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로서 요리한 지가 12년이 됐다. 그저 생계를 위해 꾸역꾸역 하던 일이 좀 재밌어진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딸아이 때문이었다.
나를 요리의 길로 가게 한,그 밥 안 먹는 아이말이다.
대안학교를 다니고 있던 딸이 몇 달 전부터 채식에 대해 흘리듯얘기하길래
"응 좋지... 하지만 그런 건 자기 먹거리를 자기가 해결할 수 있을 때 하는 거야"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는데이런 회심의 미소도 얼마가지 못했다.겨울방학이되자기숙사에서 집으로 오던날 딸은채식을 선언했다.
"난 이제 고기는 안 먹어. 우유, 달걀, 해산물까지 먹을 거야.... 엄마는 고기를 먹어도 돼.... 설득하지 않을게. 같이 하자고도않을게. 나 먹을 걸 따로 해주지 않아도 돼... 하지만 엄마가 고기로만 밥상을 차리면.... 난 밥과 김치만 먹어야 할 거야."
할 말이 없었다. 딸이 나를 설득하지 않는다고 하니 나도 딸을 설득하면 안 되었다.
그보다는입은 짧아도고기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인지라얼마나 가겠나싶어 일단 수긍했다.
나는 가치관을 떠나 요리하는 사람이라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아니 그렇게 말을했다.실은그럴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두식구의 밥상을 두 가지 버전으로 차리는 건 힘들게 뻔했다, 가뜩이나 비쩍 마른 딸에게 밥과 김치만 먹일 수도 없었다.결국 한 밥상을 차리기로 마음먹었고, 난 집에서채식을 당하게 되었다.
처음엔 두부구이에 양념장, 콩나물국, 고등어조림,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등 먹던 밥상에서 고기반찬을 빼고 상을 차렸다. 하지만 2주일이 지나자 밑천이떨어져 계속 같은 반찬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목살을 넉넉히 넣고 끓인 김치찌개도 안되고, 푹 삶은 사태고기를 찢어 무와 함께 끓인 쇠고기뭇국도, 특별한 날이면 먹던 안심스테이크도, 가장 만만한 닭백숙도 안되었다.
'도대체 뭘로 밥상을 차리라는 거야. 매일 콩나물국에나물만 종류별로 할 수 도 없고...'
밥을 먹는 딸을 아무리 봐도 흔들림은 보이지 않았다.
고기가 없이는 요리를 할 수도 없었다. 채소는 고기를 빛내주는 조연이고, 고기맛을 풍부하게 해주는 양념에 불과했다. 매 끼니 밥상에 최소 하나씩은 고기반찬이 올라갔다. 장을 볼 때도 고기를 제일 먼저 담았다. 그제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고기를 많이 먹고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유튜브, 블로그등 인터넷을 검색해 보기시작했다. 흔하지 않을 것만 같던 채식인과 채식음식에 대한 정보가 넘쳐났다.내가 알고 있던 나물이나 무침 밑반찬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요리였다. 양배추구이, 카레두부스테이크, 브로콜리구이, 당근파스타, 버섯샌드위치, 주식으로 손색없는 샐러드....하나씩 따라 해 보았다.
3개월쯤 되자 채소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좀 많아졌다. 채소의 새로운 발견에 고기의 허전함은 의외로 쉽게 달래졌다.
주식 샐러드와 당근관자파스타
그렇게 1년이 지나자 우리 집은많은 게 바뀌었다.고기만으로 배를 채우는 외식은 사라졌고,
밤에 치킨이나 족발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은이제 까먹어버렸다.고기반찬한두 가지에 국과 밑반찬을 곁들인 한식위주의 밥상은 점점 다채로워졌다.
삶은 콩이나 견과를 넣은 샐러드도 밥상에 올라갔고, 파스타,피자는 국과 찌개만큼 편한 음식이 되었다.
제육볶음 대신 치즈를 얹은 브로콜리와 술을 마시고,안심스테이크는 연어나 새송이버섯스테이크로 대체했다.
장 볼 때 고기를 담지 않으니 한 번에 3만 원을 넘는 일은 드물었다.
물론 나는 채식주의자 되진 않았다. 어린이집에서는 고기반찬을 먹었다. 하지만 집에서는일정단계의 채식으로 밥상과 술상을 차려냈다.
완벽한 채식이 아니라 제한된 채식을 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밖에서는 고기를 안 먹거나 아니면 고기는 밖에서만 먹는 식으로. 나는 채식보다 제한에 방점을 찍었다.
통밀또띠아로 만든 또띠아랩과 반반피자
생각해 보면 어린이집에서의 조리도 마찬가지였다.
매운 것. 짠 것, 너무 크거나 거친 것. 너무 뜨거운 것에 대한제한을 두고 요리했던것이다.
나는 요리실력이 확실히 좋아졌다.
이제 고기가 있던 없던, 어떤 재료로도 요리를 할 수 있다.고춧가루가 없이도, 염도 4 이하를 유지하면서도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왜일까?
더 다양한 재료가 있을 때보다, 더 많은 선택이 허용될 때보다 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제한"이라는 생각을 했다.
부족이나 결여가 아니라수용적 한계를 두는 환경말이다.
그건 제한이라는경계에서구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구체적이어야 머릿속에서 데이터가 움직인다.
상반된 데이터가 합쳐지고 새로운 데이터와 대립하면서최적의 데이터를 찾게 된다.
이무의식적인 계산과 몸의 움직임 켜켜이 합쳐질 때 우리는 진짜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