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순간, 내 마음이 반응했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 하는 어느 날.
폭풍이 오기 전 고요함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잊고 있었을 때.
내 주먹은 아무도 보지 않는 반투명 유리창을 치며 혼자 아파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화를 내는 건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라고.
그런데, 어른이 되니 더 자주 화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꼭 싸우거나, 모욕적인 말을 들은 것도 아닌데.
그냥 마음 한 켠이 꾹 눌린 느낌.
무시당한 것 같고, 존중받지 못한 것 같은 순간들이 켜켜이 쌓인다.
"그 정도는 너가 이해해야지."
"네가 좀 더 참으면 좋잖아."
"괜히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마."
우리는 가끔 감정에 대해 쉽게 이야기한다.
누구도 화를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보이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 순간에도 나는 참으려 했다.
한 숨, 그리고 두 숨에 인내를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고, 맥락을 헤아리고, 괜찮은 사람처럼 굴고 싶은 마음.
하지만 다른 한 켠의 마음은 나보다 빨랐다.
어느새 깊은 속에서부터 올라온 무언가가 내 얼굴을 굳게 만들고,
시선이 멀어지고, 입을 다물게 했다.
나는 분명히 화가 나 있었다.
누가 뭐라 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어떻게 말해졌는지보다도
'그건 아니지' 싶은 순간이 있었다.
내가 정해두었던 조용한 선.
넘어오지 않기를 바랐던, 마음의 경계.
그 경계 너머로 무심히 발을 들여놓는 순간들.
화를 부른 건 다름 아닌 그 침범의 느낌이었다.
허락하지 않았는데 마음을 들여다보려 하거나
상처를 가볍게 여기는 눈빛,
혼자 정해진 약속,
묵살된 말과 감정,
돌아오지 않는 배려.
그럴 때 나는 화가 났다.
하지만 자주 말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그냥 넘기자’
‘별일 아닌 걸로 예민하게 굴고 싶지 않아’
그러다 결국 마음이 말해버린다.
표정으로, 어조로, 거리감으로.
화는 그 자체로 폭력이 아니었다.
화를 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 상황을 더 이상 허용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내 마음을, 나조차 무시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그걸 깨닫는 데 오래 걸렸다.
나는 참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참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었다는 걸.
그리고 그날,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서 들려오는 말에 귀 기울였다.
‘그건 선을 넘은 거야.’
아무도 대신 말해주지 않기에
이제는 내가 말해야 했다.
화를 내는 나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선을 지키는 일은 나를 지키는 일이니까.
그 화는, 마음이 다치기 전에
나에게 보내는 신호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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