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

느려도 괜찮아

by 자청비

어떻게 살아야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대로 지낼 수 있을까.


2022년 화재 사건 이후, 어린이집에서 연계해 준 무료 상담을 신청한 적이 있다.

상담실에 들어가 상담사님 얼굴을 보는 순간, 이유도 모른 채 눈물이 쏟아졌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마 나는 그날, 설명 없이도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을 오래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그날 상담에서 나는 ‘자기 효능감이 거의 없는 상태’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처음 듣는 단어였다.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자기 효능감이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신념,

즉 특정한 과제를 일정 수준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자기 능력에 대한 믿음이라고 했다.(출처: 나무위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이 효능감을 어떻게 채워야 할까.


어쩌면 내가 끊임없이 배우려는 사람,

항상 무언가를 공부하고 인증받으려는 사람이 된 이유도

이 빈 곳을 메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내일이라도 갑자기 능력치가 올라

모든 걸 잘 해내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욕심이 많고, 간사하다.

노력하지 않아도 결과만 얻고 싶다.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현실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심지어 게임 속에서도 레벨업을 하려면

조건을 채우고, 시간을 쓰고, 반복을 견뎌야 한다.

다만 현실은 재미가 없고, 게임은 재미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다.

날마다 하려고 애쓴다.

하고 싶은 모든 건 못 해도,

해야 할 일을 하며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방향은 분명한데 속도가 느려서 자주 답답해질 뿐이다.


나는 큰 일을 벌이지는 못한다.

대신 내 환경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늘려간다.

소규모 모임에 참여하고, 과제를 만들고, 스스로를 묶는다.

특히 ‘인증’이라는 장치 앞에서는 유난히 성실해진다.

인증을 하기 위해 움직이고,

움직이기 위해 스스로를 인증 제도 속에 밀어 넣는다.


하지만 요즘은 한계를 느낀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어떻게든 다 해내려

에너지를 쥐어짜며 버텼는데,

지금은 그만한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공허함이 어느 정도 채워진 건지,

아니면 단순히 지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다만 분주함 자체가 벅차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2025년에도 나는 꽤 성실하게 달려왔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하기 싫은 것도 감당하며 버텨왔다.

앞으로도 어쩌면 ‘버틸 일’이 더 많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마음을 눌러본다.

새해 계획은 언제나 거창하지만,

정말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살기 위해서는

조급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

천천히 하나씩, 정말 천천히여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려 한다.


느려 보이거나, 실제로 느리더라도

그 속도가 내가 선택한 방향이라면

그게 결국 내 삶의 속도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삶의 형태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