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보수 A/S를 정식 접수한 뒤 담당자가 집을 방문했다. 그리고 누수의 실제 원인을 찾기까지는 두 달이 걸렸다. 책임소재는 명확했다. 원인 100% 시공사 과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집 곳곳이 이미 곰팡이로 뒤덮여 있었고, 벽체를 뜯고 붙박이장을 교체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잠시 거주지를 비워야 했고, 공사의 범위 역시 작지 않았다. 이쯤 되면 ‘정식 합의서’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런데 담당자가 가져온 합의서는 핵심 조건이 빠진, 서류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종이 한 장에 불과했다.
그래서 표준에 맞게 다시 작성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 순간 담당자의 태도에 아주 미세한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곧이어 나온 말.
“일단 공사부터 하고, 끝나면 그때 합의서를 쓰시죠 “
이미 일정이 잡혀 있으니 그대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상황의 구조가 선명하게 보였다.
공사를 먼저 시작하는 순간, 모든 주도권은 시공사로 넘어간다. 이후 어떤 문제도 원상회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그래서 흐름을 멈추기로 했다.
“요구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공사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담당자가 급발진하기 시작했다. 소송을 하든 말든 하라며 일방적으로 화를 쏟아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이 반응은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그들의 ‘진짜 의도’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장면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때 알았다. 이 관계에서는 더 이상 합리적인 대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보다 책임을 피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그래서 감정의 소모를 중단하고, 담당자를 우회해 원청사에 정식 이의 제기를 넣었다. 불투명하던 흐름이 다시 정돈되는 지점이었다.
이 일을 겪으며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 어떤 사람은 요구의 ‘내용’보다 요구가 주는 ‘불편함’을 더 크게 반응한다.
• 어떤 관계에서는 설명을 반복할수록 오히려 내 권리가 희미해진다.
• 그리고 누군가의 급발진은 내 말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더 이상 그들의 통제 범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기도 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불안은 ‘막막함’에서 ‘판단’으로, 판단은 ‘결심’으로 바뀐다.
나는 단지 이 상황을 조용히, 확실하게 끝내고 싶었다. 그래서 필요한 건 하나였다. 합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상대와 다시 연결되는 것.
문제는 현실이 항상 그렇게 곧바로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예상과 현실 사이에는 늘 작은 틈이 있고, 일은 그 틈을 따라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