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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사가 신효인 Feb 04. 2024

결혼, 육아는 내게 별나라 달나라 이야기인데

예쁜 천사들이 채워주는 내 일상


올해도 어김없이 어학원에 출근하고 있다. 벌써 4년 차이다. 시간 빠르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맛에, 천사들 만나는 맛에 매일 행복하게 등원 중이다. 그 천사들과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적어보는 일기 스따뚜-



매사에 진지해서 완전, 와안-전 재미없는 스타일인 나를 조금 바꿔준 천사들

ep 1.  코딱지 냠냠


나) 아앗..!! 코 먹지 마아~~

□□) 왜요오~? (후비적)(후비적)(냠냠)

나) 아아잇!! 그것보다 더 맛있는 거 먹어!!

□□) (입에서 손을 빼며) 네앵- 헤헿


ㅋㅋㅋㅋ 만 5~6세와의 대화는 대부분 이렇다. 예전의 나는 '깨끗하지 않은 손을 코에도 넣고, 입에도 넣고 그러면 세균이 몸속에 들어가서 아야 해~'라고 답했을 텐데. 조금 변했다. 저 대답도 나쁘진 않지만, 아이를 차에 태우고 내리는 와중에 하기에는 꽤 긴 멘트다. 짧은 시간 내에 효과적인 지도를 하기 위해서는 드립을 치는 편이 낫다. 이 방법의 부작용은.. 아이가 내 드립을 듣기 위해-정확히는 나와의 티키타카를 즐기기 위해- 일부러 날 볼 때마다 코에 손을 쑥 넣는다는 거..ㅋㅋㅋㅋ 그러면 나는 '오늘은 맛이 어때?' 혹은 '배가 좀 불러?'라고 해버린다ㅋㅋㅋㅋ


우리 어학원 선생님들은 학원에서 영어만 사용하신다. 우리 학원의 제1 규칙. 그렇다 보니 그 규칙에서 제외되는 나도 아이들 앞에서 담임쌤들과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한국어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우리 꼬맹이들은,


선생님 왜 영어로 말해요! 한국어 해봐요! 한국어!


한다ㅋㅋㅋㅋㅋ 그 요청에 응하지 않고 튕기고 있는 내게 해맑게 웃으며 딱 달라붙어서는, 내가 한국어를 할 때까지 옆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가 5절쯤 갔을 때 내가 못 참고, '아이고오 언능 신발 신어! 버스 간다 가!' 하면, 그제야 꺄르륵 꺄르륵 웃음과 함께 박수를 치며 학원을 나서신다. 모국어를 구사한 것만으로 세계 제일 개그맨이 된 기분ㅋㅋㅋㅋ 예전의 파워진지걸이었던 나라면 '한국어 해봐요! 해봐요!' 하는 아이에게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뭐 어렵다고. 기꺼이 해드립죠 (찡긋)'



깔끔 떨던 나를 조금 바꿔준 천사들

ep 2. 개구쟁이 껌딱지


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를 내려주는데, ◇◇이가 자기 발로 내리지 않고 점프해서 먼저 내려 서있는 나에게 안겨 붙었다. 둥가둥가해주고 아이를 바닥에 내려놔주려는데, 내가 힘을 놓는 찰나에 아이가 자세를 고쳐 다시 달라붙었다. 그러면서 내가 중심을 잃었다.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미 몸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얼른 감싸 안았다. 곧바로 나는 바닥과 합체...ㅎ


다행히 아이는 다치지도, 놀라지도 않았다. 내 옷에 붙은 젖은 낙엽을 떼서 보여주며 '히이-' 하고 웃어 보이던 ◇◇이..ㅋㅋㅋㅋㅋㅋ 아이를 들여보내고 차에 타니, 멍했다. 정신이 들고서는 웃음이 피식피식 나왔다. 젖은 바닥에 굴렀고, 밝은 색 외투도 더러워졌는데.. 그냥.. 웃겼다ㅠㅠㅋㅋㅋㅋㅋㅋㅋㅋ 뭐가 그렇게 웃겼지. 다 큰 어른이 비 오는 날 바닥을 구른 사실이 웃긴 건지, 놀란 건지, 안도한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그냥 마냥 웃겼다ㅜㅜ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유쾌하게 푸학 웃어버렸다.


원래의 나라면 돌발상황과 옷이 더러워진 것에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텐데. 새로운 나를 만났던 날. 왜 아무렇지 않았을까? 왜 되려 신나게 웃음이 났을까? 나도 모르겠다. 신기하다.



천사의 약속

ep 3. 내 머리를 봐봐요


○○이가 예쁘게 뿌까 머리를 하고 온 날이었다. 너무 예뻤다.


나) ○○아!! 오늘 뿌까 머리 했네!! 너무 예쁘다아-

○○) 구래요? 구러면 화요일에는 머리 이렇게 이렇게 밑으로오- 양갈래해서어- 고양이 머리띠 하고 올까욥?

나) 진짜?! 그것도 너무 예쁘겠는데?! 선생님 기대한다?!

○○) 좋아욥!

나) 그러면 그날 사진 찍을까?

○○) 네! 오늘도 찍어요!

나) 그래!! (앗싸)(냉큼)(찰칵) 

♥︎


솔직히 말하면, 양갈래&고양이 머리띠 약속이 진짜로 지켜질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이 날이 목요일이었으니까, 금토일월 나흘이나 지나서 정확히 '화요일'에 아이가 이 약속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으니. 그런 나의 생각을 와장창 부수며, ○○이는 화요일에 양갈래에 고양이 머리띠를 하고 나타나셨다. 오마이갓.


날 향해 다가오는 표정잌ㅋㅋㅋㅋㅋ '나의 머리를 봐봐요 선생님'이었다ㅋㅋㅋㅋㅋㅋ 나의 관심과 리액션을 양껏 기대하는 얼굴이 귀여워 죽는 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가 걸어오는 열 걸음 동안 리액션 가득 장전. 장전. 차에서 예쁘다고 호들갑을 한참 떨었다. 약속 지킨 것에 대한 무한한 칭찬과 함께. 오버한 게 아니라, 실로 놀라웠다. 그리고 너무 귀엽지 않은가.. 목요일 이후로 계속 '화요일'을 곱씹고 있었을 것 아닌가.. 그리고 화요일이 된 날 아침에 엄마에게 양갈래와 고양이 머리띠를 요청했을 거고ㅠㅠ 그 이유를 물어보는 엄마에게 설명도 했을 거고ㅜㅜ 그 과정이 너무 귀엽고 예뻤다..


○○) 근데 선생님 사진 안 찍어욥?!

나) 찍어야지! 여기보쎄요옹~~ (찰칵)(찰칵) 어우 너무 예쁘다아~

○○) 히히

♥︎


너무 예쁨.. 매일이 선물 같다 진짜..



천사의 속삭임

ep 4. 내 이름도 불러죠요

 

○○이는 나이에 맞게 아이 같은 면도 분명 있지만, 또래보다 야무지고 의젓하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떼쓰지도 않고, 선생님 말을 잘 들어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점이 인상 깊었던 아이였다.


아이들 모두가 안전벨트 착용한 것을 꼭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키는데, 아주 가끔 불편하다고 아이들이 몰래 벨트를 푸는 경우가 있다. 그걸 방지하고자 출발하자마자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벨트 잘 멨지?/안 불편하지?'라고 묻곤 한다. '네가 벨트를 잘 매고 있는지 아닌지 선생님은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어!'를 알려주기 위해.


이 날은 ○○이가 내 옆자리에 앉아서 내 눈에 ○○이가 벨트를 맨 게 보였다. 그래서 ○○이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호명이 끝나고 몇 초 뒤, 내 손등 위로 ○○이의 손바닥이 스윽- 겹쳐오더니, 나지막이 '선생님. 제 이름은 왜 안 불러줘요.' 한닼ㅋㅋㅋㅋㅋㅋㅋㅋ 자기 이름도 불러주길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것이닼ㅋㅋㅋㅋ 귀여웤ㅋㅋㅋ 그래서 '아~ 우리  벨트 잘 맸네~' 해주었다.


한 번은 ○○이가 차량 제일 뒤 구석 자리에 앉았던 날이었다. 자연스레 ○○이가 마지막으로 하차하게 됐는데, 입이 댓 발 나와가지고는 안 내리고 '히잉~'하고 서 있더라. 그래서 내가 '왜애~'하고 안아서 들어주니, 댈롱댈롱 매달려서는 '나 마지막으로 내렸어..'라고 했다.


착하고 귀여워.. 마지막으로 내리기 싫지만 순서 욕심 내겠다고 친구들 밀치지도 않고, 양보할 거 하고, 기다릴 거 다 기다리고서 나지막이 칭얼대는 게 귀엽고 예뻤다.


나) ○○아~ 양보해 줘서 고마워. 근데~ (속닥속닥)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똬단! 하는 고야~ 봐봐~ 선생님이 일케 안아서 데려다주잖아아~~

○○) 나 주인공이에여?

나) 구러엄~~ 오늘 ○○이가 주인공~~

○○) 나 주인고옹~~


하아.. 너무 귀여워..



천사의 포옹

ep 5. 선생님 안아주세요


11월의 한 금요일. ◎◎이가 학원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선생님 거예여' 하며 내게 빼빼로를 내밀었다. 달력을 보니 주말에 빼빼로 데이가 있었다.(몰랐음) 놓치지 않고 챙겨주겠다고 금요일에 빼빼로를 들고 온 ◎◎이가(+어머니의 마음 써주심이) 너무 소중하고 예뻤다. 아이가 서둘러 수업에 들어가야 해서 리액션을 제대로 해줄 틈을 못 가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는 쉬는 시간에 헤헤 웃으며 카운터를 다시 찾아왔다. 잘 먹겠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있는데, 빼빼로를 들고 있는 아이가 예뻐서 그 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나) ◎◎아 선생님 사진 한 장 찍어도 돼?

◎◎) (끄덕끄덕) 좋아요 (포즈를 취해줌)

♥︎


나) 아이고오 예뻐!!! (찰칵) ◎◎아 선생님이 한 번 안아줘도 돼?

◎◎) (끄덕끄덕)


내가 팔을 벌리니 와서 안긴다. 너무 예뻐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이를 예뻐하는 내 마음이 포옹을 통해 전해졌는지, ◎◎이는 이 날 이후로 매일-수시로 안겨왔다. 그러다 1-5-1 포옹 루틴이 생겼다.


-등원할 때-

나) (안겨오는 ##이 안아주며) 수업 잘 듣고 와~

◎◎) 네애~


-쉬는 시간-

수다 떨기+최소 5번 안아주기

나) 쉬는 시간 끝났다! 이따 하원할 때 봐~

◎◎) 네애 이따 봐여어~


-하원할 때-

나) (안아주며) ◎◎아 잘 가!!

◎◎) 네애~


얼마나 예쁘던지.. (기절) 아이들은 사랑이다 진짜. 나도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다.



천사의 선물

ep 6. 네 세상의 보석


◎◎) 선생님~ 저 오늘 선생님 드리려고 선물 가져왔어요.

나) 오잉?! 정말?!

◎◎) 네 이따가 쉬는 시간에 드릴게요~

나) 알겠어! 선생님 기다리고 있을게!


무슨 선물일까.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닌데.


잠시 후, 아이가 내게 수줍게 내민 것


너무 귀엽고 예뻐서 속으로 눈물을 백번 천 번 흘렸다. 이것들이 자기 세상에서 제일가는 보석일 거 아냐ㅠㅠ 그걸 나한테 준 거잖아ㅜㅜ 그 마음이 감동이 아닐 수가 없다.. 진짜 순수하고, 착하고, 귀엽다ㅠㅠ


◎◎이 어머니께서는 ◎◎이가 선생님 드린다고 등원할 때마다 쓰레기 같은 것들을 챙긴다고 민망해하셨다. 아악!! 쓰레기라뇨ㅠㅠ 절대 아니라고. ◎◎이 세상에서는 그게 보석이지 않냐고, 그 마음이 예쁘다고 말씀드렸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말리셨는지 이 대화 이후에는 보석들을 더 받지는 못했다. 한정판이 된 소중한 보석들.. 두고두고 보관해야지 흐흐



결혼, 출산, 육아 모두 내게는 별나라 달나라 이야기인데 천사들로부터 이런 크고 작은 행복을 선물 받다 보면, '내 이야기가 되어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가끔 든다. 그만큼 예쁘다.


겉보기에는 내가 아이들을 돌봐주고 예뻐해 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양방향이다. 날 예뻐해 주고, 사랑해 주고, 나의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해주는 아이들 덕분에 나도 매년 크고 있다.


올해는 또 어떤 에피소드들로 채워질까? 기대된다.



 


안녕하세요.

작사가 신효인입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해의 첫 달이 지나갔어요.

어떤 1월을 보내셨나요?


저는 변함없이 열심히 시안 작업을 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잠이 많이 부족하긴 한데 왜인지 모르 올해 들어 에너지가 좋아요. 체력적으로 힘들긴 해도, 기쁘고 씩씩하게 잘 지나가는 중입니다 :) 성실히 해서 또 좋은 소식 전해드릴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작사가 신효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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