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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재 Oct 16. 2021

15. 아쉬운데 고양이 사랑방 어때요?

이웃이 생겼어요.

나는 중간에 본가에 들어가 있을 때도 있었지만, 20살 때부터 혼자 독립생활을 했다. 부모님도 그것은 나의 자유의지라며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고. 원래도 경제적인 면이나 성격적인 부분에서는 독립적 성향이었기 때문에 사막에 가져다 놓아도 잘 살아갈 사람이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독립이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부모님과 떨어지면서 많은 고비가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모님을 사랑하겠지만 나는 너무나 사랑하는 바람에 매일 밤 부모님이 건강하시길 울면서 기도했고, 아프시지는 않을까 식사는 하셨을까 늘 불안증세에 시달렸으며, 부모님이 아프시기라도 하면 거의 졸도할 기세였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는 미래는 내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정신과 진료를 받기 시작했고.

새나 강아지를 키울까? 카페에 다니며 고민했던 시절, 현재는 당시의 마인드로 아무도 입양하지 않았음을 감사한다.

반면에 타인에게는 심각할 정도로 무관심했다. 나는 이것을 나눌 필요를 느꼈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애인을 사귀어봐도 도통 나아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중 가장 괜찮은 사람을 '가족'으로 삼으려는 시도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면 이 비정상적으로 쏠린 애착이 나누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결국 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성장하고 건강해지면 애착 대상의 유무와 상관없이 미래는 보이는 것이었지만.


나는 현재도 통원 중에 있기는 하다. 정신과 치료라는 것이 상태가 회복되면 즉시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상당히 낮아져 버린 것이어서, 약으로 상태를 조절해가며 스트레스 민감도를 지켜보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괜찮아졌다고 약을 섣부르게 중단했다가 또 다른 스트레스가 온다면 그때는 완전히 무너져 더 긴 치료기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무튼 이제 막 정신적으로도 독립하기 시작할 즈음 '삼색이의 아이들 보신 분들 계세요?'라는 커뮤니티 게시글이 눈에 띄었다. 이전의 나라면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독립 중 7군데가 넘는 공간을 오고 갔지만 이웃들이나 집주인과 교류는 거의 하지 않았고, 이 아파트에 입주한 이후에도 정말 못됐지만 남들이 인사해도 씹고 다녔다.

한때는 식물에 의지했는데, 관리를 못해 다 죽였다.

입주자 커뮤니티에도 가입만 해서 정보만 찾아보았지 글이나 댓글을 거의 달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사회성이 없는 사람은 아니고 직장, 친구, 애인처럼 내가 필요한 사람한테는 가식을 잘 떨었는데 사실 당시의 마인드로는 부모님 외에는 전부 내 관심 밖의 일이었다.(이 글을 친구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치료의 마무리 단계라서 그랬을까? 그날따라 이상하게 삼색 고양이 게시글을 클릭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댓글에 내가 아는 삼색이 아이들의 마지막 목격 시간을 적었다. 대댓글이 몇 개 달리고, 새 게시물이 올라왔다. 삼색 고양이 중성화에 비용 모금을 한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채팅방을 만들어 소통하자고 링크가 있었는데, 그것 또한 무언가에 홀린 듯이 클릭했다.


그렇게 열댓 명의 이웃들과 대화하며 열흘 가량 열심히 아기 고양이들을 홀로 또는 함께 찾아다녔고, 많은 용품들을 나누어 받았으며, 삼맹광이 완전한 집고양이가 될 때까지 도움을 아끼지 않으셨고, 나처럼 강제 환묘케어 임시 경력직이 아닌, 진짜 경력직 집사들의 지식과 경험담도 공유해 주셨다.

다양한 영양제, 간식, 집사의 밥까지 챙겨주시는 따스함들.

왕자까지 무사히 입양되어 모든 일이 마무리되자 몇 분은 채팅방을 나가셨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은 아쉬운데 '고양이 사랑방'이라 이름 짓고 이참에 이웃끼리 교류하는 것이 어떤지 논의되었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나짜삼이라는 인연도 있긴 하고 말이다.


일이 마무리되자 한가해진 채팅방에는 각자의 고양이를 자랑하기도 하고, 개인사를 이야기하기도 하면서 내적 친분이 쌓였다. 나에게는 처음 겪어보는 유형의 사회적 조직이었다. 연령도, 성별도, 취미도 다 다른 사람들인데 '삼색 고양이'라는 공통사만 가지고 이렇게 인연이 된 것이다. 고양이는 강아지처럼 같이 산책도 못하는 데다가 심지어 고양이를 키우지 않으시는 분들까지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필요한 물품이나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연휴 때는 방문 탁묘도 지원하는 등 이웃 간의 정도 오갔다.

4명인데 각자 4인분씩 싸오는 대범함. 다 먹었다.

행삼이의 중성화 비용과 입양된 아이들의 케어 비용은 입양자들이 각자 내었기 때문에, 애초에 모았던 기부금은 사용되지 못했다. 그래서 회식을 한번 해서 회비를 소진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재밌는 것은 각자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바람에 회비는 음료값으로만 조금 나갔다는 점이다. 나만 즐거웠는지 몰라도 그날은 정말 재미있었다. 대낮부터 저녁까지 온갖 이야기를 다 했다. 그리고 아직 회비가 남아있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한번 만나야 한다.


* 방역 지침과 인원을 준수하였습니다.


행삼이로 시작된 이 인연이 평생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사를 가기도 하고, 사정이 생긴다거나 서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보통의 인간관계처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시들해질 수도 있겠다.

길 생활을 추억하니?

하지만 나는 짧은 시간 겪었던 모든 사건과 기억들이 너무나 감명 깊고 신비로워 글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 사랑방이 해체되더라도 언제든 다시 되새겨볼 수 있도록, 그리고 어떤 한 고양이로부터 이렇게 귀한 인연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도 자랑하고 싶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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