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을 기억하는 방법

MasaJinyoung의 <Buddy Buddy>

by 수호
20250701-_DSC3125.jpg MasaJinyoung, <Buddy Buddy>

성수동에 자리한 포토북 전문서점 쎼임더스트를 찾았습니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것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책방을 좋아합니다. 어디를 가든 주변의 독립책방을 찾아보고, 일정이 허락하는 한 짧게라도 방문합니다. 온라인 서점과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 도서 판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환경 속에서도 한국의 독립책방들은 꾸준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했고, 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닌 채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쎄임더스트는 여러 책들 중에서도 포토북, 즉 사진집을 전문으로 다루는 공간입니다. 문자언어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모든 것을 담아내지는 못합니다. 오직 사진만이 품을 수 있는 영감과 의미가 있습니다. 글책만큼이나 풍부한 사진책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쎄임더스트입니다.


책들을 둘러보는 중,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높이가 7cm 남짓한, 말 그대로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이었죠. 사진작가 MasaJinyoung의 미니 포토북 <Buddy Buddy>였습니다. 작가님의 웹사이트에는 다음과 같은 소개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에겐 특별한 ‘단짝’이 있습니다. 가족, 친구, 사랑스러운 반려동물, 또는 나 자신일 수도 있죠.
Buddy Buddy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단짝 친구와 보낸 10여 년의 시간을 사진집으로 만들었습니다.
함께해온 많은 날들 속에서의 재밌는 순간과, 서로의 애착 인형, 맛있는 요리 그리고 기념비적인 날까지.
이 작은 미니북에는 같은 키와 체격을 지닌 두 사람이 누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담겨 있습니다.
분신술처럼 교차된 사진은 그들의 관계성을 보여줍니다.
‘나의’ 단짝이 ‘모두’의 단짝이 되어, 당신의 마음속에 숨겨진 단짝을 떠올려보세요.

10년 단짝과의 우정을 담은, 평범해 보일 수도 있는 사진집. 그럼에도 이 책이 제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두 사람의 얼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얼굴이 없을 때 우정은 시작된다

누군가를 설명하는 가장 익숙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고, 묘사하는 일일 겁니다. 모두의 얼굴은 때떄로 닮았지만 보통은 꽤나 다르게 생겼고, 우리는 보통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누며 상대를 기억합니다. 때로는 이름은 모르겠지만 얼굴 보면 알 것 같은 경우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사실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는 우정을 이야기해봅시다. 누군가와 우정을 나눈다는 것은, 상대와 내가 서로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선다는 일입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쌓고, 시간과 마음을 기꺼이 내어줄 때, 우리는 우정을 이야기합니다. 처음 본 이는 기껏해야 우리의 얼굴을 알 뿐이지만, 친구는 얼굴만으로는 닿을 수 없는 이야기와 결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정은 얼굴이 지워졌을 때 더욱 분명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Buddy Buddy>에는 사진집의 주인공이라 할 두 친구의 얼굴이 나오지 않습니다. 물론 이는 단지 얼굴 공개에 대한 부담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가 어떻든 간에, 제게는 이것이 우정을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친구를 얼굴이 아닌 삶의 조각들로 기억하는 방식, 그가 입었던 옷으로, 함께 신었던 신발로, 그가 걸었던 거리로, 좋아하는 인형으로, 나눠먹었던 샌드위치로, 몸짓으로, 여행지로, 같이 쓴 우산과 집에서의 일상으로 기억하는 일. 그의 얼굴이 아니라 그와 공유한 삶으로 기억하는 일. 그렇게 쌓인 우정의 단단함.


이 작은 사진집에서 제가 쌓아온 우정을 되돌아봅니다. 기억 속 얼굴을 지워보고 남은 순간들을 하나씩 짚어봅니다. 오히려 우정이 더 단단해지는 것 같고, 괜히 이 관계가 더 소중해지는 것 같습니다. 책은 사진만을 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쇄물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또 다른 이야기들을 새겨넣기도 했습니다. 화면으로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책을 직접 펼쳐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MasaJinyoung님의 웹사이트에서 다른 출판 작업들도 볼 수 있는데, 하나같이 흥미로운 시도들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글책만큼이나 매력적인 사진책의 세계를 한 번 경험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20250701-_DSC3149.jpg MasaJinyoung, <Buddy Buddy>

2024년, 방언 매거진 <TAET>을 제작하며 '좋은 기획'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좋은 기획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것이 '빠르고 편한 기획'이 아니라는 것은 점차 분명해집니다. 오늘 소개한 <Buddy Buddy> 역시 친구를 보여주는 가장 빠르고 편한 방식인 '얼굴' 대신, 그보다 깊은 시간과 기억을 모아 만든 작업입니다. 천천히, 때론 불편하게, 돌아가는 길이 가치를 만들어낸다고 믿습니다. 그 가치를 알아보고, 공유하고, 제 기획에 담아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