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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Dec 08. 2022

스몰 톡의 중요성

우리 좀 친해져 봅시다

"선생님, 영화 좋아하세요?"

.

.

.

스몰 톡 잘하는 사람이 부러웠다. 멀티플레이가 안 되는 나는 무언가 집중하면서 말하기가 어렵다.

집중해야 할 때는 옆에서 말을 시켜도 대답을 못 한다.

그럼에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할 수 있는 순간은 무언가 같이 하고 있을 때다.


오늘은 J 선생님께서 교실 밖에서 무언가를 오리고 있었다. 가위로 오리면서 대화하는 건 어느 정도 가능할 거 같았다.


"선생님, 이거 자르면 될까요?"

아직 아이들이 몰려오기 전, 여유롭다.

얘기를 좀 나누고 싶었다. 선생님들하고 어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친해지지도 못한 것 같았다. 대화를 나눌 때면 꼭 아이들이 싸우거나 사고를 쳐서 대화가 중단되곤 했다.

어떻게 대화만 시작했다 하면 아이들이 사고를 치는지.

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처럼 상황이 매번 그렇게 일단락되었었다. 그럴수록 난 더 오기가 생겨서 틈만 나면 대화 주제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기회는 갑작스럽게 오는 법. 짧은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대화 주제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요 며칠, 선생님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열망에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이 선생님은 이런 대화 주제 좋아할 것 같은데. 괜찮으려나?'

'근데 또 모두한테 적용할 수 있는 대화는 아닌 것 같아. 이 선생님은 그런 거 관심 없어 보이던데.'


모두에게 적용 가능한 대화 주제는 찾기 쉽지 않았다. 이따금씩 반려견을 키우는 선생님과 강아지 얘기를 하곤 했지만, 다른 선생님들은 강아지를 키우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본 영화가 재밌어서 그 얘길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영화는 많이들 보니까 접근하기 쉬운 주제라고 생각했다. 가위로 종이를 오리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영화 보는 거 좋아하세요?"

"아 네..! 저 CGV VIP예요."

성공이다.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좋았어. 시작이 좋다.


"와!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 그러면 혹시.. 최근에 개봉한 영화 올빼미 보셨어요?"

"어 그 영화 $^$&##*.."

한 번 물꼬를 트니 그 후로는 대화가 술술 풀렸다. 선생님은 자연스럽게 영화에서 동네 영화관으로 이야기를 전환했다. 부드러운 주제 전환에 나도 신이 나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


어느새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서로 눈을 맞추며 웃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대화에 마음이 편안해져서 웃음이 나왔다. 대화가 재밌어서 선생님과 친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거리감이 느껴졌는데 방금은 벽이 허물어진 것 마냥 경계가 안 느껴졌었다. 대화를 더 나누고 싶어 다른 주제로 운을 띄우고 있을 때였다.


"근ㄷ......"

"띵동~"


아. 날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건 초인종 소리였다. 아이와 학부모가 밖에서 누른 초인종이었다. 등원 시간이구나 벌써. 이제 곧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올 거다. 짜게 식어버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생님과의 대화가 재밌었던 탓에 친구랑 수다 떠는 기분이었는데, 아니었구나. 갑자기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에서 직장 동료로 보였다. 멀게 느껴졌다. 다시 돌아왔다. 아, 친구가 아니었지. 내가 너무 들떴었던 것 같은데 선생님이 잘 맞춰주셨던 걸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을까? 내가 너무 친근하게 대했던가? 내 모습이 어땠지?

방금 전까지 들떠서 수다스러웠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자른 종이를 후다닥 정리하였다. 선생님도 자리를 정리하고 벌떡 일어나 아이들 등원 맞이를 위해 쏜살같이 뛰어가셨다. 잠깐이지만 달콤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스몰 톡의 위력을 느낀 10여분이었다. 직장에서도 이렇게 신나게 대화할 수 있구나.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10분도 채 안된다는 것이 씁쓸했지만 희망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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