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직장인이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호하는 직업군의 순위에서 평범한 직장인은 어디에도 자리하지 못한다. 정시에 출근해서 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은 아무 영감이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그저 그런 삶의 방식을 대변하는 것으로 비친다.
대다수 현대인의 직업은 '직장인'이다. 대중소기업 중 한 곳에 몸담고 근무하면(직위 나 직급, 기업의 규모를 차치하고) 직장인으로 지칭한다. 우리의 이웃이거나 거리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인의 복장과 태도를 갖추고 있다.
이들은 거의 비슷한 시간에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 사정에 맞는 교통편을 이용해 직장에 당도하고 할당 업무를 확인 처리해서 성과를 달성하거나 때로는 저해한다. 또한 조직 안에서 업무량과 치고받고 결국은 한 기업에 고용된 직원들일뿐인데도 상하 체계로 인한 대인관계로 애로(路)를 겪는다.
직장 내 불거지는 여러 불편한 문제들은 신문 사회면을 심심치 않게 장식하고 그와 비슷한 환경에 시달리는 여러 직장인들의 공분을 산다. 이는 직장문화는 어느 직장이든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평범하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직장인을 대신할 몇몇 직업들이 각광과 존경을 받는다. 오랫동안 선망의 대상인 전문직부터 현재는 운동선수, 엔터테이너 및 관련 직종 종사, 크리에이티브를 비롯한 문화예술인으로까지 꽤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면 세상엔 무수히 많은 직업이 존재하고 굳이 직장인이 아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차고 넘친 듯 보인다. 마치 재능이나 특기가 모자라거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직장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직장인인 당신은 왜 하고많은 직업 중에 직장인을 택했는지 잘 알 것이다. 여러 이유와 요건이 현재 직업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재능, 환경, 금전 등의 여건에 맞추었거나 자의로 얻었을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지 직장인이 된 이상 출퇴근은 규칙이고 일과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퇴근 후에나 사적인 약속과 활동 계획을 잡을 수 있고 이마저도 야근이나 회식으로 방해받기 일쑤다. 그래서 직장인은 퇴근 후 삶에 대해 기업과 사회에 진지하게 요구하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자유자재로 시간 안배가 어려운 직장인의 애환이 매스컴을 통해 쏟아지면서 일각에서는 직장인을 조롱하고 노동의 노예로 폄하하기 시작했다. 출퇴근길 만원 버스나 지하 철에 몸을 실은 모습을 비하하거나 재벌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불려주는 일개미로 조롱하며 자유와 인격을 저당 잡혔다고 손가락질한다.
"일정 부분에선 사실이다. 노동은 권력자의 요구로 탄생했기에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적합하지 않다. 노동의 주체인 현재 직장인은 오로지 권력의 압제로만 생산에 가담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동 자체가 목적인 직장인은 거의 없다. 직장을 다니는 이유는 소득이 필요해서고 그 소득으로 다른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다. 취미를 좇거나 멀지 않은 미래를 대비할 목적도 있다.
직장인은 비록 직장에 몸이 메여 자율을 잃은 것처럼 보여도 개인의 흥미와 관심을 놓치지 않으려 애쓴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하다. 규칙을 갖고 사는 삶은 절대 녹슬지 않는다. 싫든 좋든 반복하는 행동은 생각과 의지에도 그대로 반영되기 마련이라 자신을 가꾸고 계발하는 데서도 그 역량을 어김없이 발휘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유의지로 일과를 꾸린다는 이들의 내면을 들춰보면 혼돈과 혼란, 불안이 가득한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규칙이 갑갑하고 개인의 장점을 희석시킨다고 주장한다. 그것도 아주 매력적으로 느끼게끔. 그래서 직장인인 당신은 저들의 말에 스스로를 비하하며 울적해진 적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몇몇 부류의 비하에 수많은 직장인의 가치가 보잘것없는 넝마 취급을 당하기도 하지만 이는 무시하고 볼 일이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인 것 같은 직장인의 내면은 꿈과 희망, 펼쳐진 계획으로 바쁘지만 자유로운 몸을 가져 이상과 모험을 즐길 것 같은 직업인의 내부는 오히려 상실감으로 차 있기도 하다. 상실감은 시기심으로 번지고 이런 시기가 여러 직장인의 품위를 깎아내린다. 그러니 부디 이런 망언에 스 스로를 좀먹게 놔두지 않길 바란다.
감독 벤 스틸러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월터는 그 유명한 잡지사 라이프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직장인이다. 폐간을 앞두고 월터는 곧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지만 정말 마지막이 될 자신의 업무에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마지막 업무는 기존에 해왔던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달성하는 과정이 아주 다르다. 제목에서 처럼 그가 그동안 마음속으로 그리던 상상이 현실로 눈앞에 나타나 그를 이리저리 이끈다. 실현된 상상에 당혹감은 잠시, 곧 월터는 꿈같은 현실에 몸과 생각을 맡기고 물 흐르듯 유연하게 대처하고 즐거움까지 만끽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자신도 월터처럼 상상이 현실이 된다는 보장이 있다면 무기력하게 반복되는 일상은 얼마든 참아낼 것이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상상이 상상에만 그칠 것이 뻔해 상상하길 멈춘 것인가?
한때는 공상과학이 버젓이 현실이 된 지금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상상은 막연한 어딘가 숨어 있는 보물이 결코 아니다. 월터의 상상은 세상을 바꾼다는 거창한 계획으로 시작된 것이 아님을 주시하자. 그의 상상과 꿈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업무와 일상의 연장선에 있었다. 현실과 맞닿은 그의 상상은 매일 연습처럼 이뤄진 것이다.
연습을 실전처럼 대하라는 말이 있다. 상상 또한 이러한 연습으로 굳어져야만 막상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뒤로 물러서지 않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의외로 실현된 상상 앞에서 겁을 먹고 주춤거리다 놓치는 경우는 허다하다. 직장인은 상상을 연습하기에 아주 든든한 기반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지루할 틈에 상상 시간을 갖는 연습이 그 출발점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