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르 키링]
보드라운 털이 복슬복슬, 핑크 젤리 같은 발바닥이 달린 고양이 장갑을 손에 쥐었다. 손끝이 장갑 안으로 쑥 들어가면서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손을 감쌌다.
벨크로 테이프로 접착이 가능하게 만들어 놓은 문구 하나를 장갑에 붙여 커튼 밖으로 쑥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큭- 창문 너머에서 가벼운 웃음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나도 살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암막 커튼 뒤로 장갑을 숨기며 문구 메시지를 떼어놓고, 다시 장갑을 내밀어 포장해 둔 물건을 건넨다.
“감사합니다.”
작은 소리로 전하는 고맙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깊에 닿는다.
마지막으로 고양이 귀 모양의 증정용 스티커와 ‘행복한 하루 되세요, 냥이드림’ 문구를 붙인 장갑을 내민다. 떨어트리지 않고 스티커를 안전하게 가져갈때까지 잠시 기다리면, 곧이어 집게 손가락의 촉감이 장갑위를 스친다
임무를 마친 장갑을 거둬 안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덥석. 갑자기 내 손목을 잡아 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양이 장갑을 낀 내 손을 움켜잡은 손님은 커튼 뒤에서 조금씩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내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 손끝이 고양이 발바닥을 스쳐 지나가며,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이 손끝에 전해졌다. 고양이 발바닥을 잡은 손이 가만히 움켜쥐면서도, 그 속에서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나도 모르게 손끝을 부드럽게 흔들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따스함을 느끼고 충분히 위로 받고 있었으니까.
하루에 몇 번씩 이런 작은 순간이 단비처럼 찾아왔다.
어떤 손님은 하이파이브를 청하기도 했고, 어떤 손님은 손가락으로 젤리 같은 발바닥을 쿡쿡 누르고 주무르며 귀엽다 요란을 떨었다.
냥이드림.
가게는 온라인 전용이라, 대체로 손님은 화면 너머에서만 존재하지만, 급하게 물건이 필요하거나 집이 가까운 손님들을 위해 제공되는 픽업 서비스를 그렇게 불렀다.
가게 직원들은 모두 은둔 생활자들이기에, 출근을 안 하거나, 와도 금방 15분 단위로 집에 가버린다. 때문에 모든 업무를 돌아가면서 해야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바로 이 냥이드림이었다. 손님 얼굴을 대면할 필요 없이(특히 눈), 고양이 장갑을 끼고 아치형 창문을 통해 물건을 내주기만 하면 되니 말이다. 거기다 손님들과 간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고, 그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한 달 전만 해도 꿈도 못 꿀 일이었지만, 이제는 적어도 소소한 기쁨도 느낄만한 여유가 생겼다. 처음부터 짜잔!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건 당연히 아니었다. 출근을 안 한 적도 많고, 출근을 해도 15분을 못채우기 일쑤였다. 신기하게도 조금씩 적응이 되면서 점차 15분, 30분씩 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검색창에 은둔 생활에서 벗어나는 법을 입력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조언이 바로 가벼운 산책이다. 5분이라도 좋으니 밖에 나가라. 건강한 일반인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게 다야? 간단하네.
여기 있습니다. 나 말고도 꽤 있어요. 그게 간단하지 않은 사람들이요.
은둔 생활자에게는 5분이 아니라 1초라도 밖에 나가는 행위 자체가 고역이다. 온 몸이 부르르 떨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이불로 내 몸을 몇 겹이나 칭칭 감아 숨고 싶다.
하지만 가장 두려우면서도 아픈 한 발을 떼고 나면, 그 후엔 밖에서 머무를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다. 그렇게 쉬웠다면 장기간 은둔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을테니까.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다. 마치 누군가 불러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이 작은 변화가 몸의 활기를 조금 불어넣은 것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증상을 없앨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과의 관계는 여전히 엉켜 있었다. 말로 풀 수 없는, 답이 없는 갈등이 계속 쌓여갔다. 나는 여전히 고독을 느꼈고, 성공해야 한다는 중독 같은 강박은 계속되었다. 그 강박은 조금씩 둔감해졌지만, 그 빈도는 여전히 잦았다. 문득문득, 허무해진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살기 싫다’는 생각이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눈물이 나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을 흘린다고 다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눈물을 흘려도, 그 울음이 끝나면, 다시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공허함을 마주해야 했다.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웃어도 별로 기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웃음조차도 무거운 공기를 만들었다. 화가 나거나 기력이 빠져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기도 힘든 날들이 많았다. 몸은 고단해지고, 마음은 나를 계속 괴롭혔다.
“선을님, 냥이드림 새 주문이요.”
여운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택배 상자를 포장하면서 말했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그리고 벽에 걸린 주문내역서 두 장을 뽑아 곧장 선반장으로 향했다. 이딴 걸 도대체 사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하는 대단한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주문을 하는 통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택배 상자는 디폴트 값이었고, 고양이가 그려진 세상에 모든 소품은 다 가져다 놓은 것처럼 물건의 종류와 수가 많았다. 때문에 여전히 물건 하나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 주문은 살랑냥 머리띠부터... 악세사리는 가벼우니까 아마도 위쪽일것 같은데...”
까치발을 들고 고개까지 한껏 치켜든 상태로 게걸음을 걸었다. 선반 위를 한참 살판 뒤에야 이름 그대로 산들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흔들릴 것 같은 고양이 머리띠가 보였다. 행여 파손될까 섬세한 손길로 살짝 옆 면을 잡아 왼 팔에 걸고있는 장바구니에 넣었다.
다음으로는 그 옆에 놓인 고양이 발바닥 모양의 미니 쿠션을 집었다. 촉촉하고 포근한 느낌이 손끝에 전달되었고, 잠시 그 질감을 즐겼다. 그 뒤로는 고양이 발톱 모양의 펜이 있었다. 펜은 작고 아담하면서도, 고양이의 발톱을 본뜬 디자인이었다.
“귀엽네?”
헉. 방금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온거지. 고양이라면 질색을 하던 나였는데.
아니야. 아닐거야.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 현실고증이 잘 되어진 소품들에게 경이를 표현한거야. 그거랑 그거는 엄현히 다른 일이라고.
물건을 찾는 일이 이렇게 힐링이 된다는 건, 예전엔 미쳐 알지 못했던 일이다. 선반에서 주문 목록을 하나씩 훑어가며 물건을 찾을 때, 마치 쇼핑하는 기분이 든다. 크기와 종류별로 정리된 바구니 속에서 손끝이 원하는 물건을 정확히 집어낼 때마다 묘한 쾌감이 느껴진다. 물건을 쥐었을 때 그 감촉이 작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누군가가 이걸 원하고, 내가 그것을 찾아주는 이 과정이 의외로 편안하고 즐겁다.
“다음 주문은... 부르르 키링 하나. 하나? 간단하네.”
고양이 모양의 작은 인형 키링, 그 키링의 꼬리를 길게 잡아당기면 손을 놓을 때마다 꼬리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면서 고양이가 몸을 부르르 떤다. 워낙 인기 상품이라 가장 손이 닿기 편한 선반위에 잔뜩 쌓여져 있었다. 잽싸게 상품을 집어 순식간에 포장까지 마친 나는 탕비실로 향했다.
“차라도 한 잔 할까?”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올 것임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영국 왕실에서 쓸 법한 찻잔 그림이 그려진 포장지에 달달한 인스턴트 밀크티 가루가 담겨 있었다. 가루 세 스푼을 듬뿍 퍼올려 컵에 넣고,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홍차의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한 모금 입에 머금으면 혀를 감싸는 달큰함과 부드러운 우유의 조화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마치 따뜻한 꿀물이 흘러가는 듯한 감촉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여운이 하도 맛있다고 해서 먹기 시작했는데, 왜 이제야 알았나 싶다. 이런 소소한 행복도 즐기질 못하고.
철커덕. 철커덕.
타탁.
탕비실 한쪽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역시나 여운이다. 그녀는 매일같이 이 시간에 랜덤뽑기를 한다. 정수기 옆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뽑기 기계. 직원들은 하루에 하나씩 뽑기 전용 코인을 받는다. 그 코인을 기계에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캡슐 하나가 굴러나온다. 안에는 피규어나 키링 같은 자잘한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검수 과정에서 발견된 작은 스크래치나 얼룩이 있는 물건들을 재미 삼아 캡슐 안에 넣어둔 것이라고 했다.
“아... 또 꽝이잖아.”
여운은 아쉬운 듯 자리로 돌아왔다. 그녀가 뽑아온 것은 앞발로 머리를 감싸고 있는 고양이 피규어였다. 고양이는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는데, 사이즈가 너무 작아서 얼핏 보면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손 들고 벌 서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는 따뜻한 욕탕에서 여유롭게 온천을 즐기는 고양이 피규어를 가지고 싶다고 했다. 일하는 3년동안 아직도 못 뽑았다고.
“사도 되긴 하는데... 뭐랄까 오기도 생기고, 또 뽑는 재미도 있으니까요.”
저게 뭐라고 저렇게 집착할까 싶었다. 욕탕에서 온천 즐기는 고양이를 뽑으면 뭐가 달라지는데. 아 귀여워. 대략 몇 초 정도 웃고 끝 아닌가.
“자, 여기요.”
여운이 내게 코인을 건넸다. “선을님도 해봐요. 재미있어요!”
나는 얼떨결에 코인을 받아들고 뽑기 기계 앞에 섰다.
투명한 박스 안에 수십 개의 캡슐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코인을 투입구에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된다.
간단했다. 아니, 간단하지가 않았다.
재밌다고? 전혀 재밌지 않아.
내가 원하지도 않는 게 툭 튀어나오면 어떡해.
지금 내 인생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원하는 건 얻어본 적이 없었다. 가족도, 재능도, 성격도, 인생의 방향도 죄다 어긋났다. 항상 원하지 않는 것만 뽑아들고는 했다. 지금 탁자 위에서 손 들고 서 있는 저 고양이처럼, 애매하고 어딘가 부족한 결과물만 내 손에 들어왔다.
다시 시도해도 내가 원하는 건 안 나올거야.
원하지 않는 게 나와서 또 나를 실망하게 할거야. 아프게 할거야.
손이 중력의 방향으로 툭 떨어졌다. 또르르 코인이 굴러갔다.
“전 그냥 안 할래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로 돌아와 남은 홍차를 마저 들이켰다. 달큰한 맛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데, 왜 이렇게 쓴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실패할까 두려운 마음에 포기는 쉽고, 그 후에 안락함은 달콤하지만, 그 뒤에 이어질 후폭풍은 거세다. 그제야 알게된다. 처음 맞이한 두려움이 오히려 낫다 싶은 것을.
가게 안에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비명에 공기가 찢어질 듯했다.
“내 딸 돌려내!!!”
진상 여자는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고, 온몸을 부르르 떨며 사장을 향해 소리쳤다.
“손님, 진정하세요.”
사장은 양손을 들어올려 여자를 달래려 했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나와 여운은 암막 커튼 뒤에 숨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단의 시작은 냥이드림 서비스였다.
창가에서 작은 야옹소리가 들렸다. 픽업 손님이 도착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창가로 다가가 확인했다. 주문한 물건은 부르르 키링 하나. 익숙한 절차대로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물건을 전달한 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순간—
손님이 장갑을 덥석 잡았다.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싸늘한 기운. 뭔가 이상했다. 덥석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힘이 이전 손님들의 그것과는 확연이 달랐기 때문이다.
손님의 손톱이 내 손과 팔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스쳐지나간 자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퍼졌지만, 나는 입술을 악물었다. 소리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악물고 버티는 사이, 화가 가득 실린 힘이 내 팔목을 거칠게 잡아채더니 장갑을 벗겨냈다. 차가운 공기가 맨 손으로 스며 들었다.
“살인자! 이 살인자야 당장 나와!”
사장은 나와 여운에게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뒤 손님을 탕비실로 들였다.
손님은 40대 후반정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씩씩거리며 탕비실로 들어온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아닌 부르르 키링이었다. 하나는 당연히 조금 전 내가 포장해서 건낸 새 것이었고, 꽤 생활감이 있어보이는 오래된 키링도 하나 더 있었다.
사장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쿠키와 차를 내오며 말했다.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무슨일이신지.”
사장은 놀라울만큼 차분하고 담담했다. 나랑 동갑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어른스러웠다. 하긴 저런 진상들을 얼마나 많이 상대해봤겠어. 다년간 쌓아올린 경험으로 금새 내쫓을 수 있을 것이다.
여자의 눈은 불을 튕길 듯이 뜨겁고,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당신이 사장이야?”
“네.”
“이딴 걸 미성년자한테 팔아도 되는 거야?” 여자가 인형을 부셔저라 흔들다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키링이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몸을 부르르 떨며 바닥을 굴러다녔다. 사장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거렸다.
사장님은 잠시 숨을 고르고, 평소처럼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건 키링이라고 합니다.”
“키 뭐?”
사장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키링은 열쇠나 가방에 달아서 사용하는 작은 장식품이에요. 뭐, 보통 취향에 맞는 디자인으로 사거나, 의미 있는 물건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죠.”
여자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내가 그걸 몰라서 물어? 그니까 그딴 걸 17살 밖에 안 된 애한테 왜 팔았냐고!”
사장님은 짧은 숨을 들이마시고, 상대의 분노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키링은 미성년자가 충분히 사도 되는 물건이에요. 고등학생이면 충분히 이게 뭔지 인지할 수 있는 나이고요. 따님이 뭐 때문에 안타까운 선택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저 고객에게 물건을 제공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살인자라뇨.”
“당신네 가게에서 키링만 몇 백만원이 넘어. 학생들 상대로 하는 불법 대출까지 받았다고. 도대체 애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런 거지같은 쓰레기에 중독되게 만들었냐고.”
헙.
갑자기 여운이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나는 눈만 크게 뜰 뿐이었는데,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착하고 유순한 렉돌 고양이 같은 사장의 얼굴이 고양이과 동물중 가장 크다는 호랑이처럼 변해 있었다.
“아무짓도 하지 않았어요. 저희는 손님의 나이를 알 수도 없고, 구매하는 이유는 더더욱 알 수 없어요. 그저 주문이 들어왔고 그에 맞춰 배송을 했을 뿐이에요.”
“뭐가 어쩌고 어째? 그래서 책임이 없다는거야? 내 알바 아니라는거냐고!”
잠시 사그라들었던 여자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터질 준비를 시작했다.
“네가 사람을 죽였어. 내 딸을 죽였다고.”
“저는 따님을 죽이지 않았어요.”
“네가 죽인 거야! 살려내, 내 딸 살려내고!”
여자가 사장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목소리는 떨렸고, 숨은 헐떡이듯 불규칙하게 내뱉었다. 그녀의 손은 사장에게 닿기 직전에 흔들리며, 손톱으로 사장의 눈을 찌를 듯 위협적이었다.
사장은 당황한 채 뒷걸음질 쳤다.
“이...이러지 마세요.”
그러나 여자는 이미 이성의 끈을 놓고 있었다.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가 그 어떤 말보다 강하게 그녀를 몰아갔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사장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 힘은 놀라울 정도로 강했고, 사장은 일시적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지켜보던 여운과 나는 눈빛을 교환한 후, 서둘러 뛰어나갔다.
여운이 먼저 여자의 팔을 잡아 당기며 “손님, 제발 진정하세요. 이러시면 경찰 부를 수밖에 없어요.”라고 외쳤고, 나는 여자의 다른 팔을 잡으며 힘을 다해 끌어내렸다.
여자는 여전히 발버둥쳤고, 그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참을 실갱이한 끝에 여자를 겨우 말릴 수 있었다.
여자는 활화산이 터진 후 용암처럼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왜, 왜! 도대체 왜!” 그녀의 절규는 화산재처럼 퍼졌고, 눈에선 고통이 떨어졌다.
사장은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었고, 입술은 바싹 말라 피가 터졌다.
여자는 바닥에 떨어진 낡은 키링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격렬한 울음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차갑게 부서저버린 키링은 더 이상 몸을 떨지 않았다.
사랑하던 사람이 쓰던 물건은,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그의 존재를 대신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물건은, 남겨진 사람이 계속해서 만지고,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그리워하고, 때로는 원망하기도 한다.
지금, 여자가 가슴에 안고 있는 키링은 그녀가 먼저 떠나보낸 딸이었다.
“그 애는... 죽을 용기가 있는 애도 아니었어. 아주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을 뿐이라고.”
여자는 계속 흐느꼈다. 그녀의 말은 점점 흐려졌지만, 우리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학교를 안 가고 방에서도 안 나오더라고요... 하루 종일 이 키링만 붙잡고 있었어요. 택배가 하루가 멀다 하고 쌓였고, 현관은 물론이고 방문까지 열 수가 없었어요...”
그녀의 어깨가 다시금 떨렸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계속 결석하니까 혼내도 보고, 달래도 보고, 별짓을 다 했어요. 겨우, 겨우 다시 학교에 가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어요. 너무 기뻐서, 정말 기뻐서 그날 회사에서 돌아왔죠.”
그날, 그녀는 딸의 방문을 열며 말했다.
“우리 딸, 내일부터 학교 가려면 준비해야지.”
그런데.
딸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부르르 키링을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 손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손님이 떠난 후, 여운과 나는 어색한 침묵 속에서 사장을 바라보았다.
“괜찮으세요?” 여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응, 괜찮아.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사장은 가볍게 손을 흔들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산산이 부서진 키링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조심스레 하나씩 집어 들며 남은 잔해를 정리했다.
여운은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무언가 떠오른 듯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온 장갑을 들고 돌아왔다.
정리를 끝낸 우리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근데… 아까 왜 이러면서 놀랐어요?”
나는 여운이 했던 것처럼 두 손을 포개어 입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하며 물었다.
여운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앞에선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말이거든요.”
“무슨 말요?”
“쓰레기요. 흔히들 소품을 쓸모없는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잖아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헙.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건데…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와중에 여운이 덧붙였다.
“사장님 옛날에 학생 때 별명이 ‘예쁜 쓰레기’였대요.”
나는 흠칫했다.
“…네?”
흔하다면 흔한 이야기였다. 예쁜 친구를 시기해서 괴롭히는 양아치들의 행패.
“사장님이 예뻐서, 다른 학교 남학생들까지 구경하러 올 정도였대요.” 여운이 말하며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이어갔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대요. 원래 눈에 띄게 예쁘면, 질 나쁜 인간들이 질투하는 법이잖아요.”
그때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무겁고, 씁쓸해졌다.
“어느 날, 그 양아치 무리 중 한 명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그걸 가지고 ‘눈깔을 왜 그렇게 뜨냐’며 괴롭히기 시작했대요.”
하지만 점점 그것이 기승을 부리며, 말투는 점점 더 저주처럼 변했다.
“저렇게 눈 시퍼렇게 뜨는 거 어디서 본 적 있는데 뭐였더라?”
“맞다! 저기 골목길에 쓰레기통 뒤지는 고양이 새끼 눈이 딱 저따구야.”
“얼굴은 반반한데, 쓰레기통이나 뒤지거든. 쟤랑 똑같네. 예쁜 쓰레기들이네, 하하하하!” 그들이 툭툭 내뱉는 그 악성 웃음은 마치 무기처럼 사장님을 향해 날아갔다. 눈에 띄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괴롭힘은 단순히 말로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은 뒤에서 갑자기 그 손을 휘두르며, 사장님의 얼굴을 가격했다. 차가운 손바닥으로 사장님의 볼을 여러 번 빠르게 찰싹찰싹 때렸다. 그 손끝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사장님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움찔하며 흔들렸다. 매번 비웃음과 함께 날아오는 손바닥에 그녀의 자존심은 부서져 가고 있었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 한 여학생이 비웃으며 입꼬리를 올렸다.
“설마, 네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비웃음이 섞인 말투로 그녀는 사장님의 눈을 한 번 훑어보았다.
“정신 차려, 이년아,” 또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들은 다른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그녀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남자들이 좀 예쁘다고 해주니까, 주제 파악을 못하고 막 황홀해 죽겠지?”
다른 학생들의 웃음과 환호에 흥분한 그들은 좀 더 잔인한 쇼맨십을 하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은 손끝에 뾰족한 물건을 들고 사장님의 얼굴 앞에서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물건은 날카로운 끝이 보일 듯 말 듯, 그녀의 눈앞을 가볍게 스치며 지나갔다.
“어디 한번 보자, 타투처럼 눈에 글씨를 새기면 어떨까?”
한 명이 낮고 비웃는 목소리로 말하며, 그 물건을 조금 더 가까이 대었다.
사장님의 눈동자가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 여학생은 물건을 다시 살짝 멈추며 미소를 지었다.
“무서워? 난 너 더 예쁘게 만들어주려는 건데.”
그녀는 물건을 쥐고, 그것을 반복해서 사장님의 눈앞에 위협적으로 흔들었다.
사장님이 몸을 흔들며 저항하자, 그녀의 목소리는 갑자기 차갑고 섬뜩하게 변했다.
“한 번만… 그 눈깔 내 눈에 띄면,” 그 말에 담긴 냉기와 살기가 온몸에 퍼졌다.
“그땐 찌르는 게 아니라 찢어버릴거야. 알겠어?”
사장님이 사람들 눈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되자, 가슴이 뭉클해지며 몸이 굳었다.
여운이 내 눈치를 쓰윽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선을님도 다른 사람 눈 못 보는 것 같던데...”
순간적으로 온몸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고, 얼굴이 불타오를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말문이 턱 막히고, 입술이 딱 붙어버려 쉬이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그게....”
쨍그랑 ―.
탕비실쪽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여운이 갑자기 몸을 움찔하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면서도 믿기지 않는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아, 설마…”
여운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나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탕비실 바닥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급하게 찢어진 흔적이 역력한 과자 껍데기가 뒹굴고, 초콜릿 포장지들은 잔뜩 구겨져 쌓여 있었고, 케이크 포장지 박스 안에서는 케이크 크림의 일부가 손에 묻은 듯한 자국이 보였다. 참기 힘든 급박함 속에서 사라진 이성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초콜릿으로 범벅된 입술, 과자 양념이 잔뜩 뭉친 손끝.
그저 멍하니 식탁 한 켠에 앉아있는 사장님이었다.
한바탕 폭식을 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그녀의 표정은 후회와 자기혐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불특정한 한 곳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마치 자신을 처벌하듯 차갑고 아프게 보였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여운이 따뜻한 차를 우려내 사장앞에 내려 놓았다.
“물도 없이 드시면 목 막혀요.”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바닥에 널부러진 잔해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이미 몇 번은 봤던 듯, 익숙한 표정을 지으며.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사장님도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걸.
은둔 생활을 했던 사람이란 걸.
폭식증까지 있는줄은 전혀 예상 못했지만.
복합적인 생각과 감정이 몸을 마비시켰다.
먼저 이딴 생각을 하는 내가 정말 쓰레기구나 싶지만...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 같았다.
사장 같은 사람도, 저렇게 예쁘고 완벽할 것 같은 사람도, 사람이구나. 결국 다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런 걸 보면, 뭔가 외롭지 않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동시에, 이 고통을 나누는 게 다 똑같이 힘든 일인 걸 생각하면, 그게 또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는 거지?
학교폭력, 괴롭힘, 끝없는 비교, 좌절감만 맛보게 하는 사회구조에 신물이난다.
우리의 고통은 철저히 무시한 채 상황을 계속 좌시하는 그들의 잔혹함에 치가 떨린다.
아무리 나아지려고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끝없는 고통이 따라온다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차피 이 아픔과 고통을 계속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나랑 사장님 같은 사람들이니까.
“그 애... 만난적이 있어.”
사장의 조용한 말에 나와 여운이 동시에 시선을 들었다.
사장은 탕비실의 어지러진 바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일 년 전 어느날, 그날따라 직원들은 모두 출근하기 어렵다는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심지어 여운까지도 올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밀린 택배 물량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픽업 서비스 예약도 겹쳐 있었다. 정신없이 물건을 포장하면서도 사장은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곧 픽업 손님이 올거야. 빨리 물건만 넘기고 다시 작업해야 해.
늘 그렇듯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말을 장갑을 붙이고 창 밖으로 손을 쭉 내밀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사장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오늘 남은 작업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앳된 목소리의 소녀가 창밖으로 뻗은 사장의 손을 덥석 잡더니, 엉엉 울기 시작한 것이다.
사장은 당황했다. 하지만 소녀의 작은 손이 떨리고 있었다.
사장은 소녀를 안으로 초대했다. 따뜻한 차와 다과를 내오자, 소녀는 한동안 흐느끼며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소녀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하고 있었다.
너네 집 얼마야? 우리 엄마가 거기 임대아파트라던데?
쟤 해외여행 한번도 안가서 개근했잖아. 개근거지.
이런 말들로 시작된 놀림의 강도는 점차 세졌다. 소녀의 책가방은 바닥에 내팽개쳐졌고, 실내화는 쓰레기통에서 발견되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물을 뒤집어쓴 채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어차피 쓰레기인데 쓰레기통에 들어가는게 당연하잖아.”
사장은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들끊는 분노를 식히지 못했다. 동시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악마들이 만들어놓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은 사장의 몫이었다.
“부모님하고는 상의해봤니?”
소녀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꽉 잡아내며 사장이 물었다.
소녀는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소녀의 교복치마 위로 동그란 상처가 퍼져나갔다.
사장은 마음 한켠이 아릿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말고는 소녀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없었기에. 그저 언제든 힘들거나 외로우면 오라는 말 밖에는.
그 후 소녀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따금씩 소녀의 안부와 근황이 궁금하긴 했지만 이름도, 집도, 전화번호도 몰랐기에 소녀에게 연락할 길이 전무후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장의 머릿속에서 소녀의 기억은 점점 옅어져갔다.
소품샵이 상대적으로 비수기인 어느 여름날, 눈이 번쩍 띄일만한 대량주문이 들어왔다.
사장은 신나서 주문내역을 인쇄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 키링이네. 그것도 다 다른디자인으로.”
그 이후로도 비슷한 주문이 반복적으로 들어왔다.
백 만 원 상당, 주문 상품은 오직 키링.
처음에는 어린이집이나 교회, 병원 같은 곳에서 나눠주는 선물용으로 생각했기에, 매번 정성껏 포장하여 기쁜 마음으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주문이 들어왔고 사장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작은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직접 디자인하여 자체 제작한 ‘부르르 키링’을 정성껏 포장해서 넣고, 꾹꾹 눌러 담은 손편지도 함께 담았다.
냥냥쭙쭙을 사랑해주시는 소중한 고객님께,
언제나 저희를 찾아주시는 고객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편지를 씁니다.
또한 작은 선물로 제가 직접 디자인하고 자체 제작한 부르르키링을 보내드립니다.
부르르 키링은 꼬리를 길게 잡았다 떼면 몸을 부르르 떨립니다.
마치 추운 날씨에 손끝이 떨리는 것처럼, 혹은 긴장될 때 가슴이 떨리는 것처럼요. 어떤 떨림은 불안과 두려움에서 오기도 하지만, 어떤 떨림은 희망과 감동에서 옵니다. 고객님께서 살아오신 길에도 그런 순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고객님이 가지고 계신 떨림이 불안과 두려움이라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의 떨림은 나약함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힘들고 괴로운 날에는 이 키링을 꼭 쥐어보세요. 따뜻한 감촉과 작은 떨림이 고객님께 위로가 될거예요. 그리고 그 순간, 모든 게 편안해질겁니다.
고객님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따뜻한 온기가 퍼지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당신의 삶이 따뜻한 빛으로 채워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진심을 담아,
고양이 소품 가게 냥냥쭙쭙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