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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뷰 MoBeau Jul 05. 2023

학생과 직장인 사이에서

25년을 되돌아보며 적는 소회 (2) - 컴퓨터, 게임

  그렇게 책을 좋아하던 어린아이는 또 하나의 취미가 생기게 되는데, 바로 컴퓨터였다. 전자 계열에 종사하시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4살 때부터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부터 특별한 걸 한 건 없긴 하다. 또래 남자아이들이 그러하듯 게임을 주로 했다. 다만 시작이 빨랐을 뿐이다. 


  처음엔 부모님이 사주신 영어 교육용 게임을 주로 하다가 5살인가 6살 시절 처음으로 코엑스 반디앤루이스에서 FIFA2002를 구매해 처음으로 온전히 재미만을 위한 게임을 플레이했다. 그때부터 준게임중독자의 어린 시절이 시작되었다. 이때 생각해 보면 정말 어떻게 축구 게임이 그렇게까지 재밌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만 정말 그때의 난 게임에 진심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임에도 워낙 게임을 좋아하고 많이 하다 보니 부모님은 게임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에 1시간으로 제한하셨다. 그러다 보니 나는 온갖 꼼수로 소위 '몰컴'을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첫 번째 꼼수는 7살 때 발견했다. 낮에는 1시간 게임한 후 꾹 참았다가 밤 12시까지 모두가 잠드는 걸 기다렸다. 그러곤 부모님의 취침 여부를 확인하고 몰래 슬금슬금 기어나가 서재에서 컴퓨터를 켜고 새벽까지 축구 게임을 했고, 어머니께 걸려 등짝을 맞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우리 집 컴퓨터에는 비밀번호가 걸렸다.


  그다음은 당연히 alt+tab이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 내준 이런저런 과제도 많았고, 영어학원 과제가 온라인이기도 했기에 과제하는 척하며 빠르게 화면전환이 가능한 플래시 게임을 하는 건 예삿일이었다. 알트탭을 빠르게 할 피지컬이 안 되어 버튼 하나로 화면 전환이 가능했던 더블모니터도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연기가 서툴렀는지, 어머니의 촉이 좋으셨던 건지 걸리기 일쑤였고, 그때부터 우리 집 컴퓨터에는 키즈락이 걸렸다.


  마지막으로는 부모님의 외출 타이밍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하루 1시간 정해진 게임 시간에는 키즈락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부모님의 정기적 외출 타이밍을 계산해서 일부러 그 직전에 그 시간을 사용했다. 그리곤 컴퓨터 전원을 끄지 않은 채로 할 일을 하는 척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외출하시면 그 짧은 시간에 조금이라도 게임을 더 즐겼다. 어쩌면 이건 부모님이 돌아오시는 시간만 정확히 인지하고 미리 컴퓨터를 껐다면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부모님이 돌아오실 시간 즈음이 되었음에도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버티다가 걸리고 말았다. 도착하신 부모님이 도어락을 누르시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허겁지겁 강제종료를 위해 전원버튼을 눌렀는데, 운이 없었는지 종료가 조금 오래 걸려 손을 늦게 떼는 바람에 현장에서 적발되었다. 그때부터 부모님은 외출하실 때마다 파워선을 뽑아 어딘가에 숨겨두시고 나가셨다.


  사실 파워선이 뽑힐 때쯤엔 중학생이 다 된 시점이었다. 그쯤 되어선 워낙 학원 공부가 빡세고 부모님도 내 온갖 잡기술을 잡아내는데 스트레스를 받으셨는지 공부할 것을 다 하면 밤에는 충분히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다. 그러다 보니 잠이 부족해져서 아예 부모님과의 협상 끝에 토요일 하루는 학원을 마치면 온전히 게임을 하는 날로 삼았던 기억이 난다.


  좌우간 그 이후로는 오히려 맘 편하게 이런저런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했다. 어렸을 적 재미있게 했던 게임을 회상해 보면 빅뱅 전 추억의 메이플스토리를 정말 재밌게 즐겼었다. 임진록이라는 한국 역사를 기반으로 한 RTS 게임도 기억에 남는다. FIFA 시리즈는 2~3년에 한 번 나올 때마다 꼬박꼬박 구매하여 플레이했다. 대항해시대 온라인도 정말 열심히 했었는데, 24살이던 작년에 다시 깔아서 해보니 금세 질리더라. 그땐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했나 모르겠다. 그리고 중3 때는 롤에 빠져서 시즌2에만 2천 판인가 3천 판을 플레이했던 기억도 난다.




  사실 지금 내 옆엔 300만 원 주고 마련한 데스크탑이 있다. 하지만 이 컴퓨터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할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기 때문. 퇴근하고 운동하고 오면 몇 시간 남지도 않는데 약속도 나가야 하고, 개발 공부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할 게 너무 많다. 시간을 쪼개서 한다면 1~2시간 정도는 할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시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상 오히려 그렇게 감질나게 하는 건 스트레스 해소가 아니라 추가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아 컴퓨터 전원을 켤 엄두가 안 난다.


  지금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렸을 적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렇게 기상천외한 잔머리까지 써가며 게임을 열심히 했나 싶다. 돌아보니 추억이긴 한데, 역지사지를 해보자니 부모님 입장에선 정말 골칫거리 셨을 것 같다. 쓰다 보니 죄송하다는 생각이 드네.


  좌우간, 게임 시간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은 사실 꼼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시험을 올백을 맞고 오면 어머니가 며칠간 자유롭게 컴퓨터를 쓸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면 게임을 더 할 수 있다는 간단한 당근에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완전히 홀려버렸고, 꽤나 열심히 공부에 임했다.


  운 좋게도 나름 공부머리가 있었고, 어머니께서도 워낙 똑똑하시다 보니 최고의 가정교사로서 내 공부를 도와주셨다. 그래서 첫 시험부터 꽤나 좋은 성적을 계속해서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게임을 열심히 했었지... 그때만큼은 세상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제일 힘들었던 건 게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것도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오히려 시험에서 실수를 해서 틀려왔을 때가 더욱 큰 스트레스였다. 분명히 시험을 잘 봤음에도 부모님이 크게 실망하시고 나를 혼내실 때 드는 무력감과 억울함, 분노가 더 크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왜 그런 실수 다들 해본 적 있지 않은가. 옳지 않은 것을 골라야 하는데 옳은 것을 고른다던가, 모두 고르시오인데 하나만 고른다던가 하는 실수 말이다. 수학 같은 경우는 단순 계산 실수도 있겠고. 좌우간 우리 어머니는 몰라서 틀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해 주셨지만 그렇게 어이없는 방식으로 시험 문제를 틀려오면 호되게 혼을 내셨다. 


  어린 마음에 너무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공부를 안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열심히 했는데 순간 집중력이 흔들려 틀린 한두 문제에 이렇게 크게 혼이 나야 하나? 우리 부모님이 나를 싫어하나? 이런 실수나 해서 틀리는 내가 없으면 우리 가족이 행복해질까? 이런 생각까지 했던 것 같다. 요즘 말로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느낌에 짓눌렸던 듯하다. 


  하지만 그때 그렇게 혼이 나며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게 그 이후에도 굉장히 큰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어쨌든 그렇게 틀려오면 억울할 만큼 크게 혼이 나니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시험에서 시간이 남으면 검산하고, 다시 처음부터 문제를 풀어보는 등 나만의 실수 방지 루틴을 만들어 나갔다. 물론 그런 게 있다고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원체 덤벙대던 내가 조금이나마 실수를 줄이는데 이때 체득한 게 도움이 되었다. 


  물론 25살 먹은 지금도 마음이 급해지고 의욕만 앞서다 실수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때마다 어렸을 적 배운 것을 잊지 않으려 애쓴다. 괜히 열심히 했는데 실수 하나로 모든 결과가 폄하당하면 억울하니까. 사실 나이를 먹었다고 실수로 뭔가 내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상황이 억울한 건 똑같은 것 같다. 다만 그 억울함이 아무것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달라진 점이 아닐까.




  지금까지 게임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내가 컴퓨터로 게임만 한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방과후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웠는데, 이게 또 내 지금까지의 인생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실 그때 프로그래밍을 배운 것은 아니었고 한글, 파워포인트, 엑셀 같은 여러 문서 작성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기초 수업을 듣다 보니 자연히 이어지는 ITQ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게 되었고 학교에서 제공하는 관련 수업 모두를 이수하고 전부 ITQ 자격증을 취득했다. 워드프로세서, 컴활 등도 함께 말이다. 그게 아마 초4였나 5였나 그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자 방과후학교 선생님이 나와 부모님과의 면담 시간에 프로그래밍을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다. 어차피 방과후학교에 더 배울 것도 없다 싶던 시점에 천금 같은 조언이었다. 게임을 좋아하던 어린 나는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되면 내가 게임을 만들 수 있을 테고, 부모님도 내가 만든 게임은 플레이할 수 있게 해 주실 거라는 생각에 마냥 신나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컴퓨터 학원에 등록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C언어의 괴랄한 포인터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뚝딱 게임을 만들 수 있길 기대하며 들었던 수업에서 이어지는 영어와 콘솔 input, output의 건조함에 흥미를 금세 잃어버리고 코딩 공부를 그만두었다. 언젠가 다시 배우면 되니까~ 하며 룰루랄라 뛰쳐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자체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 사실 시작은 컴퓨터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라 게임을 좋아했던 건데 이게 자연히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으로 이어진 듯싶다. 거기에 더해 아버지께서 정말 어릴 적부터 들려주신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스티브 잡스는 자서전이 나오고 나서 그 두꺼운 책을 10번은 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항상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CEO를 장래희망에 적었다. 그리고 이때 내 손으로 적었던 내 꿈이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온 큰 기둥이 아닐까 생각한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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