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함께 빛나는 방법
다녀온 전시,
별 여름 밤 여름 별 (Aligning the stars) / 아트조선스페이스 ACS
얼라인 (align)이라는 단어, 아시죠? 정렬을 맞추고 목표를 일치시키며 결을 맞추는 의미를 가진 이 ‘간절한’ 단어가 근래 자주 눈에 들어옵니다. 서로 다른 우리들이 함께 빛나기 위해서 참고할만한 효율적인 태도를 담고 있어서 왠지 인상 깊지만, 때에 따라 강요의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한편 자연에서 보이는 얼라인의 상태는 아무 말 없이, 두 번 다시 같지 않을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일어납니다. 풀도, 바람도, 별들도, 물도, 어딘가를 향해 날아가는 새들도 ‘말하지 않아도 아는 듯’ 그저 함께 빛나고 있거든요.
별빛이 궤를 함께할 때 더욱 아름다운 것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감각을 모아 놓은 6인의 회화 전시가 서울 한복판의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마치 일련의 별자리처럼 찬란하게 머무르고 있습니다.
먼 옛날 누군가 어두운 하늘을 매일 들여다보며 일련의 별에 의미를 부여했듯, 세상에 떠다니는 다양한 이미지를 한데 모아 무한함을 품은 공간에 전시를 기획하는 일이 마치 천문학자의 마음과 닮은 것 같습니다. 여름밤의 끝자락을 떠나보내는 이 시점에 ‘별 여름 밤 여름 별’ 전시를 라켓과 함께 만나보세요.
편집/이미지 '보보' , 디자인 '임그노드' , 디렉팅 '해리'
# 관람 포인트 1
이 주소에 이런 곳이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에디터는 서울 시청역과 광화문역 사이의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부근의 길을 참 좋아합니다. 몇 걸음만 내디디면 번잡한 대도시가 내어주는 뒷길의 고즈넉하고 이국적인 정취 속에서 안식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길의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다 보면 중정 옆 낮은 건물 하나가 있는데, 바로 오늘 이야기할 갤러리 공간인 ‘아트조선스페이스’ (이하 ACS)랍니다. 지난 1월 새롭게 개관한 ACS 공간이 듣기로는 원래 꽤 사랑받던 막걸리집이었다는데, 이곳을 스쳐 갔을 일렁이는 누룩의 일화들을 떠올리며 전시 오프닝이 있던 여름밤에 방문해 보았습니다.
건물의 입구는 곧 공간의 얼굴이죠. 여느 시대의 이미지든 유연하게 담을 것만 같은 은색의 파사드가 관람객을 맞이합니다. 마치 유서 깊은 집안의, 꼿꼿하고 유려한 아가씨의 손끝에 걸려있는 모던한 은색 실반지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 아래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여섯 작가의 이름과 별자리처럼 떠 있는 별, 밤, 여름, 별 과 같은 단어들을 보니 나도 이곳의 일부가 되어 떠다니듯 관람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 관람 포인트 2
유현경이 생략한 베를린의 풍경
전시장에 들어서며 바로 펼쳐지는 파랑의 풍경은 저 멀리 유럽의 도시에서 유현경(b.1985-)이 보내온 두 장의 여름방학 엽서 같습니다. 한 장에는 많은 독일인이 여름휴가를 보내는 스위스 ‘티치노-Ticino' 부근 여름밤의 찌르르한 공기가 머금은 푸르름을, 또 다른 장에는 코끝이 시리고 건조한 베를린의 겨울 길 위를 걸어가며 느꼈을 얄팍한 대기의 일상적 질감을 흐르는 듯한 옅은 파란 물감으로 담아냈습니다.
맞은편 벽에 걸린 한 움큼의 들풀 같은 이미지 또한 유현경의 작업으로서, 하얀 눈이 녹는 계절에, 회색의 도시 어딘가를 산책하다 봄을 목격한 듯한 착각을 선사합니다. 사실 4월의 베를린은 여전히 시릴 정도로 춥기 때문에 봄이 왔다고 방심하면 곤란합니다만, 색색의 꽃들은 작은 희망을 선사하기에 충분한 귀여움과 간절함을 머금고 있습니다. 언뜻 사이 트웜블리 - Cy Twombly의 회화를 떠오르게 하는 낙서와 같은 이미지는 과감한 생략을 통해 화면을 비움으로 가득 채웁니다.
‘바람이 불면 자신을 밝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 같다’고 말하는, 본래 인물화 작업을 주로 하던 작가 유현경은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어느덧 주변 풍경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낯선 말들이 오가는 도시에서 말 없는 것들의 언어를 포착하는 능력을 기르게 되었을지도요. 일련의 그림들을 보니 변화와 유행의 흐름이 적어 오히려 새로운, 유서 깊은 유럽의 도시에 거주하며 매년 ‘일치된’ 채로 느낄 수 있던 도심 속 자연의 면면이 그리워집니다.
# 관람 포인트 3
전재은의 따스하고 시적인 장소
전재은(b. 1972-) 의 작품은 마치 내 앞에 서 있는 낯선 이가 입고 있는 옷의 기원을 떠올리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림을 구성하는 재료들이 섬유나 실타래와 같은 바느질을 위한 원초적인 도구이기 때문이죠. 하얗고 도톰한 실타래가 캔버스 한 가운데에 붙어있고, 기워내지 않은 천 조각이 그대로 떠다니는 등 직선적이고 동그란 인터페이스의 혼합이 주는 아늑함이 느껴집니다. 이런 공예 적인 느낌은 마치 만들기의 현장을 목격하도록 초대하는 새로운 회화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고, 디지털 시대의 스크린이 구현할 수 없는 ‘아상블라주’만의 도톰함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횡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게 합니다. 또한 그림 안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느낌의 붓 터치는 에디터가 예전에 암스테르담 시립 미술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에서 보고 웃음 지었던 ‘침대에 누워있는 페인터’를 그린 ‘필립 거스턴 Philip Guston’의 유치하고도 아늑한, 그래서 사적인 장면도 떠오릅니다.
섬유가 이야기와 형식을 부여받아 한 벌의 옷이 되는 것 처럼, 형상 없는 텅 빈 마음 같은 캔버스를 다정하게 어루만지는 작가의 따스한 시각 언어를 보니 더욱 감싸 안아지고 싶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여름밤, 찬 새벽 공기 아래 가볍게 내 몸을 덮은 채로 누워있고 싶은 부드러운 한 장의 조각 이불보가 있다면요.
# 관람 포인트 4
콰야의 여름밤 이야기
한 아이가 밤의 한복판에서 뛰놀고 있습니다. 알 수 없는 방향의 시선을 드리운 채 묘한 표정을 지은 아이는 침대 위에서 뒹굴뒹굴하기도, 두 손을 놓은 채로 자전거도 타고, 책장 위를 살금살금 두발로 걸어 다니는데 그 모습은 세상 누구보다 자유로워 보입니다. 시간을 잊은 채로 샛노랗고 밝게 스스로 빛나는 아이 주변에 덕지덕지 묻은 것은 푸른 어둠뿐이지만 그 침묵과 고독 속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새하얀 별들이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포용의 빛으로 뒤덮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내가 홀로 밤에 벌이는 사투를 잠자코 지켜보다 고요하게 들려오는 자장가를 듣는 느낌입니다.
밤의 사색과 침묵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의 콰야 QWAYA(b.1991-) 는 여름밤 이야기 중에서도 가을을 목전에 둔 여름의 끝자락에서 뒤척이고 있는 듯 합니다. 입추와 말복을 지나 8월의 마지막을 달려가는 시점에 내 머리 위의 별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깨고 싶지 않은 달콤한 꿈을 선사하는 밤의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상의 어떤 밤도 결국엔 침묵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매일의 밤을 지새우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 어둠 속에서 외로워도 괜찮고, 밤이 너무 길어 우울해도 괜찮습니다. 그 밤 또한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 관람 포인트 5
마이큐의 규칙적인 자유
데뷔 16년 차 뮤지션이기도 한 마이큐(b. 1981-)는 공연장 연출을 위해 본인만의 규칙을 기반으로 자유로운 회화 창작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표현할 또 다른 도구가 생긴 그에게 캔버스는 또 다른 악기와 같고, 나이프, 붓, 종이, 손 등을 이용해 작은 컬러를 배치하고 마지막에 바탕색을 칠하며 점과 선 같은 형태를 만들어가며 연주하듯 작업하고 있습니다. 작가 스스로 ‘덮다 Dub Da’ 라고 명명하는 규칙적인 페인팅 방식은 우리가 과거나 상처를 덮고 싶기도 하다는 점에서 삶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의 페인팅의 시각적 특징은 어떤 음률을 띄는 화면 같기도 합니다. 마치 칸딘스키의 회화가 떠오르기도 하고, 마이큐가 정한 제목은 마치 노래 구절과 같아서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 관람 포인트 6
권하나의 처음 보는 꿈
권하나 (b.1990-)의 페인팅이 담은 몽글한 소재의 질감은 우리가 소위 떠올리는 구름 같은 꿈결과 ‘얼라인’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꿈의 풍경 안에서 우리를 빤히 응시하는 시선은 마치 눈떠보니 처음 보는 누군가의 꿈 한복판에서 받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 같아서 왠지 당혹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무언가를 실토해야 할 것만 같은 솔직함을 요구하는 묘한 눈빛이 담겨 있습니다. 작가는 이외에도 음식과 결합한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을 주로 제작하고 치유와 음미, 회상을 돕는 매개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 관람 포인트 7
성태진의 우주적 염원
성태진(b.1974-)은 ‘태권V’를 모티브로 판화 기법을 사용하여 양각으로 목판에 도상을 새기고 겹겹이 색을 칠합니다. 소시민이 꿈꾸는 멀리 있는 우주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 가까이 있는 현실의 청년들이 가진 희로애락에 대한 풍자를 한 번에 담고 있습니다. 마치 시조에 담긴 펑키 funky 한 버전의 산수화 같은 이국적인 모습은 겹겹이 쌓인 시나 시조, 대중 음악이나 팝송의 가사는 희망과 개인적인 염원을 함께 담아내었습니다.
30여점의 반짝이는 이미지를 둘러보고 나니 저는 아직도 여름밤에 머물고 싶은가봅니다. 틈만 나면 하늘의 변화를 관찰하고, 어둠이 찾아오는 시간을 체크하고, 만약 유럽에 있었다면 썸머타임이 끝나는 날이 오늘일까 싶어 시계를 더 자주 들여다볼 것만 같은, 변덕스러운 여름의 끝자락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 장소 : ART CHOSUN SPACE
⚫ 주소 : 서울특별시 세종대로 21길 30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화-토 10am-6pm /일, 월, 공휴일 휴무
⚫ 기간 : 2022.09.03 까지
⚪ 문의 : 02-736-7833
☕ 전시 보고 뭐하지? �
여름의 무수한 제철 재료들로 요리한 전 세계의 타파스와 타코를 맛볼 수 있는 손바닥만 한 작은 와인바 ‘팔마 Palma’입니다. 무수한 밤하늘의 별을 닮은 초당 옥수수를 곁들인 오징어 요리와 새우 숯불구이, 무화과 케사디아 그리고 시골 할머니 집에서 먹을법한 군고구마까지 다양한 와인과 함께 서촌에서 이국적이고 아득한 맛을 입속에서 ‘얼라인’ 해보세요.
⚫ 장소 : 팔마
⚫ 위치 :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길 39 1층
⚫ 영업 시간 : 화-일 17:00 - 23:00 / 월요일 휴무
⚪ 문의 : 010-7678-0170
⚪ 예약 - DM : https://www.instagram.com/palma_seochon
데일리 메뉴 다양함. 주류 주문 필수.
만드는 사람들 - 라켓팀
보보(편집), 임그노드(디자인), 해리(디렉팅)
라켓 소개 - https://www.lark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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