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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재 Oct 09. 2021

8. 우리 병원에서는 못 해 드려요.

극한의 수술 조건?

행삼이는 집냥이가 되었지만 언제 또 발정이 올지 모르고 유방과 배가 점점 부풀고 있었기 때문에 임신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최대한 빨리 중성화(혹은 중절) 수술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래서 여러 병원에 문의를 했는데 결과는 동일했다. 첫 번째, 젖 뭉침이 있는 상태에서는 수술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임신 중기를 넘어서면 중절을 진행할 수가 없다.

임신일까? 지금 다시 봐도 긴가민가한 크기의 배 상태..

젖 뭉침은 현재 젖이 나오고 있지 않아 한 달 이내로 사라질 것이니 그때 중성화를 하는 것을 추천받았다. 하지만 현재 임신 초기라면 어떡하죠?라는 질문에 한 달 후에는 임신 중기이니 중절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답변. 현재 임신인지 알 수 있나요? 묻자 임신 초기에는 초음파, 엑스레이로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고양이의 임신 기간은 두 달 정도이다.


나는 큰 딜레마에 빠졌다. 임신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한 달을 기다려서 컨디션을 맞춘 후 안전하게 중성화를 진행할 것인지? 하지만 만약에 임신이라면? 그때 가서 중성화는 불가능하니 아이들을 또 낳아 기르고... 모두 키울 수 없으니 입양을 보내야 하는데 그 험난한 과정을 과연 행삼이도 나도 반복할 수 있을 것인가?


초기 임신이라면? 빠르게 병원에 가야 하는데 심한 젖 뭉침과 불어난 자궁크기로 인해 수술 난이도가 높아지고 자칫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고민은 딱 하루였다. 병원을 찾아서 수술을 진행하자. 아이의 배는 점점 불러오고 있고 한 달 내내 슈뢰딩거의 고양이 이론을 생각하며 행삼이의 배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는지 아닌지에 머리를 싸맬 바에는 직접 뛰어다니는 게 맞다는 결론이었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는 중성화 수술을 거절했다. 일단 삼이의 조건이 극한이었으며, 중절이 될 수 있는 수술 자체를 지양하는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와중, 솔방울님이 임상경험이 많은 한 대형 병원에서 한번 데려와 보라는 말을 듣고 예약을 잡아주셨다. 바로 그 주 금요일이었다. 수술이 이뤄질지 아닐지 모르겠지만 일단 애를 12시간 굶겼다. 맹이와 광이도 얼떨결에 굶게 되었다. 


솔방울님은 행삼이의 예약 날 반차까지 내서 차로 함께 병원에 가주셨다. 그날 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머릿속에 삼이의 수술 가능 여부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조금 희망적이었던 건 12시간 굶겼더니 배가 조금 들어갔다는 착각?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람?

병원에 도착 후, 원장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다. 피검사에서 백혈구 수치가 높으나 수유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아이 건강과는 상관이 없으며, 촉진 후 이 정도 젖 뭉침은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셨다. 또한 엑스레이 상에서 자궁 형태가 크게 변화하지 않았으니 임신 극초기 혹은 임신이 아닐 가능성에 높게 두셨다.


그렇게 삼이는 링거를 한 방 맞고 수술실에 들어갔으며, 나는 채워늬님이 챙겨주신 환묘복을 같이 안으로 들여보냈다. 얼마가 지났을까? 체감 상 20분도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분홍색 줄무늬의 환묘복을 입고 잔뜩 술 취한 아저씨 몰골을 한 행삼이가 등장했다.


*여아의 수술은 한 시간 남짓 걸리며, 링거 맞는 시간과 마취 회복시간을 포함해 3~5시간 정도 소요된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았지만 겨우 한 살이 된 3.5kg의 아가 고양이였음을..

수술은 최소절개로 아주 잘 끝났고, 링거를 마저 맞은 후 마취가 풀리면 퇴원해도 된다고 하셨다. 마취가 덜 깬 행삼이는 눈을 반쯤만 뜬 채 기우뚱기우뚱 고장 난 시계처럼 까딱까딱거렸다. 그 모습이 생소하고 두려워 무언가 울컥하는 게 있었다. 이런 느낌은 엄마 아빠의 수면 마취 후의 깨는 모습을 지켜볼 때도 종종 받고는 했던 그런 종류의 감각이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삼이는 2주 동안 지속되는 항생제를 맞았으며, 젖 뭉침으로 인한 염증의 가능성이 있어 추가적으로 1주일의 항생제를 알약으로 처방받았다. 이후 집에 어떻게 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삼이는 링거를 한통 다 맞고 마취로 조절이 안되었는지 소변 실수를 했고, 방울 언니가 세차 타월로 닦으라고 건네주었고... 집에 와 켄넬에서 삼이를 꺼내 준 후 바닥에 엎어져 엉엉 울었다.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중성화를 시켜서? 뭐 그런 이슈를 다 떠나서 엉엉 울었다. 그냥 아프게 해서 미안했다. 분명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는데... 앞날을 생각하고 자시고 일단 아프게 만들었다는 그 사실 자체에 약속을 못 지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그만 슬퍼하라냥~

행삼이는 그런 나를 가만히 보다가 다가와서 못내 조심스레 핥아주었다. '뭔지 잘 모르겠고 많이 아팠지만 네가 해주었으니 뭐든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만 울어.' 하는 느낌이었다. 


방울 언니가 건네주었던 세차 타월은 10배로 갚아드렸고, 행삼이는 건강에 문제가 없었으며, 2주 뒤 환묘복을 벗는 순간 삼이는 날아갈 듯했고 사람 주먹만 한 털공이 나와서 나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야.. 이건 세신비를 받아야 할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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