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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Aug 25. 2020

잡스에 대한 허와 실.



디자인할 줄은 몰라도 볼 줄 안다는 말은
글을 쓸 줄은 모르는데
읽을 줄 안다는 말처럼 멍청한 말이다.





1년 전 페이스북의 소회

1년 전 상단의 문구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적이 있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공감을 했지만 디자이너가 아닌 분들의 공분을 샀던 것도 사실이다. 말의 뜻은 전문적인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취지지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을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댓글 중 스티브 잡스에 대한 글이 많았는데,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디자인을 만들어 냈지 않았냐는 반문이 달렸고, 디자이너들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과연 스티브 잡스는 디자이너인가? 아닌가? 결론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가지 디자인 실무를 책임지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럼 왜 사람들은 잡스가 마치 디자인을 책임진 실무 디자이너처럼 인식할까? 그건 잡스의 쇼맨십이었다. 잡스는 1년에 한 번 애플의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개발한 것처럼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사실 애플의 제품들은 그것들을 개발하고 세상에 발표하기까지 노력한 숨은 개발자들과 디자이너들이 존재한다. 세상에 공개되는 모든 제품과 서비스는 전문가들의 집단 지성의 결과지 개인의 결과가 아니다.




애플 Ⅰ, 잡스는 창업부터 사업가였다

잡스와 워즈니악은 차고에서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컴퓨터의 설계와 제작은 모두 워즈니악이 도맡아 했다. 잡스는 워즈니악이 만든 컴퓨터를 판매할 판매점을 찾고 홍보하는 일을 했다.

잡스와 워즈니악 (좌), 애플Ⅰ(우)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워즈니악은 마진을 남기지 않고 제작 비용에 든 금액 정도만 받고 싸게 팔기를 원했지만 잡스의 생각은 달랐다. 잡스는 가능한 비싼 가격에 팔기를 원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제작비의 세배쯤 되는 소매가를 정하고 상점에서 지불하는 500달러 납품가에 33퍼센트의 이윤이 붙도록 가격을 책정했다. 그래서 책정된 가격은 666.66달러이다. 잡스는 애플 초기에서부터 사업가의 기질을 보였다. 그런 잡스에게 워즈니악의 아버지는 "너는 하는 것도 없는데 수익의 반을 가져갈 자격이 없다"라고 비판하자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은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아이튠스, 아이팟은 집단 지성의 결과

빌 킨케이드는 한때 애플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그는 미국 공영 라디오에서 리오라는 휴대용 MP3 플레이어가 소개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하지만 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뒤 돌연 의욕에 차올라 제프 로빈과 데이브 헬러와 함께 맥에서 쓸 수 있는 리오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사운드잼'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애플은 2007년 7월 사운드잼을 인수한다. 애플은 사운드잼을 애플 제품으로 탈바꿈을 시작한다. 그렇게 아이튠스는 탄생한다. 애플은 아이튠스를 활용한 휴대용 플레이어를 만들기로 착수했지만 개발에 필요한 부품을 확보하지 못했다. 존 루빈스타인은 잡스에게 기다려줄 것을 요청하고 몇 개월 뒤 소형 LCD 스크린과 충전 가능한 배터리를 확보했다. 또 도시바의 5기가바이트의 디스크를 찾아냈다. 5기가바이트는 음악 1,000곡을 담을 수 있었다. 루빈스타인은 잡스에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고 전하고, 1,000만 달러짜리 수표 한 장이면 해결된다고 말했다. 잡스는 바로 루빈스타인에게 권한을 위임했다. 그렇게 주머니 속에 1,000곡이 가능하게 된다. 아이팟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능은 트랙휠이다. 트랙휠은 필 실러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수백 곡을 버튼으로 컨트롤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개발한 트랙휠은 엄지 손가락으로 휠을 돌리면 곡 제목이 스크롤되었다. 휠을 돌릴수록 스크롤의 속도 또한 빨라졌다. 잡스는 트랙휠을 보자마자 외쳤다. "바로 그거야!" 잡스는 엔지니어들에게 트랙휠을 아이팟에 장착하라고 지시했다.

애플의 iPod


이제 아이팟의 외관은 조니 아이브의 몫이었다. 조니 아이브는 소형 소비자 제품이 일회용품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이팟은 일회용품 같은 느낌이 나지 않기를 바랬다. 흰색 전면부를 광택 나는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든 후면부와 매끄럽게 결합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백색은 그냥 백색이 아닌 순백색이어야 했다. 기기뿐 아니라 이어폰 충전기 케이블까지 모두 새하얗게 만들기를 원했다. 잡스는 아이브의 생각에 따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이팟을 리 클라우가 이끄는 TBWA 광고 팀이 광고를 맡았다. 그렇게 아이팟의 광고 이미지가 탄생했다.

iPod의 광고 이미지




전문가를 전문가답게

그렇게 완성된 제품과 이미지를 혼자 발표하니 모든 것을 그가 해냈다고 착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잡스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지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아이팟 개발 시 잡스는 개발팀에 매일 밤 전화로 아이디어를 전달했다고 한다. 개발팀들은 잡스의 아이디어를 서로 공유하고 잡스의 마음을 개발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설득할지 공모했다고 한다. 잡스의 아이디어로 인해 개발팀은 골치가 아팠다고 한다. 그들은 잡스로부터 서로를 보호하고 지원했다고 하니 사실 개발팀의 적은 잡스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잡스는 설득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또 훌륭한 아이디어는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오죽하면 다른 기업에서는 수개월이 걸리는 결정을 잡스는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실무자들을 지원했다. 잡스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오는 것을 즐겼다. 또 애플의 직원들이 잡스에게 아이디어를 말하면 그 아이디어는 쓰레기 같다고 말하고 2주 뒤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있다며 쓰레기라고 치부했던 아이디어를 마치 자신의 아이디어처럼 우겼다고 한다. 오죽하면 조니 아이브는 본인의 아이디어 노트에 지금까지 모든 아이디어가 기록되어 있고 그것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맞다고 했을까? 애플이 우수한 제품을 만든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그들에게 설득당했다는 것이다. 잡스의 성격은 괴팍하고 소위 말해 지랄 같았지만 훌륭한 전문가들을 오퍼레이터로 활용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전문가들이 문제를 해결해 가져 오기를 바랬다. 전문가들 또한 그랬다. 이 글의 취지인 '디자인할 줄은 몰라도 볼 줄 안다는 말은 글을 쓸 줄은 모르는데 읽을 줄 안다는 말처럼 멍청한 말이다.'라는 의미는 전문영역은 제대로 된 전문가에게 맡겨달라는 의미다. 잡스가 그랬던 거처럼.





참고서적

[스티브 잡스, 월터 아이작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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