 기능은 간접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세상은 좁다. 우리는 본 만큼 생각할 수 있다.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간 정도를 상상할 수 있다.
생각은 가 본 데까지만 간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소비하며 내 세상을 넓힐 수 있다.
간접 경험을 통한 내 세계의 확장은 또한 나를 확장시키는 것과도 같다.
그게 꼭 책이 아닐지라도, 내 세계와 나를 넓혀 가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분명 나을 것이다.
또한 덕후는 대학원생과 다름이 없다.
대학원생 집합은 덕후 집합과 꽤 큰 교집합을 형성한다(고 감히 주장한다). 왜냐하면, 대학원생들은 대개 자신의 전공을 덕질한다. 아니, 어느 대학원생이나~
가만 생각해보면, 공부하는 사람들이 '그들만의 유머'를 자신들만 소비하는 게 꼴불견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전공 드립은 언제나 재밌다.
나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좀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다. 공부는 멋있는 게 맞으니까.
덕업일치는 부러움의 대상이 아닌가? 물론 일과 좋아하는 것이 구분되는 것이 더 좋다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끝맺기가 어렵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공부는 단언컨대 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