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리터러시 : 열다섯 번째 이야기
“흩어진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엮일 때, 그 속에서 진짜 울림이 피어나지 않을까.”
워킹맘으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다 보니,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늘 늦은 저녁 잠들기 전뿐이었다.
아침에는 서두르느라 대화가 짧았고, 낮에는 회사일에 묻혀 아이들을 떠올릴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하루의 피곤이 쌓인 몸으로도 책을 펼쳐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자 위로였다. 아이들의 눈빛 속에서 내가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나만의 동화를 쓰고 싶다는 바람은 차곡차곡 마음속에 쌓였다.
2022년, 둘째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나는 육아휴직을 내고 잠시 쉼의 시간을 가졌다. 아이와 함께 하루를 보내며 잊고 지냈던 ‘동화 쓰기’의 꿈을 드디어 꺼내 보았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첫 동화를 올렸을 때의 떨림을 지금도 기억한다. 누군가 하트를 눌러줄 때마다 아주 작은 신호였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고 공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렘과 희망이 피어났다.
2년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웃고, 때로는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이야기를 써 내려가면서 처음부터 사회 속 작은 문제들과 아이들의 말을 원천으로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층간소음, 환경 문제, 가족의 갈등 같은 일상적인 주제를 동화 속에 담았다. 아이에게는 이해하기 쉽게, 어른에게는 성찰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동화가 아이와 부모를 연결하는 대화의 다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마치 큰길에서 벗어나 골목길을 홀로 걷는 듯 외로움을 느끼곤 했다. 브런치에는 에세이 작가들이 대다수고, 동화를 쓰는 사람은 드물었다.
시간이 날 때만 브런치에 들어가다 보니 다른 글을 깊게 읽고 공감을 하는 시간과 여유가 부족했다. 그래서 내 글은 정체된 듯했다.
결국 중간에 지쳐 회사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1년 가까이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태주 시인의 딸이자 서울대 나민애 교수의 강연을 들었다.
“글쓰기는 삶의 기록이자 추억이다”라는 문장이 가슴 깊이 박혔다. 다시 펜을 잡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그 후 내 글은 변하기 시작했다. 중편 중심의 동화에서 벗어나 짧지만 여운이 긴 ‘1분 동화’, ‘30초 동화’로 옮겨갔다. 요즘 아이들이 숏츠나 릴스처럼 짧은 콘텐츠에 익숙한 것처럼, 짧은 동화 속에서도 감성과 기억은 오래 남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글을 읽은 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대화를 나누며 마무리하는 형식의 동화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금도 외롭다. 브런치에서 동화작가는 여전히 소수이고, 출판 프로젝트에서도 소설 부문에 통합되곤 한다. 브런치에는 수많은 좋은 글들이 넘치지만, 내 글은 종종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조회수를 기록한다. 마음을 다해 쓴 글이 빛을 보지 못할 때, 펜을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믿는다. 언제가 브런치에 남긴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동화로 자리 잡는 날이 올 것이라고... 물론 그 길은 멀고도 험하다.
출판 시장은 여전히 어렵고, 이름 없는 작가가 책을 내는 일은 더욱 힘겹다. 출간을 하게 되면 비용과 책임의 몫은 작가와 출판사 모두가 함께 감당해야 할 무거운 숙제이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의 손에 내 책이 들려, 아이와 함께 소리 내어 읽히는 순간을 상상하면 글을 쓰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작은 제안을 하고 싶다. 브런치가 <좋은 생각>처럼 주옥같은 글을 모아 매월 온라인으로 발행하거나, 오프라인 매거진으로 엮어내는 것이다.
브런치에는 각자의 삶과 시선을 담은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들을 정기적으로 엮어내면, 글이 외로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의 감동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동화가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등불이 되고 울림을 줄 수 있다면, 그 길은 충분히 가치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펜을 놓지 않는다.
외로운 길이지만, 언젠가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빛과 소리로 살아나기를 믿는다. 그리고 브런치가 그 길 위의 작은 글들을 모아 더 따뜻한 무대를 만들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