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위이잉— 찰칵.
프린터가 가늘고 선명한 소리를 내며 송장 한 장을 토해낸다.
따뜻한 종이가 롤러 사이를 빠져나와 출력 트레이에 내려앉는다.
작업실에는 핑크색 택배 박스와 포장지가 한가득 정리되어 있고, 벽 한쪽에 붙은 주문 목록에는 오늘 보내야 할 소품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얇은 노루지 봉투를 펼쳐 작은 고양이 인형을 감싸자, 사락— 부드러운 종이가 살갗에 스치는 소리가 난다.
반투명한 종이 사이로 둥근 실루엣이 아스라히 비친다.
한 겹, 두 겹 정성스레 접어 밀봉 스티커를 꾹 눌러 붙인다.
이번엔 OPP 봉투.
빠삭— 손끝으로 비닐을 펼치면, 반짝이는 표면이 빛을 받아 미세한 주름을 만든다.
메모지와 볼펜을 조심스럽게 넣고, 접착면을 떼어내어 단단히 밀착시키면 매끄럽고 깔끔한 포장이 완성된다.
각대 봉투는 조금 더 단단하다.
사각사각—
크라프트지가 손끝에서 힘 있게 접힌다.
인형과 문구 세트를 정리해 넣고, 입구를 단단히 밀봉한 뒤, 박스에 넣으면 끝.
최대한 로고를 가리지 않으려면 세밀한 힘조절이 필요하다.
송장을 떼어내어 박스 위에 조심스럽게 붙인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닿을 작은 환상들이 곱게 포장되어 쌓여간다.
“예쁜 쓰레기지 뭐.”
신축 아파트 단지와 연결된 짧은 다리를 건너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다리 끝에 발을 내딛는 순간, 빛바랜 간판들이 가득한 거리가 나타난다.
대흥 철물, 미성 커튼, 동진 페인트, 경성 이발관, 삼청고 서점 그리고 간판이 없는 이 가게.
코너에 있는 이 가게는 오각형인지 육각형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형태다.
각도마다 미묘하게 다르게 보였다.
간판도 없고 문도 없었다.
거친 시멘트로 덮여 있는 한쪽 벽면에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작은 아치형 창이 있을 뿐이었다.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이런 가게에서 사람을 뽑는다니.
보이스피싱이거나 아니면 착석만하고 터치는 없다는 바(bar)라던지 그도 아니면 설마 요즘 세상에 인신매매같은건 아니겠지.
수상해.
이러한 생각들을 하고 있던 찰나, 창에서 마른 잎을 스치는 듯한 바람 소리가 났다.
사라락—.
고개가 소리 나는 쪽으로 돌아갔다.
무언가가 창을 덮고 있는 암막 커튼 뒤로 잽싸게 사라졌고, 남은 건 희미하게 흔들리는 커튼뿐이었다. 그리고 황급히 골목길을 빠져나가는 여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입구 찾기가 좀 어렵죠?”
사장은 정성스럽게 포장된 쿠키가 담긴 바구니를 내 앞에 살며시 밀며 말했다.
나는 사람을 쳐다볼 자신은 없었기에 애꿎은 쿠키에 시선을 고정했다.
쿠키는 현실고증이 제대로 되어있었다.
초코칩으로 콕콕 찍힌 눈과, 입, 그리고 살짝 삐뚤어진 수염까지 고양이 얼굴 그 자체였다.
뭐 이거 어디부터 깨물어야 할지, 에라이. 커피나 마시자 하며 컵을 들어 올렸다.
고양이 귀가 달린 컵, 손잡이는 꼬리 모양으로 말려 있고, 군데군데 작은 발바닥 무늬가 앙증맞게 찍혀 있다.
과하다. 과해.
아무런 대비도 없이 방심한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과하게 귀여운 것들에게 포위당했다.
하필 고양이라니... 머릿속이 하얘지고,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일그러졌다.
“어디 안 좋아요? 눈이 빨갛네요.”
나는 고개를 더 푹 숙였다.
밤새 우느라 퉁퉁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목 아래로만 본 그녀의 전체적인 실루엣은 이온음료 광고의 여배우 같았다. 늘씬한 몸매에 긴 웨이브 머리. 촘촘하게 짜놓은 하늘색 스웨터가 그녀의 청순한 매력을 한층 더해주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볼 순 없었지만 언뜻 곁눈질로 본 그녀는 보는 사람까지 세상이 빙글빙글 돌만한 안경을 쓰고 있었다. 두꺼운 렌즈의 그림자 속에 눈동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려는 사람처럼.
다행이었다. 행여나 아이컨택이라도 한다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조금은 잠잠해졌다.
패션 감각이 없어보이는 그녀의 안경은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비극 자체인 내 몸뚱아리였다.
20kg나 찐 살을 가리려 입은 옷은 검은 츄리닝 바지와 2XL 사이즈에 후드집업.
두피에 비듬과 각질이 잔뜩 쌓이고 머리카락은 덤불처럼 엉킨 산발.
나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그녀의 깔끔한 용모와 보고 있자니, 표현해내기 복잡한 감정들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부러웠고, 상대적 박탈감이 느껴져 따끔했고, 이따위로 나 자신을 방치한 나에게 화가났다.
면접이고 뭐고 이대로 나가 집으로 가고 싶었다.
내가 은둔 생활을 시작한 건 3년 전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일상생활은 커녕 집 앞에 있는 편의점 조차 가고 싶지 않았다.
하루일과라곤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게 다였다. 최소배달금액을 맞추기 위해 두세 명이 먹어도 남을만한 양의 음식을 주문하는 건 익숙해졌고, 그걸 한번에 몰아먹는 것 또한 식은 죽 먹기가 되었다. 그렇게 먹다보면 복근 하나 없는 뱃살이 과도한 음식의 부피를 이기지 못하고 점점 허리를 꾸부정하게 만든다. 점점 조여오는 압박에 숨이 차 눕지 않곤 못 배긴다. 아직 음식이 위까지 가지도 못한 것 같은데 쇼파에 벌렁 눕는다. 아무 생각없이, 아무 표정없이 손가락만 계속 움직이는 게임을 하다 혈당 스파이크에 취한다. 콧구멍과 기관지에도 살이 쪄서 그런지 골지도 않던 코를 고는데 내 소리에 내가 놀라 잠에서 깬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정작 자야하는 밤엔 도파민 중독에 빠져 핸드폰을 보다 아침을 맞이한다.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불은 끄고 침대에 누워서 음량은 최대한 작게.
오늘까지만이야, 이제 정신 차려야지,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보자 생각했던 날도 있었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같은 행위를 반복했다. 내일, 내일은, 내일부터,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조금 모아둔 돈이 바닥난건 진작이었고, 엄마가 어릴 때부터 넣어준 우체국 보험 환급금 대출로 연명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한도초과에 이르렀다. 처음엔 30, 다음엔 50, 어느새 100 만 원 씩 우습게 꺼내썼다.
그런 돈으로 먹고 눕길 반복하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비참해서 원인이라도 찾아야겠다 싶었다. 증상이라도 알고 앓아야지.
처음 추측은 번아웃.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떻게든 이 거지같은 천민 신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며 살아었다. 조선시대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그런게 어딨냐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행이다. 당신이라도 그런 삶을 살지 않아서.
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그랬지?
외모도, 머리도, 능력도 물려준 것은 없으면서 자식은 개천에 용날줄 알았던 부모님의 기대때문이었나. 아니면 K장녀라는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어 이 쓰러져 가는 집안을 일으켜 세울 사람은 나뿐이라는 무지한 착각 때문이었나.
쫓아오는 압박감에 시달려도 앞만보며 열심히 살았다. 이 방법이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떨어지면 다시 처음부터 기어오르려 애를 썼다. 처음엔 왕족, 실패를 경험할때마다 귀족, 양반, 중인 순으로 목표지점이 떨어졌다. 나중엔 면천(免賤)이라도 하고 싶었다. 유명해지는 것이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실패해도 대기만성을 되새기며 다시 도전하고 부딪혔다.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 모든 것이 허튼짓임을 깨달았다. 아무리 넘으려고 해도 넘을 수 없는 것이 신분의 벽이었다. 충격적이었다. 너무 늦게 깨달은 내가 혐오스러웠다. 무얼 위해 그렇게 목숨을 걸었을까. 결국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헛수고로 누적된 피로탓에 탈진 상태에 이른거라고 그래서 아무것도 하기 싫고 기운이 없는거라고 자가진단을 내렸다.
얼마안가 생각이 바뀌었다.
“번아웃이 아니라 대인기피증인 것 같아.”
사람들이 싫었다. 무서웠다. 같은 옷을 입었음에도 그들의 차가움에 등골이 시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나는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었지만 내 얘기를 들어줄 , 정확히 말하자면 내 말을 이해해줄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날부터 사람들의 눈을 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원래 내가 제일 싫어하던 눈은 물고기와 고양이 눈이었는데 이젠 사람 눈도 못 본다.
정말 어쩔수없이 나가야하는 일이 생길땐 땅만 보고 걸었다. 행여나 어깨라도 부딪힐까 거대해진 몸을 할수 있는 만큼 찌그러트렸다. 물론 못나게 찐 살 때문이기도 했다. 대형 사이즈 마스크로도 가려지지 않는 이 크고 두툼한 얼굴을 누가 볼까봐.
또 어느날엔 내가 공황장애구나 싶었다.
공황장애 자가진단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모두 내 얘기 같았다.
댓글에서 그러더라.
요즘 정신과 가는 거 별거 아닌 일이라고.
명품 매장처럼 아침부터 오픈런 해야하는 미친 세상이라고.
그 말이 맞았다.
수십번을 망설이다 겨우 들어간 병원에선, 가장 빠른 진료가 두 달 뒤라는 얘기만 들은 채 발길을 돌려야했다.
나는 지금 아픈데... 눈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지 마음의 팔이 잘리고 다리가 잘려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데 두 달 뒤에 오란다.
둘 중에 하나겠지.
기다리다 낫거나, 기다리다 죽거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두 달을 기다렸다.
간호사는 아이패드를 건네주며 수 십가지 심리검사 문항에 체크를 하라고 했다.
작은방에 데려가 인형뽑기 기계에 달린 집게 손 같은 쇳덩어리를 팔과 다리에 채우고 몇 분동안 움직이도 말도 하지 말라고도 했다.
진료가 밀렸다며 그로부터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리게 했다.
나와 같은 환자들이 가득한 대기실에서 앉아있다 보면 생각이 더욱 복잡해졌다.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구나. 나만 아픈 건 아니야.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지. 숨 쉬기가 어려워.
그냥 집에 갈까. 너무 힘들어...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선을님, 1번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의사는 자신의 등 뒤로 보이는 창을 통해 보이는 옆 건물이 신경 쓰인다면 블라인드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10분 남짓한 진료에서 그녀가 내가 써준 신경은 오직 그 블라인드 하나였다.
약을 먹으면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하며 꾸역꾸역 약을 밀어넣었다. 이상했다.
약을 먹으면 먹을수록 불안감이 더 커지고 화가 났다. 별 일도 아닌 일에 가족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다시 두 달을 기다려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 이야기를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안 맞았죠? 그럴 줄 알았어요. 다른 약을 먹어보죠.”
이게 무슨 선무당이 사람잡는 소리인가.
“너네집에 대추나무 있지?”
“아니요. 없는데요?”
“으음. 그래? 있으면 큰일날 뻔 했어.”
뭐 약은 그럴 수 있다고 쳤다. 원래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면서 병을 찾아가는 게 의사가 할 일이니까. 그 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약 때문이 아니었다.
이런 마음이 들어 힘들어요. 이런 부분이 날 아프게 하는 것 같아요.
그녀는 벌거벗은듯한 수치심과 하릴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꾹 참으며 겨우 꺼낸 나의 모든 말을 비웃음과 함께 부정했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잘못 생각하신 거예요.”
텍스트만 보면 뭐가 문제인가 싶을 수 있다. 그날의 그녀의 표정과 억양을 기억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기에.
내 증상이 번아웃이던 공황장애던 이제는 원인을 찾으려 애쓰고 증상을 명명하려 애쓰는 것조차 신물이 난다.
알게 뭐야.
그게 뭐든간에 이 개미지옥을 벗어날 수가 없는데.
“출퇴근은 자유예요. 오고 싶지 않으면 오지 않아도 돼요. 일하고 싶을 날 출근해서 15분 단위로 하고 싶은 만큼 하고 가면 됩니다.”
사장의 목소리에 나는 간신히 개미지옥 같은 생각에서 빠져나올수 있었다.
“정말 15분만 일해도 되나요?”
“그럼요.”
15라는 숫자가 이렇게 마법 같았던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멀미가 날 듯 일렁거리던 내 안의 바다가 잠잠해졌다.
물론 이렇게 일해서는 천 만 원이 넘는 대출금을 갚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지금 내 상태는 천 만 원이라는 빚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갚을지, 빚은 둘째치고 이 나이에 모아둔 돈도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하는 문제를 생각하기엔 이미 너무 지쳐버린 상태이다.
이런 걱정들이 머리에서 문뜩문뜩 스쳐 지나가지만, 당장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일단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단 한 가지.
집, 정확히는 3평 남짓한 내 방, 더 정확히는 내 침대에서 나를 꺼내줄 무언가다.
그녀는 내 결정에 쐐기를 박는 말을 덧붙였다.
가게는 매장운영을 하지 않는다는 것, 온라인 스토어라 손님들을 대면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같이 일해보는 거 어떠세요? 집에가서 생각 좀 더 해보실래요?”
“아뇨, 할게요. 하고 싶어요.”
몇 번이나 확인한 뒤에야 면접을 시작했다.
사실 면접이랄 것도 없었다.
성별, 나이, 학력, 경력 그 어떤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채용 조건은 단 하나,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일본어론 히키코모리, 우리말로는 은둔형 외톨이만 뽑는다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회적 관계를 극도로 피하고 집이나 특정 공간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