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신뢰사회를 향하여

by Insight Shin

사람은 서로 믿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이가 사람을 너무 잘 믿어서, 순진해서 걱정이라는 말을 한다. 한국 사회에서 부모들은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아이에게 반복해서 주의시킨다. 안전을 위해 필요한 걱정이지만, 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들으며 마음은 불편하다. 정말 아이들에게 “누구도 쉽게 믿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는 사회일까?


인간은 원래 협력과 신뢰를 기반으로 살도록 진화해 왔다. 협력은 생존 확률을 높였고, 신뢰 성향이 자연선택된다. 집단 안에는 언제나 무임승차자나 배신자가 더 이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제어하지 않는 한, 신뢰만으로는 협력이 지속되지 않는다. 인간은 이를 감지하고 솎아내는 심리적 모듈 - 일명 “사기 탐지 모듈(cheater detection module)” - 을 발전시켰고, 이를 사회적 규범과 제도 속에 제도화해왔다. 신뢰는 자연스러운 본능이지만, 그 신뢰를 배반하는 자에 대한 응징 역시 협력 시스템의 일부였던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사회적 뇌(social brain)’를 발달시켜 타인의 의도와 표정을 읽고 신뢰 여부를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도록 진화되었다고 설명한다.


단순 추방을 통해 집단에서 배제하거나 평판을 떨어뜨리고,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며, 재참여의 기회를 조건부로 제공하는 방식 등 보다 정교한 응징 메커니즘을 발달시켰고, 현대 사회는 이를 제도화했다. 법과 계약, 사법제도와 규제는 신뢰 위반자에게 예측 가능한 비용을 부과하고, 개인적 관계에 의존하지 않고 공적 시스템으로 확장시켰다. 하지만 제도는 비용이 많이 들고, 언제나 사후적이다. 법은 위반이 발생한 뒤에야 작동하고, 과도한 제재는 사회를 경직시키며 창의성과 개방성을 억압한다. 문제는 이 응징 방식이 공동체의 자본을 갉아먹거나 협력의 기회까지 차단한다는 데 있다. 장기적으로 법률과 강제력만으로 지속 가능한 신뢰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다.


신뢰는 결국 사회 내 문화로 내재되어야 한다. 정직을 칭송하고, 성실을 미덕으로 삼으며, 배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규범이 사회 전반에 스며들 때, 응징, 제도, 문화는 각각 독립적인 단계가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며 강화하는 복잡한 네트워크를 이룬다. 신뢰의 문화화는 제도라는 외부 조건과 개인의 선택이 상호작용하면서 출현(emergence)하는 집단적 질서로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사회 내에서 자기조직화된다. 작은 배신이 불신의 도미노를 일으킬 수도 있고, 작은 회복 경험이 협력의 파급효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높은 신뢰 사회는 낯선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신뢰를 부여할 수 있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개인이 여전히 분별력을 유지하지만, 기본값이 ‘불신’이 아니라 ‘신뢰’로 설정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끝없이 경계심을 가르치는 문화가 아니라, 경계심이 필요 없는, 이런 믿어도 되는 사회일 것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회는 더 포용적이고, 탐구적이며 기꺼이 모험을 감수하며 지평을 넓힌다.


아이들에게 “사람을 쉽게 믿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가장 기초적이고 방어적인 층위의 발언이다. 그것은 위험 회피의 문화이지, 신뢰 사회를 만드는 문화가 아니다. 우리가 진정 지향해야 하는 것은 분별력 있는 신뢰를 교육하고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교육은 조건 없는 불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신뢰가 언제, 어떤 맥락에서 가능하고 불가능한지 판단할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는 낯선 사람을 믿어도 안전한 제도적 장치와 투명한 절차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불신의 악순환은 멈추고, 신뢰의 선순환이 시작된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영원히 “조심하라”는 말을 반복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다. 궁극적 목표는 그 제도가 필요하지 않을 만큼 신뢰가 내재화되어 예측가능한 사회다. 그것이 사회적 안보가 확보된 높은 신뢰 사회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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