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

알면서도 아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

by 베르테르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가던 개 한 마리의 생이 내 밑으로 짓밟히는 느낌. 나는 오늘까지도 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 대기업 공채 최종면접을 본 이후 없던 힘까지 모두 빠져 어머니의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감당할 수 없는 패배감에 할 말이 없었고,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애써 무언가 물을 엄두를 못 내고 계셨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는 침묵과 한숨만이 공존했다. 그렇게 시골길을 따라 달리던 침묵에 개 한 마리가 끼어들고 말았다.


어머니는 앞에 끼어든 개를 보았지만 좁은 시골길과 뒤에 무섭게 달려오는 화물차 때문에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치 없던 개 한 마리는 침묵에 깔리고 말았다. 그것이 차 안 침묵이 깨진 순간이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내 운명을 확실히 인식했다. 개는 죽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더 낫다는 생각이셨는지 “살짝 치여서 옆으로 튕겨져 나간 것 같지?” 라며 물어오셨다. 회피하고 싶으셨던 것이고 그 회피에 확신을 얹고 싶으셨던 것이다. 나는 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 나에게서는 그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생명이 갈기갈기 찢기는 느낌도 사무치지만, 사실을 간절히 피하고 싶어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누구보다도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은 나였다. 가족의 기대를 알면서도 항상 서류면접이나 시험에서 낙방했던 내가, 면접이란 영광스러운 자리에 처음 당도했던 내가, 긴장한 나머지 면접을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학창 시절 누구보다 실천적으로, 그리고 도전적으로 살았다고 자부하는 내 자신이 남들보다 면접을 못 봤다는 사실 따위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또 하필 생애 최초로 면접을 본 그런 날 개가 내 인생에 끼어든 것 또한. 너무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았다. ‘내가 천하를 배신할 수는 있어도, 천하가 나를 배신하지는 못한다.’고 했던 조 모 씨의 배포를 따라갈 수 없다면 어딘가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심정이었다.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 사실 이번에 모 대기업 최종면접 봤다.” 나는 친구에게 단지 ‘잘 될 거야.’라는 짧은 한마디 말이 듣고 싶었다. 그러면 정말 잘 될 것 같은 착각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내 말을 들은 친구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떨어질 것이라며 장난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낭패였다. 전화를 끊자마자 쓸쓸함에 눌려 잠이 들었다.


그때 나를 둘러싼 공간은 공허의 감옥이 되었고, 모든 것들은 그 감옥의 견고한 창살이 되었다. 내 어찌 면접날 개를 밟은 것이 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모를까. 그리고 내 어찌 친구의 짓궂은 농에 섞인 우리 세대의 애잔함을 모를까. 다 안다. 그러면서도 그것 모두를 마음으로 받아 안을 수 없는 나는 공허에 빠져 허우적댐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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