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이라 쓰고 ‘운영’을 요구하는 AI 공공사업

AI 바우처 지원사업 공고를 보고 느끼는 역설

by Insight Shin

사업 전략을 조언하고 투자 계획을 설계하다 보면, 자연히 공공사업 제안서를 검토할 기회가 잦다. 특히 최근 AI와 엣지-DC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전략 단위에서 논의된 정책적 지향점들이 실제 공고문의 언어로 어떻게 치환되어 커뮤니케이션되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공고문을 읽을 때마다 ‘지원’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품은 지 오래다. 본래 지원이란 민간의 상용화를 돕는 ‘조력’의 영역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원사업은 발주에 가까운 강압적 요구를 교묘하게 은폐하는 포장지로 쓰일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문서가 시장을 어떻게 열어주는가보다, 운영의 부담과 법적 책임을 어떤 방식으로 민간에 전가(Impose)하는지를 먼저 살핀다. 이 냉소적인 맥락 위에서 지원사업은 더 이상 사업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지독히도 현실적인 현금흐름의 사투이자, 불균형한 책임 배분의 문제가 된다.


이번 AI 바우처 지원사업 공고는 그 왜곡된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당초 우리 팀의 리서치 검토에서는 실감하지 못했던 내용이었으나, 실제 제안서를 통해 구체적인 사례로 보니 그 기형적 구조가 더 명확히 드러났다. 우선 자금 구조부터가 기형적이다. “총사업비(100%) = 정부출연금(70% 이하) + 민간부담금(30% 이상)”이며, 다시 “민간부담금 중 현금 비중은 13% 이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흔한 매칭 펀드 구조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한 문장이 덧붙는다. “현금 민간부담금은 국비 지급 전까지 납입을 완료해야 함.” 이는 민간이 자금을 일부 분담한다는 차원을 넘어, 민간의 선투입 없이는 과제 자체가 시작될 수 없음을 뜻한다. 지원금이 입금되기도 전에 억 단위의 현금을 동원해야 하는 구조는 결국 혁신적 기술이 아닌, 자금 동원력을 기준으로 참여자를 선별해낸다.


이 토대 위에 무거운 사업 성격이 얹힌다. 공고는 “26년 내 서비스를 개시하고, 27년에는 운영하며 고도화할 것”을 요한다. 1년 차 과제가 PoC(기술 검증)가 아닌 서비스 개시라면, 이 사업은 제품 개발이 아니라 운영 체계 구축 사업이 된다. 운영은 기술만으로 지탱되지 않는다. 민원 처리, 장애 대응, 보안, 로그 관리, 품질 및 법무 대응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민간이 운영을 요구받을 때 기대하는 것은 단 하나, 그 운영에 상응하는 재원과 계약의 확정성이다.


하지만 공고는 오히려 불확정성을 강화한다. 계속 지원 여부에 대해 “연차평가 결과(60점 미만 시 중단 가능) 및 정부 예산 상황에 따름"이라고 명시한다. ’26년에 서비스를 개시하고 ’27년에 운영과 고도화를 수행해야 함에도, 정작 그 재원은 평가 점수와 예산 변수에 묶여 있다. 이는 기술적 난이도보다 운영 리스크를 민간이 전적으로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공공 영역에서 서비스 운영이 시작되면 비용은 후반부로 갈수록 커지기 마련이나, 그 비용을 감당할 재원 대책은 문서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납품형 검수 요구가 더해진다. 실증 단계에서 ‘공인 시험기관(KOLAS 등)의 성적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연구개발의 언어가 아닌, 검수와 책임의 언어다. 성적서가 요구되는 순간 서비스는 ‘시범’을 넘어 ‘완성형 운영’을 전제하게 된다. 운영 가능한 수준의 품질을 요구하면서도, 그 운영을 위한 재원과 권리 구조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민간 투자 관점에서 이 문서는 상용화 지원이 아니라, 사실상 납품과 운영에 대한 요구서로 읽힌다.


결정타는 종료 이후의 조건이다. “사업 종료 후 1년 이상 무상 유지보수.” 상용화 지원사업이 본질에 충실하려면 유지보수는 유료 서비스로 전환되는 핵심 수익 경로여야 한다. 그러나 ‘무상 1년’을 의무화함으로써 문서는 상용화의 길을 여는 것이 아니라 닫아버린다. 특히 서비스 개시 초기인 종료 직후 1년은 안정화 비용이 가장 집중되는 시기다. 이 구간을 무상으로 묶어두면 과제비는 개발비가 아닌 운영비 선결제금으로 소모되고, 그 부족분은 고스란히 민간의 몫이 된다.


마지막으로 상용화의 실체인 권리 구조를 보자. 공고는 결과물 사용권과 제공된 데이터의 소유권이 모두 협업부처(수요기관)에 귀속됨을 명시한다. 공공의 처지에선 당연해 보일지 모르나, 민간에 있어 상용화란 운영을 통해 축적되는 개선 자산(파생 데이터, 로그, 성능 개선물)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하는 과정이다. 데이터 소유권은 잠기고, 무상 유지보수는 강제되며, 공인 성적서까지 요구되는 상황에서 민간에 남는 것은 ‘레퍼런스’뿐이다. 레퍼런스가 실질적인 사업이 되려면 조달과 구매로 이어지는 경로가 선명해야 하지만, 이 문서는 그 경로보다 운영의 의무만을 선명하게 부각한다.


나는 이 공고를 단순히 ‘게으르다’거나 ‘사악하다’고 평하고 싶지 않다. 문서의 구조 자체가 이미 모든 것을 자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이 현금을 선투입하고, 즉시 서비스를 개시하며, 불확실한 예산 속에서 운영과 고도화를 책임지고, 공인 성적서를 제출하며, 무상 유지보수를 제공하고, 권리마저 공공에 귀속되는 구조. 이를 ‘지원사업’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투자 관점에서는 ‘준발주형 운영 과제’에 불과하다. 준발주라면 마땅히 운영 대가와 책임의 경계가 계약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그 확정성이 결여된 채 요구되는 ‘상용화’는 시장을 형성하기보다 민간을 소진시킨다.


질문은 단순해진다. 이 문서는 민간의 상용화를 진정으로 지원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공공 현장에서 필요한 서비스를 빠르게 보급하기 위해 지원사업의 형식을 차용한 것인가. 어느 쪽이든 가능할 수는 있다. 다만 둘을 동시에 하려 한다면, 해당 프로젝트의 전후 맥락을 이해하고 자신의 무심한 판단이 미칠 결과에 책임감을 갖고서 지금의 독소적인 조항 결합(현금 선투입, 서비스 개시, 불확정적 재원, 납품형 검수, 무상 유지보수, 권리 고정)은 반드시 재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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