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해방선언문
바야흐로 글로벌 편먹기의 날이었다.
2025년 10월 말,
한국은 APEC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전세계에서 국가 주석들이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30일 저녁, 뜻밖의 장면이 목도되었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회장과 '깐부치킨'에서 소맥 러브샷을 하며 '인공지능(AI)' 깐부동맹을 과시했다.
다분히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지난달 3일에는 중국 항일전쟁 전승절 8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만났다.
이것은 우연일 수가 없었다.
3일날, 3명의 권력자가 만났다.
30일날, 3명의 기술 타이탄이 만났다.
니 편, 내 편
그리고
오래된 권력과 새로운 힘의 대칭.
10월 30일, 3成동 깐부 치킨, 글로벌 CEO 3명.
깐부 치킨 회동은 무슨 의미이고 어떤 힘을 내포한 걸까?
왜 깐부 치킨인지 아리송했는데, 기사 사진에 닭 뜯는 모습을 보고 알아챘다.
AI로 뭉친 깐부가 ‘닭’을 물어뜯겠다는 선전포고다.
이 전쟁은 진작에 시작되었고 점점 클라이막스를 향해 전개되고 있다.
자유 진영의 승리에 인생 한번 걸어볼까?
아니면, 새로운 진영을 만드는 데 걸어볼까?
오래된 권력 vs. 신기술의 힘
현재 세상은 이 구도로 돌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NO KING' 시위가 한창이라 한다.
미국은 왕이 필요없다.
미국인은 왕으로 군림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모습의 미국이 참 좋다.
자신의 신념을 당당하게 나와서 말을 하는 것.
어떤 직업이나 직급, 자격을 갖추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그저 시민이란 이름으로 거리로 나와서 외친다.
그 작은 시민들이 함께 모여서 큰 목소리를 낸다.
우리는 더이상 왕이 필요없다.
여기엔 거의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왕이 사라지면?
그 자리는 어떻게 굴러가야 할까?
글로벌 타이탄들의 행적을 살펴보면,
전통적 권력이 사라진 자리를 새로운 기술로 대체하려는 듯 하다.
하지만 기술이 과연 답이 될 수 있을까?
AI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이제 머지 않아 모든 사람이 AI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AI는 누가 만들고 관리하는가?
AI 기술을 쥔 거대 독점 기업과 기술 엘리트가 그 역할을 맡을 것이다.
역할이 중대할수록 그 역할을 맡은 자는 힘을 갖게 된다.
앞으로는 AI 기업에게 권력이 집중될 것이다.
결국 사람만 바뀌었지 시스템은 같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소리가 안 나온다는 보장 있을까?
나는 겉잡을 수 없이 빠르게 AI 시대로 흘러가는 시류가 두렵다.
우리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거대한 해일이 눈 앞에 점점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 파도에 휩쓸려 목숨을 잃지 않고
내 방향키를 잡고서 항해할 수 있을까?
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도 없고,
성장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을 억제할 수도 없다.
원래 진보는 노빠꾸다.
다만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막을 수는 없지만,
기술에 하나를 더해볼 수는 있다.
기술 + 사람
사람을 향합니다.
아주 클리셰 같은 표현이지만, 이것만이 정답이다.
사람을 본질에 두고 기술을 만들어야 정도(定道)를 걸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형 AI에 희망을 걸어보고 싶다.
한국이란 나라는 참으로 희한하고도 오묘하다.
한국이란 국가는 힘이 없어 침략당하고 뺏기면서도 아무튼 정체성과 자주성을 이어왔다.
자원도 없고 돈도 없던 나라에서 인재가 나고 기술이 발전했다.
그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획일화된 질서를 잘 따르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를 찾아 살아간다.
틀에 박힌 사회에 살면서 개성 있는 콘텐츠를 쏟아낸다.
코로나 시기, 전세계가 한국의 진가를 확인했다.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었던 미국 사회의 단면,
국력이 아니라 권력으로 세워졌던 중국의 위상.
혼돈의 시대에 한국은 홀로 보여주었다.
질서 속의 인간다움.
코로나 걸린 와중에도 행여 타인이 나로 인해 아플까봐
대중교통 타지 않고 걸어서 귀가하던 환자들.
생전 처음 겪는 재난상황에 난무하던 졸속 행정에도
비웃을지언정 그 규칙을 못내 따라주던 국민들.
이 모든 사회적 행동은
우리의 유전자에 이것이 새겨져 있기에 가능했다.
홍익인간
홍익인간의 DNA가 한국을 재난에서 구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홍익인간 정신이 앞으로 세상을 구할 것이다.
30일 저녁, 기술 깐부 3명이 닭 3마리를 뜯어먹을 때,
나는 친한 동생과 둘이 만나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불과 물의 만남이다.
나는 태양이고, 그녀는 비다.
흔히 불과 물은 극과 극의 성질을 가진 둘이기에 결코 함께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
물이 타오르는 불을 꺼뜨리리라 하고,
비가 오면 태양이 가려지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태양이 밝게 떠있는데 비가 내리면,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는 다신 폭우로 죄를 심판하지 않겠단 약속이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인류에게 주어진 새 기회다.
이날 우리가 먹은 저녁메뉴는 샐러드였다.
그렇다.
결코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불과 물,
이 둘이 만나 깐부가 되면,
우리는 ‘샐러드’를 씹어먹을 수 있다!
샐러드 보울과 멜팅 팟의 비유를 알 것이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고유함을 유지하며
하나의 그릇 안에 담긴 것이 샐러드 보울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이 두 가지를 배웠으니,
2025년인 지금 이 개념은 구식이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사회의 모습은
샐러드 보울도 아니고 멜팅 팟도 아닌,
김밥이다.
김밥
김밥 속에는 햄, 오이, 당근, 시금치, 단무지 등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 데 모여 있다.
이 재료들은 샐러드처럼 분산되어 섞이지도,
멜팅 팟처럼 본래 모습을 잃고 녹아내리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모습 그대로 다른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붙어 있을 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
바로 김과 밥이다.
이것이 바로
각자도생의 시대에 사회통합을 위한 새로운 해답이다.
우리에겐 김과 밥이 필요하다.
전혀 다른 재료를 하나로 묶어주는 끈끈한 밥과 얇은 김.
서로를 아끼는 끈끈한 마음, 한국인의 정.
김밥의 정체성을 완성하는 끈, 한국인의 얼. 바로 홍익인간 정신.
나는 감히 확신한다.
샐러드 보울의 시대가 끝나고
김밥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깐부의 날 다음날은 할로윈이었다.
오늘 유치원에는 히어로들이 총출동했다.
할로윈은 원래 귀신 분장을 하는 서양 축제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이날을 '캐릭터 데이'라고 부른다.
귀신을 속이려고 귀신처럼 분장하던 전통 축제는
귀신을 물리치러 출동하는 캐릭터 놀이로 바뀌었다.
이제 10월 31일은
귀신한테 도망다니는 날이 아니라
귀신을 때려잡는 히어로가 출동하는 날이다.
올해 단연 눈에 띄는 캐릭터는
전세계적인 인기로 신화를 달성한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 미라, 조이였다.
영웅으로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한 건 전례없던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마 전세계 아이들이 오늘 한국인 영웅으로 분장하고 사람들을 구했을 테다.
그 영화의 심오한 메세지를 다 알진 못하더라도,
아이들은 그냥 주인공이 멋지고,
그들처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거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파워를 발사해서 사람들을 구하는
꼬마 아이언맨에게서 나는 희망을 보았다.
시민이 이길 수 있는 경우의 수,
1400만 605분의 1의 확률.
새로운 시대가 눈 앞에 도달했고,
이 시대의 새로운 힘은 결국 무기도, 기술도 아닌
사람들을 돕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일러 우리는 한 단어로 이렇게 정의한다.
홍익인간
미국 본토에서 NO KING 시위가 한창인 때에,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으로부터 왕관을 선사받았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며 웃픈 일이다.
왕 노릇을 해도 괜찮으니
좋은 왕이 되어주리란 기대에 베팅한 모양새다.
그러나 좋은 왕이 될지 말지는 전적으로 왕에게 달려 있다.
국가 대 국가의 차원에서는 사실 선택지가 별로 없다.
옳고 그름보다 살고 죽느냐가 걸린 문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변화하는 시대와 우리의 위상에 걸맞는 처세는
국가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해야 하는 것이다.
‘좋은 왕’이란 한 번도 나타난 적 없었다.
좋은 왕이 모두를 구원해주는 일 따윈 일어나지 않는다.
애초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제각각 다른 요구를 하고 있으므로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왕이든, 대통령이든, 기업인이든, 단 한 명의 구원자가 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세상이라면 그게 또 심각한 문제이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바뀔 수 있다면...
세상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일은 남이 해주지 않는다.
내가 해야 한다.
변화는 누가 날 위해 선사해주는 게 아니다.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된다.
그럼 나더러 나가서 영웅이 되란 뜻인가?
나 혼자 뭘 어떻게 할 수 있는데?
남을 위해 희생하며 일생을 바치란 의미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
나의 영혼을 해방시켜야 한다.
세상이 원래 돌아가던 대로 순응하고
사회가 주입하는 대로 믿고
리더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그만 두자.
나 하나 반항하는 것쯤 괜찮지 않나.
내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이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아무도 나에게 도비가 되라고 하지 않았다.
거대한 사회의 하나의 부품으로 날 매어둔 건,
매일 도는 쳇바퀴 속에 가둔 건
바로 나 스스로다.
그저 나를 해방시키자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그뿐이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행복해지면,
너도 나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서로를 돌아보고,
자연스레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본성에 따라
‘홍익인간’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해방된 개인이 많아지면
그 개인들이 이루는 사회는
비로소 자유의 사회가 된다.
한국인의 얼과 끈끈한 정으로 이뤄진,
김밥 같은 우리의 세상.
한국은 이제
좋아보이는 길을 선택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좋은 길을 개척하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그 길을 개척할 주체는
대통령도 아니고, k-pop스타도 아닌,
바로 해방된 우리 자신이다.
우리에게 더이상 왕은 필요없다.
필요한 건 우리와 같은 심장을 지닌 깐부다.
우리에게 왕이 필요없다는 소리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직접 다스리고 싶다.
새로올 시대엔 우리 모두가 왕이다.
그래서 오늘
당신이 새 다짐을 했으면 한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나는 그대에게 묻고 싶다.
NO KING을 외치는 바다 건너 먼 땅의 사람들과
국경과 문화를 넘어 영혼과 영혼으로
뜨거운 손을 맞잡을 준비가 되었는가?
홍익인간 정신이라는 정체성을 입은 그 누구와도
끈끈한 정으로 따뜻하게 엉겨붙어
하나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만약 그대가 그렇다고 응답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너 내 깐부가 돼라.
우리 같이 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