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성규 Jan 11. 2020

내 영혼의 음식, 꽃게 된장찌개


  지금이야 이것저것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과체중과 비만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들지만 어린 시절에는 입도 짧고 작은 키만큼이나 깡마른 편에 속했다. 반찬 투정과 편식으로 부모님 골머리를 꽤나 썩였다. 나의 왜소함만큼이나 부모님의 마음은 쪼그라들었고 늘 뭐 하나라도 더 먹이고 몸에 좋다는 걸 찾아 먹이는 데 신경을 쓰셨다.


  나의 피와 살이 되기 위해 희생된 전국의 황소개구리가 기실 몇 마리이며 사골이며 돼지갈비며 통닭이며 소와 돼지와 닭의 희생은 그 얼마인가를 생각한다면 죄책감에 채식주의를 선언해야 될지도 모른다.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먹은 보약은 도대체 몇 첩이나 될까? 자전거 하나 사주시는데 3년이 넘게 걸리셨던 부모님이시지만 먹는 것에 한해서는 아낌이 없으셨다.


  그런 입 짧은 나에게도 이거 하나만 있으면 밥 두 공기 뚝딱이었다. 그건 바로 꽃게 된장찌개였다. 하지만 꽃게 된장찌개는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초봄의 찬 기운이 물러날 때 무렵부터 우리 동네 골목으로 생선 장수 아저씨의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생선이 왔어요~ 아주 싱싱한 생선이 왔어요~' 하는 소리를 나는 기다렸다. 녹음된 소리가 온 동네에 울려 퍼지면 슬리퍼를 신고 달려 나갔다.


  "엄마! 엄마! 꽃게 나왔대요."


  식당을 하셨던 부모님인지라 어머니는 본인의 요리에 대한 철학이 있으셨다. 암꽃게의 살과 알이 어느 정도 실하게 차지 않으면 꽃게 된장찌개는 그날도 물 건너 간 일이었다. 이왕이면 좋은 재료로 맛있는 꽃게 된장찌개를 먹이고 싶으신 어머니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긴긴 기다림 끝에 황송한 꽃게 된장찌개를 영접하게 되면 그날 하루는 기분이 날아가는 것 같았다. 요리의 순서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집된장 풀고 두부도 가득 넣고 뚝배기의 된장찌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사랑하는 임을 맞을 기쁨으로 들떠 밥상 앞에 앉아 꽃게 된장찌개를 기다렸다.


  밥상 가운데 냄비 받침 위로 꽃게 된장찌개가 담긴 뚝배기가 올려지면 앞접시에 내 몫의 꽃게 한 마리를 척 하니 올리고 정성스레 살을 바르기 시작한다. 지금처럼 게살 빼는 포크가 보급화되었던 시기도 아닌지라 내 무기는 젓가락 하나였다. 살을 발라 숟가락 위에 소복이 쌓이면 미리 찌개를 퍼다 비벼둔 밥과 한 입 크게 떠서 쑥 하고 집어삼켰다. 입 안으로 바다 향이 퍼지고 쫄깃한 게살을 씹다 보면 자꾸만 단맛이 베어 나왔다.


  그런 날이면 다른 가족들은 벌써 식사를 마치고 밥상 앞에서 일어나고 한참이 지나도록 나의 경건한 식사 시간은 마칠 줄을 몰랐다. 하나하나 남김없이 살을 발라내 먹고 나면 최후의 의식은 게딱지이다. 남은 밥을 게딱지 위에 쏟아붓고 게장과 나머지 게살들이랑 쓱싹쓱싹 비벼서 싹싹 긁어먹고 난 뒤 부른 배를 두어 번 둥둥 두드리고 나서야 영광스러운 식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지금도 고깃집을 가면 꽃게 된장찌개가 나오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때의 그 맛이 나질 않는다. 게살의 실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대게나 킹크랩이나 맛집을 찾아가도 어릴 적 먹었던 꽃게 된장찌개의 게살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어쩌면 자주 먹지 못했고 재료가 좋을 때만 해주시던 음식이고 나만의 경건한 의식이 있었던 음식이라 꽃게 된장찌개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사진 출처 : https://www.crowdpic.net/@Nsay0290 


매거진의 이전글 지독한 연말 맞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