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은 반나절이면 끝나지만, 내부 조율은 한 세월이다.
노조 교섭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늘 비슷한 걸 상상한다.
회의실 안 팽팽한 긴장감, 서류를 탁 내려놓는 조합 간부, 말 한마디에 무겁게 분위기가 가라앉는 순간, 그리고 극적인 타결.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날이 아니라 그 전날 또는 당일 오전에 하는 사전 미팅이다.
협상날을 준비하는 내부 조율.
"이건 양보해도 되나요?"
"아니요, 그건 절대 안 됩니다."
"그럼 어디까지 가능하죠"
하루 전인데 PPT는 벌써 일곱 번째 수정 중.
'교섭안'이라는 제목은 너무 공격적으로 보인다고,
'조정안'은 너무 물러보인다고,
'제안안'은 또 약해 보인다고 한다.
그렇게 단어 하나 가지고 난리다.
솔직히 말해서, 노조는 덜 무섭다.
그들은 요구가 명확하고, 논리가 있다.
하지만 내부는 다르다.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고, 자존심이 부딪힌다.
"이번엔 절대 양보하면 안 됩니다."
"그럼 작년에 준 건요?"
"그건 그때 사정이고 지금은 다르죠."
이 대화는 무한 반복이다.
이쯤 되면 교섭 전략이 아니라 심리전이고 심하면 감정싸움까지 번질 때도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HR은 샌드위치처럼 낀다.
노조 앞에선 회사 대표로, 회사 안에선 노조의 이해자로.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누구의 편이어야만 하는 자리다.
교섭날이 되면 상황은 더 흥미롭다.
노조는 "회사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던데요?"라고 묻는다. (어떻게 알았지...) 순간 정적.
그 말 한마디에 동공지진이 오며 내부 조율의 흔적이 드러난다.
진짜 싸움은 교섭장 밖이라는 것을.
교섭은 반나절이면 끝난다.
그런데 내부 조율은 반 달도 넘게 걸리며 그 마저도 계속 바뀐다.
서로의 입장 차를 맞추느라, 한 문장 고치느라, 한 줄의 표현을 두고도 수십 통의 메일이 오간다.
노조보다 무서운 건 노조가 아니라, 같은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과 싸우는 일이다.
교섭이 끝나도 평화는 오지 않는다. 이번엔 내부 회의가 시작된다.
"왜 그 부분이 그렇게 정리됐어요?"
"조금 더 강하게 밀었어야지."
"이러면 노조에 끌려가는 거 아니냐"
그 말들을 듣고 있으면 이 회사의 진짜 교섭은 노조와 하는 것이 아니라 사내 관계자들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누구의 말이 옳다, 틀리다를 가르는 게 아니라
그 중간을 찾아가는 게 본질이다.
숫자의 중간값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살리고 조합의 체면을 보호하며 회사가 지켜야 할 선을 놓치지 않는 것.
그래서 교섭의 핵심은 '협상'이 아니라 '조율'이다.
서로의 자존심과 이해가 뒤엉킨 그 한가운데서
HR은 오늘도 보이지 않게 갈리고 있다.
노조보다 더 무서운 건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자존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