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장 1절 ~ 21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850명의 우상 선지자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 1인의 대결은 너무도 흥미진진한 대결입니다. 통쾌한 승리의 스토리이지요. 엘리야 활동하던 당시 이스라엘 왕의 이름은 아합이었고 왕비의 이름은 이세벨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이방에서 온 여자였습니다. 우리 남자 친구들 결혼을 잘 해야 합니다. 아담도 하와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지요. 결국 우리 남자들은 여자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렇게 똑똑하지가 않아요. 여하튼, 이세벨은 이방에서 시집올 때 우상숭배 문화를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바알과 아세라라는 우상이 있었습니다. 이세벨은 온 이스라엘 백성이 이 우상들을 섬기도록 조장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우상을 섬기게 되었고요.
하나님이 좋아하실리가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부터 정리하라고 했던 우상의 잔재들을 아직도 붙들고 있는 것도 말도 안되는 일인데 결국 우상의 문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 맨 처음 전쟁이 바로 여리고성 전투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성 안에 있는 남녀노소 및 모든 가축들을 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어마무시한 명령의 이유는 '죄의 씨'를 말려 버리는 것에 있습니다. 또한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고 그들의 신을 섬기지도 말라고 하셨죠. '죄의 씨'는 마음을 빼앗을만큼 매력적입니다. 일단 이 씨앗을 마음에 뿌리는 순간 순식간에 자라나 사람을 먹이로 삼습니다. 죄가 주는 쾌락은 쉽게 뿌리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부터 명령하신 것을 모두 지키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있던 거주민을 모두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혼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어겼습니다. 급기야 이방인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만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라면 아무리 왕비가 조장해도 따르면 안되는 명령에 의지적 저항을 해야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미 분별력을 잃은지 오래입니다. 눈과 귀가 마비 된 채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못된 아합과 이세벨에게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갑니다. 그리고 바알의 선지자 40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50명을 갈멜산으로 소집합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단의 제물을 태우는 신이 진짜 신이라고 선언하고 서로의 신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상상을 해볼까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1인과 그렇지 않는 850명이라... 사진을 검색해보니 800명의 규모가 이정도 됩니다.
어마어마하죠? 저기에 50명이 더 있는 겁니다. 이 850명이 통성기도를 합니다. 주여~ 대신에 바알~ 바알~ 바알~ 바알 3창을 했겠죠. 그리고 아세라~ 크게 외치며 하지 않았을까요? 성경에는 제단 주변을 뛰어 놀았다고 표현되어 있고 나중에는 '자해'를 하며 기도했다고 나옵니다. 상상만으로도 심란하죠. 그리고 겁나죠. 일촉즉발 까딱하면 엘리야가 '다구리'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결국 하늘에서는 불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 차례죠. 엘리야가 상남자입니다. 제물 위에 양동이로 물을 부어 제단 주변에 물이 고일만큼 붓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시다 이거죠. 그리고 하늘의 하나님 불로 응답하소서 하자 마자 그냥 불이 쫘악~ 이름하여 천화 스웨그~ 하나님 멋집니다. 하늘 천 불 화 스웨그~ 뭐 게임 끝났죠. 이 사건으로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엘리야는 850명의 우상 선지자를 모두 죽입니다. 이 역시 '죄의 씨'를 끊어내는 것이죠.
이 엄청난 사건을 들은 아합과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이 바로 그 장면입니다. 엘리야가 생명을 지키려 아합을 피하여 유대광야로 도망갑니다. 도망하는 모습이 안스럽다 못해 비참하기도 합니다. 광야에 다다른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구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엘리야를 넘어뜨리면 자신의 선지자 850명의 죽음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는데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관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달려들어 우리의 생명력을 빼앗으려는 사탄의 계획입니다. 요즘 같이 교회를 미워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음에 결단을 하고 말씀대로 살기로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달려드는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자신의 왕국이 우리로 인하여 파멸할까봐 기를 쓰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를 낙담하게 하고 실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천화 스웨그가 작렬했던 천하의 엘리야도 죽기를 청하였을 만큼 사탄의 속삭임은 위험합니다. 사탄은 여전히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간구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리고 장래의 일을 알려주시고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사탄이 바라는 대로 유대광야의 어느 로뎀나무 아래에서 굶어죽게 두시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엘리야를 돌보십니다. 불에 구운 빵과 물을 주셔서 기력을 회복하게 하시고 정신이 들자 엘리야에게 마지막 '명령'을 하십니다. '아람왕 아히엘과 이스라엘왕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라. 그리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할 선지자가 되게 하라' 하나님은 절망에 빠진 엘리야를 여전히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사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엘리야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엘리야를 바라보고 계셨던 것이죠. 갈멜산에서부터 로뎀나무 아래까지 하나님은 여전히 엘리야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적절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죽고 싶다고 자살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절망에 빠졌지만 하나님 앞에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를 여전히 믿으시고 마지막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심과 동시에 엘리야에게 일침을 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서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하라. ... 그리고 이스라엘 가운데 우상에게 무릎꿇고 입마추지 않은 7,000명을 남길 것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너만 나의 사람이 아니다. 내게는 너를 이을 선지자도, 신앙의 절개를 지킨 백성들도 있다. 그러니 생색내지 마라' 이런 느낌인 것입니다. 엘리야가 낄 때는 제대로 끼었는지는 몰라도 빠질 때를 잘못 택한 것 같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를 선하게 응답하셨지만 말이죠.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예수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다가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아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신게 아닙니다. 여전히 해야할 일은 남아 있습니다. 다만 누가 하는지가 관건입니다. 우리는 낄 때와 빠질 때를 잘 알아야 합니다. 만일 지금 하나님의 일에 끼어 있다면 우리는 빠지기를 간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쓰임 받는 것이 너무 귀하고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번민이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두려움이 올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만하라고 하실 때까지 충성을 다하여 보기를 바랍니다.
아합을 대신하여 왕위에 오른 예후가 권력의 피바람을 몰고 왕궁에 입궐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을 도와 우상숭배를 일삼고 악정을 도왔던 사람들을 모두 처단하죠. 이 이세벨이라는 여자 대단한 여자입니다. 서슬이 퍼런 예후가 성에 들어올 때에도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질만큼 도도하고 뻔뻔합니다. 예후가 신하들에게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지라고 명령하고 이세벨은 그대로 창밖으로 떨여져서 죽습니다. 내려가서 시체를 치우라고 하여 다시 신하들을 보냈는데 두개골과 손발을 제외하고는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비참하게 부서진 시신을 개들이 먹었습니다. 참 비참한 죽음이지요. 이세벨이라는 이름도 재미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이쉬는 남자, 이샤는 여자를 뜻합니다. 그리고 제블 혹은 세블이라는 말은 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요. 이세벨은 이샤+세블이 아닐까 합니다. 굳이 번역하자면 똥녀가 되겠지요. 왕비의 이름이 똥녀... 아마도 후대에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참 뭣같은 죽음을 원한다면 하나님을 멸시하면 됩니다. 그러면 지옥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