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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재 Oct 15. 2021

14. 고양이와 룸메이트 하기

각자의 삶을 살자고, 그런데...

나는 현재 독립을 한 상태이지만, 본가에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다. 그 아이가 본가에 들어온 사연은 길고 지루한 데다가, 그다지 좋은 글감이 아닐뿐더러 타인의 역사 중 일부이기도 해서 함부로 언급할 수는 없다. 더구나 그 아이는 환묘였기 때문에 나는 3년 정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아이를 애지중지 돌보았는데, 그 아이는 그렇게까지 해주는 내가 굉장히 좋았나 보다.


일단 아이의 시야에 내가 보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울었다.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목이 쉬어있을 정도였다.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고 심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인 개냥이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이 분리불안임을 알았다.


귀여운 고양이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싫거나 부담스럽지는 않았지만, 목이 쉬어서 쇳소리가 나는 아이를 마주할 때면 아이가 짧은 인생 나만 바라보지 말고 자신의 냥생을 살길 바란 것이 사실이다. (내가 독립한 후 현재는 새로운 애착 대상을 찾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를 들어 나는 삼맹광을 '룸메이트'라고 지칭해왔다. 나부터가 부모님께 너무 깊은 애착을 가져 오랫동안 고생했었고, 본가의 고양이가 나에게 보여준 분리불안은 나를 '애착 형성' 자체에 대한 공포감을 갖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깊은 잠을 자는 룸메이트3

누군가에게는 깊은 교감을 나누는 반려이자 가족일 수도 있는 고양이가 나에게는 자칫 서로에게 잘못된 애착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래서 룸메이트라는 말로써 거리를 두고 싶었다. 사실 이 또한 내가 극복해야 할 새로운 정신적 과제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튼, 룸메이트여도 약 20년(나의 희망사항)을 함께 지내야 할 룸메이트이기 때문에 너무 서먹하면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사람처럼 "앞으로 잘 지내보자"하면서 술 한잔 기울일 수도 없는 일이니 나는 나름의 바디랭귀지를 사용해 최선을 다해 잘 지내보자고 전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사실 집사들이라면 다들 하는 것이다. 눈이 맞으면 눈키스를 해주고, 무섭지 않도록 최대한 사족보행을 하고, 하품도 따라 하고, 배를 자주 보여주고, 앞에서 대놓고 낮잠을 잔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 순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자유롭게 침대를 어지르는 룸메이트들

나는 여기까지만 한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잘 지내보자"이고 이 이상은 내 룸메이트에게 달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냥이의 성질을 가진 아이는 먼저 냄새를 맡거나 쓰다듬어달라고 몸을 비비적거리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내가 어디서 무얼 하든 간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만의 냥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선을 긋는 내 방법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더 깊은 교류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하면 되고, 고양이던 사람이던 서로 가벼운 관계로 지내고 싶다면 나처럼 하면 되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의 성격에 따라 개냥이, 접대묘, 관상묘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고는 하는데 우리 애들은 그냥 '고양이'이고 '룸메이트'인 것뿐이다.(집에 손님이 오면 전부 다 도망간다.)

손님은 무섭지만 츄르는 먹겠어!

나의 잘 지내보자는 시그널이 나름 좋았는지 아이들은 발톱을 깎거나, 귀를 닦거나, 양치를 할 때도, 병원에 가서도 가만히 있는다. 나를 만질 때는 절대 손톱을 세우지 않고 기분이 너무 좋아 러브 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깨물지 않는다. 물론 배 위에도 올라오지 않고 같이 자지도 않는다. 골골송도 꾹꾹이도 뭔지 모르겠고 돌돌이는 존재하지도 않으며 옷에 털이 붙지 않아 건조기도 필요 없다.

왜, 섭섭해? 각자의 삶을 살자매?

최근 고양이 사랑방 콜라님이 고양이 털로 하얗게 된 검은 후드티를 자랑스럽게 입고 오셔서 고양이를 껴안고 왔다 하셨다. 대놓고 자랑하신 건 아니었지만 내 눈에는 자랑으로 보였다. 당시 나도 검정 티셔츠였지만 털이 한가닥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삼맹광들과 룸메이트 이상의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조금 두렵지만 여기서 더 성장해야 하는 건 내 몫일 것이다. 각자의 삶을 살면서, 저녁에는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관계쯤은 되어도 좋지 않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그래, 사실 내 본심은 삼맹광을 껴안고 자고싶고 온몸이 털투성이가 되어보고 싶다.

우리는 준비되어있다냥

두려워하는 건 나 자신이다. 삼맹광은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의 머뭇거림에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다.

누가 룸메 얼굴로 키링을 만들어? 변태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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