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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재 Oct 08. 2021

7. 카피캣! 너만 믿는다.

이 합사는 도박이었어요.

약 먹이고, 소독하고, 밥 먹이고, 작은 토끼장을 청소하고... 거실 아이들까지 오며 가며 수시로 케어하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2주간의 격리가 종료되었다. 정말 확실히 하려면 한 달은 두고 보아야 하지만 내 체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아이의 건강상태도 좋아 보여 조금 도박을 걸어본 것도 있다. 더 이상 독박 육아는 못하겠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고 행삼이에게 헬프를 요청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합사를 하는 방법과 그 기간은 신중해야 한다. 성묘의 합사는 보통 한 달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는데, 서로의 물건을 교환하여 냄새에 친숙해지면 격리된 상태에서 얼굴을 확인하고, 각자 지냈던 공간을 탐색하게 해 주고, 그리고 집사의 감독 하에 서서히 만남 시간을 늘려주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이건 성묘 고양이의 이야기고. 지금 내가 데리고 있는 생명체는 '아기 덜 고양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맞겠다. 나름 고양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던 나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으니까. 무늬만 조금 달랐다면 삵이나 쥐인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가끔 보여주는 순진한 얼굴만이 고양이임을 알게 하였다.

수의사 선생님의 조언과 이런저런 상황판단 하, 나는 도박을 시도했다. 먼저 거실과 작은방이 이어지는 주방을 중문을 개방해서 거실 아이들이 새로운 장소를 탐색할 수 있도록 했다. 왜, 이사를 가면 영역 변경 때문에 얼레벌레 합사가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걸 좀 노렸다. 그리고 동시에 작은 방을 열었다. 임광 이를 토끼장 밖으로 꺼내고 옆에서 무심하게 토끼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론 겁쟁이 임광이는 꺼내자마자 저 멀리 구석 어딘가로 순식간에 숨었다.


그러고 있으니 주방 탐색을 다 마친 꼬맹이가 (꼬맹이의 맹은 사실 용맹이었던가?!) 작은방에 입성했다. 임광이의 냄새를 꼼꼼하게 탐색하고는 결국 숨어있는 임광이를 찾아내었다. 임광이와 꼬맹이가 마주친 순간! 광이의 첫인사는 당연히 하나였다. '하악!' 얘는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이 한마디밖에 할 줄 몰랐다니까?


꼬맹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열심히 냄새를 맡았고, 광이는 좋은 건지 싫은 건지 하악질을 반복하면서 맹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할 뿐이었다. 맹이는 광이가 겁먹었다고 생각했는지 배를 보여주거나 조용히 엎드리고 하품을 하는 등 열심히 고양이로서의 소통을 시도해 주었다. 하지만 그건 나도 했던 바디랭귀지였기 때문에 먹힐 리가 없었다.


그렇게 작은 방의 정리를 마치고 광이를 냅다 거실에 던져 넣었다. 절대 합사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처음 합사가 잘못되면 평생을 원수지간으로 피를 보며 살아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행삼이가 아기를 잃은 어미 고양이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꼬맹이와의 나이차가 3주 정도로 크지 않았으며, 셋째는 임광이가 아직 6주 차로 아기 고양이였다. 수의사 선생님 또한 임광이가 아기이기 때문에 행삼이가 자식으로 생각하고 잘 교육시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아기-성묘 고양이 합사를 대뜸 이렇게 해서도 안된다. 합사 과정은 아이의 성격에 따라서도 달라지므로 웬만하면 정석을 밟으면 좋겠다. 행삼이는 자상하고 꼬맹이는 바보같이 순한 고양이었다.


그렇게 밥그릇과 화장실과 기타 등등 자신의 작은 토끼장에서 광활한 거실에 대뜸 던져진 임광이는 이불 한가운데에서 덜덜 떨었다. 행삼이와 꼬맹이가 관심을 가지자 역시나 멋진 하악질! 소파에 앉아서 관람하던 나는 팝콘을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과연 카피캣이라는 단어를 직접 증명해줄 것인지?


*카피캣: 새끼 고양이가 어미 고양이가 먹이를 사냥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뒤 사냥 기술을 그대로 흉내 내는 방식으로 사냥 기술을 터득하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는 흉내내기라는 뜻으로 통일되어 여러 분야에서 전문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맹이의 놀자 시그널을 관찰하는 광이, 저 학구열에 넘치는 눈빛을 보라!

처음 물꼬를 튼 것은 꼬맹이었다. 임광이의 하악질이 정말 싫어서 하는 욕설이 아니라 그냥 욕밖에 할 줄 모르는 아이라는 것을 먼저 깨달았고, 하악질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같이 놀자는 시그널을 보냈다. 장난감을 물어와 옆에서 혼자 놀거나 천천히 움직이며 밥과 물을 먹고 나서는 화장실에서 배변을 보는것을 알려주었다. 임광이를 중심으로 시범을 보여주는 듯했다. 광이는 가만히 앉아서 그 모든 것을 관찰하였고.

남들이 이 밥을 먹으니 본인도 이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듯.

그날 저녁, 아작아작 소리가 들려 문득 쳐다보니 광이가 사료를 씹어먹고 있었다. 물론 키튼 사료가 아닌 어덜트 사료였지만... (이후로도 죽어도 키튼 사료를 먹지 않아 결국 그 사료는 중고로 판매되었다.) 그리고는 꼬맹이에게 다가가더니 아까 맹이가 보여준 같이 놀자는 시그널을 따라 했다. 끝까지 하악질이 동반되었다는 것이 조금 우스웠다.

맹이가 보여준 '같이 놀자' 시그널을 그대로 따라한다. (feat. 하악)

결국 어떻게 되었냐고? 3일 후 맹이와 광이는 행삼이의 젖을 물고 고로롱거리며 낮잠을 자는 사이가 되었다. 물론 그 3일 동안 하악질을 하면 행삼이는 솜방망이질을 하거나 앞에서 대놓고 맹이만 예뻐해 주는 등 나름 성묘로서 해줄수 있는 추가적인 교육 과정을 거쳤다.

'하악질을 안하면 나도 예쁨받을 수 있을까?'
아직도 사이좋은 남매 /  아직도 엄마젖을 찾는 냥린이들

역시 육아 경력직은 다르긴 달랐다. 일주일 후, 임광이는 완전한 카피캣이 되어 맹이와 삼이의 스트릿 예절을 흡수했으며 밥도 물도 잘 먹고 배변도 잘 가리는 한 마리의 멋진 고양이가 되었다. 아, 물론 합사 이후로 하악질은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었으며 대신에 '야옹'이라는 단어가 추가되었다.


고양이 완성! 행삼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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