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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츠심 Mar 11. 2022

고생 끝에 예쁨이 온다

육체노동이라 쓰고 셀프 네일아트라고 읽는다


동남아 여행의 일정에서 빠질  없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마사지! 한국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하다 보니 마사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정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 네일아트 또한 빠질  없다. 동남아의 위대한 인건비는 마사지와 네일아트를 모두 흡족하게 받아도 10 원이 넘지 않는다. 10 원이 뭐야, 5 원이면 충분하다. 동남아 여행을 가보지 못한 나는 여기저기서 보고 주워들은 정보로만 경험했지, 실제로 해보진 않았다. 물론 해보려고 했지. 남들이 해보는  나도  해봐야지 라는 흔하디 흔한 포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생각과 다르게 하노이에서 보낸 1년은 코로나의 여파로 네일샵과 마사지샵이 문을 열지 못한 날이 허다했다. 고로 기회가 적었다는 말씀.



언제까지 상황이 좋아지길 기다릴 순 없었다. 네일아트를 받고 싶었다. 휑하게 있는 손톱을 볼 때마다 더 하고 싶었다. 코로나로 네일샵이 계속 문을 열지 않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성격이 급한 나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추측도 할 수 없이 어려운 베트남어로 가득한 쇼핑몰에서 유튜브로 봤던 눈에 익은 재료들을 느낌 적으로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손톱 손질 도구부터 시작해서 여러 색깔의 젤 네일과 손톱 위에 붙일 파츠까지 담고 나니 한참을 내려야 결제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많이도 담았다. 다행히도 위대한 동남아의 물가로 인해 부담스럽지 않게 책정된 가격이 나를 반겼다. 네일샵 2번 정도 갈 가격으로 재료를 구매한다? 결제를 할 수밖에 없는 아주 논리적인 금액은 빠르게 통장을 빠져나갔다.


재료를 기다리는 동안 유튜브로 네일아트 고수 언니들을 만났다. 손톱은 어떻게 다듬고, 어떻게 발라야 하는지. 젤은 몇 분을 구워야 하는지, 어떤 디자인이 나와 잘 어울리는지 내내 배웠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이렇게 열심히 했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이 시점에서 들다니. 역시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는 이유가 다 있다.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아니. 문득문득 이런 후회를 하는 순간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다. 아쉽게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 삶은 이미 글렀다. 후회를 해버렸으니까. 괜찮다. 뭐 다들 이렇게 사는 거 아니겠어?


3일 정도 지나 재료는 도착했고 지체할 틈 없이 바로 실전에 들어갔다. 지난날 한국 네일샵에서 받았던 기억까지 동원하여 손톱을 다듬기 시작했다. 아, 근데 이거 왜 이러지?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유튜브 언니들은 손쉽게 쓱쓱 잘만 하던데 나는 손가락을 제대로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태어나 처음으로 양손잡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왼손은 그나마 수월하게 진행되었는데 오른손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손톱을 다듬는 건지 상처를 내는 건지. 손가락이 저릿하고 뻐근했다. 손가락 근육통이란 미대 입시를 준비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집에서 조그마한 손톱을 다듬으면서도 느낄 수 있는 흔하게 가까운 통증이었다니. 욱신하게 찔러대는 통증에도 끝낼 수 없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것 아닌가! 손톱에 뭐라도 칠하고 끝내야겠다 싶었다. 대충 다듬고 대충 바를까 생각했지만 그건 또 허용할 수 없는 피곤한 성격을 지녔다. 이왕 하는 거 최선을 다해 제대로 해야지! 결론은 사서 고생했다는 말이다.


첫 도전에 파츠까지 붙이는 것은 무리였다. 영롱하게 빛나는 파츠를 한창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너무 예뻤다. 하지만 이미 작업이 시작된 지 4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무언가를 더 할 기운이 없었다. 손과 손목은 욱신거렸고 허리는 뻐근했으며 목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기 힘들었다. 어깨는 양 쪽에 루이가 한 마리씩 얹어져 있는 것처럼 무거웠다. 제 아무리 찬란하게 반짝이며 빛나는 파츠라 할지라도 나를 설득할 수 없었다. 눈앞에 아른거렸지만 끝내야 했다.



첫 네일은 그냥 그랬다. 마음에 들지도 안 들지도 않는 그저 그런 느낌. 어찌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나? 하다 보면 잘할 수 있겠지? 나날이 실력이 늘긴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나는 2주에 한번 셀프 네일아트를 했다. 한 달에 한 번만 해도 손톱이 남아나질 않는데 지나친 열정과 욕심은 손톱을 아작내고서야 잠시 멈출 수 있었다. 손톱이 망가졌음에도 하면 할수록 눈에 보이게 실력이 늘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손톱의 건강 따위 상관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나란 사람 하하. 실력은 늘고 시간은 줄었다. 처음엔 4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요즘엔 2시간이면 충분하다. 역시 손에 익숙해지고 스킬이 생기니 점점 나아지는구나, 역시 시간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처음엔 동남아에 살게 되었으니 저렴한 가격으로 네일아트를 받고 싶어 관심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 큰 메리트였지. 다만 내 뜻대로 되지 않아서 문제였고. 코로나가 날 방해했다. 그가 네일샵과 내 사이를 훼방 놓은 탓에 셀프 네일아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쯤 되니 그 방해가 잘된 일인 것 같기도?


단순히 손톱을 예쁘게 가꾸는  좋아서 시작했지만 하는 내내 잡생각이 많이 들지 않아 좋았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집중해서 손톱을 다듬고 칠하다 보면 시간도 금방 가고 복잡했던 머릿속이 말끔해졌다. 다만 말끔한 생각 정리 뒤엔 곡소리 나는 육체가 따라왔다. 네일아트를 하고 몸이 쑤시지 않은 날이 없었다. 육체의 고통을 줄여보고자 네일아트샵에 손을 맡겨보기도 했지만 고통만 사라질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동안 셀프 네일아트를 하면서 손톱을 예쁘게 가꾸는 것보다  좋았던  생각정리였던 것이지. 암요 암요. 역시 육체노동이 정답인가? 결국 나는  몸의 곡소리를 감내하기로 했고 여전히 손톱을 가꾼다는 핑계로 머릿속을 정리하곤 한다. 손가락이나 팔이 부러지지 않는 이상 네일아트는 계속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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